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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nnel>
		<title>오래된 정원</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link>
		<description>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가 그립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25 Jun 2009 01:27:56 GMT</pubDate>
		<item>
			<title>&lt;킹콩을 들다&gt;, 진부함 속 빛나는 소녀들의 '무쇠팔'</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D%82%B9%EC%BD%A9%EC%9D%84-%EB%93%A4%EB%8B%A4-%EC%A7%84%EB%B6%80%ED%95%A8-%EC%86%8D-%EB%B9%9B%EB%82%98%EB%8A%94-%EC%97%AC%EB%B0%B0%EC%9A%B0%EB%93%A4%EC%9D%98-%EB%AC%B4%EC%87%A0%ED%8C%94</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quot;2&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115269548.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98&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 /&gt;
역도는 마라톤과 닮았다. 승부는 언제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갈린다. 바벨과 씨름하는 건 철저하게 혼자에게 남겨진 숙제다. 역사(力士)는 고독을 인내하고 고독과 싸운다. 그래서 역도는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수행의 스포츠’라고 불린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역도는 권투와 닮았다. 둘 다 맨손에 공평하다. 그래서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는 자기 몸뚱아리뿐인 이들은 그 자비를 믿고 삶의 실낱같은 돌파구를 찾아 몸을 벼리고 또 벼린다. 그리고는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맨손으로 쇳덩어리를 들어 올리고 인간의 본성인 두려움을 거슬러 상대의 주먹에 몸을 내준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닮은 점은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 모두에게 허락된 몫이 아니는 점일 것이다. 모든 스포츠에서 조연은 고통스러운 자리다. 특히 역도는 “(몸이) 우락부락해지고 얼굴도 험악해지는” 부작용이 만만찮고 선수를 그만 두고 나서는 “웨이트트레이닝 강사 자리도 보디빌딩하는 애들에게 밀린”다. 적어도 영화 &amp;lt;킹콩을 들다&amp;gt;의 시대에서는 그랬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amp;lt;킹콩을 들다&amp;gt;는 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역도에 ‘10대의 꿈’을 다 건 소녀들의 유쾌한 성장영화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219888593.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3&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가난한 고아 영자(조안), 아픈 엄마를 돌봐야하는 여순(최문경), 역도부 수석(?)합격생 보영(김민영), 빵순이 현정(전보미), 섹시한(?) 역도복을 탐낸 민희(이윤회), FBI를 꿈꾸는 수옥(이슬비).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여섯 소녀는 밥을 굶지 않기 위해, 빵순이라고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번쩍번쩍 들어올릴 팔 힘을 기르기 위해, 로스쿨 진학에 필요한 특기점수를 받기 위해, 저마다의 절박한 이유에서 바벨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88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였지만 부상으로 꿈을 접은 이지봉(이범수)이라는 헌신적인 조력자가 있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영화를 이끌어 가는 건 예쁜 척을 포기하고 ‘무쇠 팔’과 ‘무쇠 다리’를 숨김없이 드러낸 배우들의 억척스러움이다. 맨손의 힘을 믿고 그 손으로 세상을 들어올리고 말겠다는 소녀들의 원초적인 매력은 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lt;BR&gt;
&lt;BR&gt;
하&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quot;2&quot;&gt;지만 결함이 적지 않다. &amp;lt;킹콩을 들다&amp;gt;에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에 마땅히 있어야할 것 같은 진부함이 넘친다. 영화의 전개는 예상을 빗나가는 법이 없다. 그만큼 이야기 구조가 전형적이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짜내기 위한 악역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그가 이지봉에게 원한을 품게 된 계기 또한 ‘80년대 만화’ 속 악당을 쏙 빼닮았다. 그가 휘두르는 폭력과 내뱉는 대사는 너무 상투적이라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그럼에도 &amp;lt;킹콩을 들다&amp;gt;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고 믿는다. 다섯 소녀가 들어올린 것이 바벨이 아니라 그들이 짊어질 삶의 무게였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모든 결함을 너그럽게 껴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메달이 도전한다, 하지만 동메달을 딴다고 해서 그 사람 인생도 동메달이 되는 건 아니야”라는 이범수의 대사는 진부하지만 어쨌든 진리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lt;BR&gt;
&lt;BR&gt;
ps. 원래 7월 2일 개봉 예정이었는데 하루 당겨서 1일 개봉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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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ine toc</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Wed, 24 Jun 2009 00:20:00 GMT</pubDate>
		</item>
		<item>
			<title>&lt;걸어도 걸어도&gt; 가깝고도 먼 가족이라는 역설</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A%B1%B8%EC%96%B4%EB%8F%84-%EA%B1%B8%EC%96%B4%EB%8F%84-%ED%8F%89%EC%98%A8%ED%95%9C-%EC%9D%BC%EC%83%81%EC%97%90%EC%84%9C-%EA%B8%B8%EC%96%B4%EC%98%AC%EB%A6%B0-%EC%9A%B8%EB%A6%BC-%ED%95%98%EB%82%98</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quot;2&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042021561.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67&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 /&gt;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amp;lt;걸어도 걸어도&amp;gt;에는 눈길을 잡아 끌만한 ‘사건’이 없다. 영화에 담긴 시간은 장남의 기일 하루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영화의 공간은 대부분 요코하마 가의 낡은 집 안에 머무른다. 영화는 가족을 뿌리 채 흔들었던 장남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뛰어넘어 그 이후의 삶을 견뎌 온 이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하지만 &amp;lt;걸어도 걸어도&amp;gt;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활 속에서 길어올린 언어로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amp;lt;걸어도 걸어도&amp;gt;는 ‘사건’ 없이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법을 아는 영화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lt;strong&gt;평온한 일상에서 건져올린 울림 하나&lt;/strong&gt;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10년 전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죽은 형 준페이의 기일에 맞춰 가족들은 매년 부모의 고향집으로 모인다. 하지만 둘째 아들 료타는 고향집 방문이 영 탐탁지 않다. 형이 죽자 의사가 돼 가업을 잇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기대를 버리고 미술 복원사가 된 후 그와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게다가 지금은 실직했고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가 있는 여자와 재혼을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긋지긋한 ‘의사 타령’ 반복될 것이고 료타는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었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그래도 기일을 맞아 모인 가족들은 함께 먹을 음식을 요리하고 엄마가 차린 음식들을 나눠먹거나 술을 마시고 거실에 앉아 수다를 떤다. 손자손녀들은 마당과 집밖에서 신나게 뛰어논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루할 만큼 평온한 일상이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하지만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 평온함 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들을 숨겨놓았다. 가족들이라 더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가슴 속에 담아뒀던 비밀 말이다. 그것은 때로는 웃음이 배어있고 때로는 가시가 박혀있는 대화를 통해 하나씩 베일을 벗고 일상에 악센트를 찍는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자동차 세일즈맨을 남편으로 둔 딸 지나미는 가족간 단절된 소통을 이어보려고 애쓰지만 은근히 부모의 집을 물려받고 싶은 욕심을 드러낸다. 말로는 죽은 큰 아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하면서 아직 변변한 직장도 없이 살만 쪄가는 요시오에게 아버지는 증오가 담긴 독설을 내뱉는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저녁을 먹고 함께 들은 엄마의 애창곡 &amp;lt;블루 라이트 요코하마&amp;gt;가 사실은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던 여자에게 불러주던 노래였다는 이야기에 근엄하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엄마도 ‘이젠 요시오를 그만 부르자’는 료타의 말에 한없이 인자하기만 했던 표정 속에 숨겨 놓았던 차가운 비수를 꺼내 놓는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159073736.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94&quot; alt=&quot;&quot;/&gt;&lt;/div&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strong&gt;&lt;font size=&quot;2&quot;&gt;가깝고도 멀기만 한 가족이라는 관계&lt;BR&gt;
&lt;/font&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사실 가족은 가까워질수록 그만큼 멀어지는 역설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제목 ‘걸어도 걸어도’가 “아무리 애써도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lt;BR&gt;
&lt;BR&gt;
도&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quot;2&quot;&gt;리스 되리 감독의 &amp;lt;사랑한 후에 남겨진 것들&amp;gt;에서도 가족은 타인보다도 소통할 수 없는 관계로 그려진다. 불치병을 선고받은 남편 루디와 아내 트루디가 베를린의 아들 집을 방문했을 때 손녀는 자신의 방을 내줘야한다는 사실을 불평하고 자식들은 “언제 가신대?”라고 서로 묻기 바쁘다. 시내 여행에 동행하고 트루디가 그토록 추고 싶어했던 부토 무용 공연을 함께 본 것은 자식들이 아니라 타인인 딸의 여자친구였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트루디가 죽은 후 그녀가 생전에 그토록 가보고 싶어했던 후지산에 가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 도쿄로 간 루디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막내 아들 마크와 접점을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마크는 죽은 엄마의 스웨터를 코트 안에 입고 거리를 쏘다니는 아버지의 정신병을 의심한다. 결국 후지산에 함께 동행한 것은 노숙하는 부토 무용수인 18세 소녀 유다. 루디는 유를 만나 부토 무용을 배우면서 죽은 아내와 대화하고 후지산 앞에서 마지막으로 부토 춤을 추면서 아내의 영혼과 하나가 된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하지만 죽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자식들은 “우리 아빠에게 그런 취향이 있는 줄 몰랐어, 18세 소녀라니...”라는 장탄식을 내뱉을 뿐이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그래도 고레에다 감독은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희망의 증거는 소통의 매개가 되는 소박한 음식이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lt;strong&gt;희망의 증거 ‘옥수수 튀김’&lt;/strong&gt;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112927083.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94&quot; alt=&quot;&quot;/&gt;&lt;/div&gt;료타와 재혼한 아내 유카리, 아들 아츠시는&amp;nbsp; 이 집만의 별미인 옥수수튀김을 만드는데 손을 보탬으로써 새로운 가족이 되는 의식을 치른다. 또 생옥수수를 튀기는 고소한 냄새는 병원 진찰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던 아버지를 부엌으로 불러들인다. 가족들은 옥수수튀김과 관련된 즐거운 추억을 입에 올리고 모처럼 벌어진 유쾌한 대화를 통해서 잘못된 기억들이 제자리를 잡아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가족은 서로에 대해 불완전하긴 해도 공감 한조각씩을 느낀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영화의 끝자락, 아들 차를 타고 쇼핑을 가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도 축구 경기를 같이 보자는 아버지와의 약속도 들어주지 못한 료타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에 갔다가 만난 노랑나비를 보고 딸에게 엄마에게 들은 노랑나비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는 보여주지 않지만 아마도 집으로 돌아간 료타의 가족은 옥수수 튀김을 함께 만들어 먹을 것이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죽음으로 생은 끝나도 남은 가족의 삶은 죽은 자들과 함께 계속된다. 그게 가족이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size=&quot;2&quot;&gt;ps. &amp;lt;걸어도 걸어도&amp;gt;는 18일 개봉합니다. 출출한 새벽, 고소한 옥수수튀김이 눈에 아른거리네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amp;lt;걸어도 걸어도&amp;gt;를 보고 나니 전작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들더군요. DVD를 구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집을 뒤져보니 &amp;lt;아무도 모른다&amp;gt;가 있어서 우선 다행이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이걸 볼 주말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네요.&lt;/font&gt;&lt;/span&gt;&lt;/p&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Cine toc</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Tue, 16 Jun 2009 04:36:37 GMT</pubDate>
		</item>
		<item>
			<title>영화 &lt;블러드&gt;에 대한 미스터리 세가지</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C%98%81%ED%99%94-%EB%B8%94%EB%9F%AC%EB%93%9C%EC%97%90-%EB%8C%80%ED%95%9C-%EB%AF%B8%EC%8A%A4%ED%84%B0%EB%A6%AC-%EC%84%B8%EA%B0%80%EC%A7%80</link>
			<description>&lt;font face=&quot;gulim&quot;&gt;&lt;strong&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272614312.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3&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하나, 제작비 500억원은 어디에? &lt;BR&gt;
&lt;/strong&gt;&lt;BR&gt;
&lt;font color=&quot;#cc9900&quot;&gt;&quot;제작비 500원... 아니 500억원.&quot;&lt;BR&gt;
&lt;/font&gt;&lt;BR&gt;
지난 4일 &amp;lt;블러드&amp;gt; 시사회장. 사회자의 실수에 잠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사회자의 실수에 어쩌면 진심이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만큼 &amp;lt;블러드&amp;gt;는 허술하다. &lt;BR&gt;
&lt;BR&gt;
박쥐를 닮은 듯한 뱀파이어의 모습에는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들의 움직임은 어린 아이의 걸음마처럼 위태로웠다. 사야(전지현)의 칼에 나가떨어지는 뱀파이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블러드’가 아니라 걸쭉한 쵸콜렛 시럽이라고 불러야 한다. &lt;BR&gt;
&lt;BR&gt;
&amp;lt;블러드&amp;gt;의 총 제작자 빌 콩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액션 경쟁작들이 많아 폭력적인 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정작 신경을 써야했던 것은 폭력성이 아니라 CG였을 것이다. &lt;BR&gt;
&lt;BR&gt;
&amp;lt;블러드&amp;gt;를 보고 얻은 깨달음 하나. 300억원으로 &amp;lt;디 워&amp;gt;를 만든 심형래 감독은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한다. &lt;BR&gt;
&lt;BR&gt;
&lt;strong&gt;둘, 전작에서 반짝였던 제작진의 재기는 왜 사라졌을까&lt;/strong&gt;&lt;BR&gt;
&lt;BR&gt;
&amp;lt;블러드&amp;gt;는 재패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의 &amp;lt;블러드-더 라스트 뱀파이어&amp;gt;를 원작으로 한데다 &amp;lt;와호장룡&amp;gt;과 &amp;lt;영웅&amp;gt;을 제작한 빌 콩이 총 제작자로 나섰고 &amp;lt;트랜스포터&amp;gt; 시리즈의 원규 무술 감독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전작에서 보여줬던 제작진의 재기는 &amp;lt;블러드&amp;gt;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lt;BR&gt;
&lt;BR&gt;
몰려드는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쉴 새 없이 칼을 휘두르는 전지현의 액션에는 특별한 것이 전혀 없었고 다소 난이도가 있겠다 싶은 액션신은 대부분 느린 화면으로 처리됐다. 그러니 검의 고수가 마땅히 발산해야할 카리스마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사야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뱀파이어 수장 오니겐과 사야의 대결도 ‘별 일 없기는’ 마찬가지다. &lt;BR&gt;
&lt;BR&gt;
&amp;lt;블러드&amp;gt;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것이 아니라 손에 있던 땀을 말린다. 원작의 명성이나 제작진의 전작인 &amp;lt;와호장룡&amp;gt;이나 &amp;lt;트랜스포터&amp;gt; 시리즈를 맘에 두고 &amp;lt;블러드&amp;gt;를 봤다가는 정말 피 본다. &lt;BR&gt;
&lt;BR&gt;
&lt;strong&gt;셋, 전지현은 왜 세일러복을 입었을까.&lt;/strong&gt; &lt;BR&gt;
&lt;BR&gt;
답은 간단하다. 전지현이 여학생 교복인 세일러복을 입은 것은 영화 속 사야가 16세의 소녀이고 배경은 1970년대 도쿄이기 때문이다. 사야는 ‘협회’의 지령대로 미군 공군 기지 내의 고등학교에 그 세일러복을 입고 잠입한다. &lt;BR&gt;
&lt;BR&gt;
하지만 영화는 사야가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의 혼혈이라는 설정. 사야가 인간의 나이로는 16살이지만 뱀파이어로서는 400년을 살았다는 설정, 그래서 협회 요원이 가져다주는 피를 마셔야 한다는 설정, 오니겐은 왜 사야의 아버지를 죽였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lt;BR&gt;
&lt;BR&gt;
&amp;lt;키스 오브 드래곤&amp;gt;을 만들었던 크리스 나흔 감독은 작심을 한 듯 이야기에는 아무런 관심을 쏟지 않았다. 사전에 배포된 자료를 보지 않았더라면 빈약한 내러티브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을 것이다. &lt;BR&gt;
&lt;BR&gt;
전지현의 세일러복이 자리를 찾지 못한 퍼즐 조각으로 보였던 것은 원작을 본 관객들을 우대라도 하겠다는 듯한 &amp;lt;블러드&amp;gt;의 불친절함 탓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065850604.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3&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font&gt;&lt;BR&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8&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2.swf?nid=3387152&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Cine toc</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Wed, 10 Jun 2009 22:50:00 GMT</pubDate>
		</item>
		<item>
			<title>용서 받지 못할 지휘관, 주상용 서울청장</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C%9A%A9%EC%84%9C-%EB%B0%9B%EC%A7%80-%EB%AA%BB%ED%95%A0-%EC%A7%80%ED%9C%98%EA%B4%80-%EC%A3%BC%EC%83%81%EC%9A%A9-%EC%84%9C%EC%9A%B8%EC%B2%AD%EC%9E%A5</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073854400.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4&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지난달 30일 새벽 경찰이 서울 덕수궁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강제철거하면서, 조문을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깔판을 발로 차며 걷어내고 있다.(칼라TV화면캡쳐)&lt;/p&gt;&lt;/div&gt;
‣ 다음 중 가장 용서 하기 힘든, 혹은 싫은 지휘관을 고르시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①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② &lt;/span&gt;작전에 실패한 지휘관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③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④ 뭐가 됐든 실패의 책임을 부하 병사에 게 떠넘기는 지휘관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일반 사병으로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정답을 고르는 데 있어서 ③번과 ④번 사이에서 고민할지 모르겠다. 작전? 경계? 앉으면 배가 고프고 누우면 잠이 오는 처지에서 별로 중요한 문제 아니다. 군대에서 사병의 뇌는 사고하는 기관이 아니라 장식품이다.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장땡’이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하지만 무사고를 강요받는 사병들이라도 땡볕에 훈련 받으면서 제 때 밥도 못 얻어먹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 받아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 받지 못한다는 ‘불후의 명언’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하지만 문제를 출제한 사람 입장에서 이 문제에서 정답은 ③번이 아니다.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에 익숙한 세대라면 익히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정답은 가장 길거나 짧은 것일 확률이 99.9%다. 이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군대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중대장의 지시로 프리젠테이션용 파일 하나를 만들었다. 내용은 물론 폰트나 편집 스타일까지 모두 그의 지시대로 했다. 그런데 윗선에 보고하는 동안 문제가 생겼다. 대대장이 일부 내용에 대해 지적을 한 것이다. 심하게 까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그저 가벼운 지도차원의 코멘트였다. &lt;BR&gt;
&lt;BR&gt;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지만 우리의 중대장은 ④번에 해당하는 몰상식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다. &lt;BR&gt;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애들이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그 전까지만 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이 용서 받기 힘든 지휘관 1순위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시키는 대로 한 쫄다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놈’은 배식을 실패한 놈보다 더 악질 지휘관이다. 이런 류의 지휘관은 전쟁이 나면 십중팔구 자기 살겠다고 부하들을 사지에 몰아넣는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군대 시절의 그 중대장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것은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다는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이다. 덕수궁 대한문 앞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한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31일 주상용 서울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lt;BR&gt;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일부 의경들이 작전지역을 벗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이 한마디에 현장 지휘관들의 지시 아래 시키는 대로 천막을 걷어내고 조화를 비롯한 집기를 부쉈을 의경들은 졸지에 작전 구역을 벗어나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인 오합지졸이 돼버렸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비난 여론이 조금만 더 높아진다면 궁색한 변명이 진심임을 보여주느라 이 의경들은 작전지역을 맘대로 벗어난 죄로 징계를 당할지도 모르겠다. “경찰버스가 막아주니 분향하는데 오히려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기자간담회에서 거리낌 없이 하는 정신세계의 소유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자기 살겠다고 부하들을 ‘죽일 놈’ 만드는 지휘관을 ‘모시고’ 있는 전의경들이 짠하다. 그리고 책임 떠넘기기로 부하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잃어버리고 귀가 몹시도 가려울 주상용 청장도 불쌍하긴 마찬가지다.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235398397.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72&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By 오마이뉴스 권우성&lt;/p&gt;&lt;/div&gt;
&lt;/span&gt;&lt;/p&gt;&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8&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2.swf?nid=3308435&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어퓨 굿 대한민국</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Tue, 02 Jun 2009 00:29:50 GMT</pubDate>
		</item>
		<item>
			<title>세상에서 가장 슬픈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곡</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C%84%B8%EC%83%81%EC%97%90%EC%84%9C-%EA%B0%80%EC%9E%A5-%EC%8A%AC%ED%94%88-%ED%95%B4%ED%83%9C-%ED%83%80%EC%9D%B4%EA%B1%B0%EC%A6%88%EC%9D%98-%EC%9D%91%EC%9B%90%EA%B3%A1</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rong&gt;&lt;font color=&quot;#cc9900&quot;&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color=&quot;#cc9900&quot;&gt;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lt;/font&gt; &lt;br /&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해태 타이거즈의 어린이 회원이 되면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조악한 검은색 비닐 잠바를 입고 야구장에 드나들던 시절, 어른들은 경기가 후반을 향해 치달아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면 애절한 이별 노래인 ‘목포의 눈물’을 함께 불렀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승리의 순간이나 패배의 순간이나 해태의 안방인 무등 경기장에는 어김없이 수천 명이 함께 목놓아 부르는 이별의 곡조가 메아리쳤다. 선동열이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프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그날에도 축하 파티 곡은 ‘목포의 눈물’이었다. &lt;BR&gt;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strong&gt;‘목포의 눈물’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lt;BR&gt;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193378358.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67&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1983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4승째를 따낸 해태선수들이 창단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고 있다. 사진 가운데 콧수염 휘날리며 뛰는 김봉연이 보인다.(한국야구위원회 간 &amp;lt;한국프로야구화보&amp;gt;에서)&lt;/p&gt;&lt;/div&gt;
김성한의 ‘오리궁둥이’ 타법과 선동열의 강속구를 자랑하는 최강팀 팬이라는 자부심을 만끽해야할 신나는 야구장에 도대체 왜 이 구슬픈 노래가 울려 퍼져야한단 말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통닭을 나눠주시던 후덕한 옆자리 아저씨를 따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응원곡을 따라 부르며 내 키는 조금씩 커갔다. &lt;BR&gt;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목포의 눈물’을 이해하게 된 건 코 밑이 거뭇해지고 목소리가 변해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 ‘518 비디오’를 통해 전두환의 신군부가 저지른 ‘80년 광주’의 잔인한 학살을 알게 됐고 정치경제적으로 철저하게 소외되고 짓밟혀온 ‘광주’의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그제서야 왜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되는 9시 뉴스가 시작되자마자 우리 집의 텔레비전은 침묵을 지켜야했는지, 5월 18일에는 왜 무등 경기장에서 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 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던 퍼즐조각들은 비로서 제 자리를 찾았다. ‘광주’에게 야구는 그저 던지고 치고 달리는 스포츠가 아니었던 것이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그 시절을 추억하는 책 &amp;lt;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amp;gt;에서 저자 김은식은 이렇게 썼다. &lt;BR&gt;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font color=&quot;#cc9900&quot;&gt;“죽음의 공포가 길게 드리운 채 몇 사람만 모여 앉아도 정보기관원의 뱀 같은 시선을 느끼며 숨죽여야 했고, 해가 뜨면 내 가족, 내 친구의 피가 얼룩진 거리 위에서 또 다시 비굴하고 피곤한 삶의 좌판을 벌여야 했던 광주 시민들. 그들에게 무등 경기장은 유일하게 수천 명이 모여앉아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볼 수 있는 곳이었고 그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서러운 패배와 차별의 굴레를 벗고 승리의 희열과 부러움의 눈길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strong&gt;가장 약한 자들의 희망이었던 해태 타이거즈&lt;/strong&gt; &lt;BR&gt;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302526459.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386&quot; alt=&quot;&quot;/&gt;&lt;/div&gt;80년대 후반과 90년대 중반 프로야구판을 지배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아홉 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모두 우승했다. 해태의 사전에 준우승이라는 기록은 없다. 불과 몇백 원짜리 ‘땅콩으로 버무린 튀김과자’를 팔아 선수단의 연봉을 대고 팀의 운영비를 마련한 탓에 가장 가난한 구단 중 하나였지만 타이거즈의 야구는 ‘가장 약한 자들’의 희망이 되기에 충분했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하지만 97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광주의 한’을 풀었던 김대중 후보의 당선 이후 타이거즈는 몰락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김대중 정부가 선택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에 따라 기업의 퇴출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됐고 타이거즈의 모기업이었던 해태그룹도 부도라는 직격탄을 맞았던 것이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팀의 주축이었던 이종범은 거액의 이적료를 마지막 선물로 남기고 일본으로 떠났고 외환위기 덕에 몸집이 더 커진 재벌 소유의 구단들은 홍현우, 조계현, 이강철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을 데려갔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설상가상으로 해태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광주일고 졸업생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품에 안겼다. 계약금만으로 수백만달러를 제시한 미국 구단들과의 스카우트 전쟁에서 해태가 승리할 가능성은 애시당초 없었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이 모든 게 약자에게 가장 가혹했던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때문이었지만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팬들은 차라리 타이거즈의 독주를 시기했던 이들의 기도를 들은 신의 저주 때문이라고 믿는 쪽을 택했다. 그것은 불굴의 의지와 근성으로 열세인 객관적 조건을 극복할 수 있었던 시절이 가고 ‘돈’의 힘이 실력을 좌우하게 된 현실에 저항하고 싶었던 이들의 마지막 자기 위안이었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하지만 ‘개천에서 용나는’ 시절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갔음은 ‘타이거즈의 시련’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확인 됐다. 타이거즈의 모기업이 몇백 원짜리 맛동산이 아니라 수천만 원짜리 '봉고'를 파는 재벌이 되고나서야 이종범이 돌아오고 그동안 빼앗기기만 했던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거물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으며, 미국으로 떠났던 서재응과 최희섭도 돌아왔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lt;strong&gt;무너지지 않을 신화에 대한 아련한 추억 한편 &lt;BR&gt;
&lt;/strong&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amp;lt;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amp;gt;은 다시는 오지 않을 그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 무너지지 않을 신화를 써내려갔던 해태 타이거즈에 바치는 헌사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인천에 살면서 “아주 특이한 경로로 특이한 팀을 응원하며 해태 타이거즈에 특이한 적개심을 품었던” 저자는 “강자였지만 약자의 방식으로 싸웠고 승자였지만 패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팀, 그래서 약자와 패자들도 얼음 계곡물에 몸 한 번 담그고 정신 바짝 차리면 강자의 발목이라도 한 번 물어뜯을 수 있다고 악을 쓰며 항변하는 듯 했던 그 몸짓들을 그리워한다”고 고백한다. &lt;BR&gt;
&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amp;lt;오마이뉴스&amp;gt;에 ‘야구의 추억’을 연재하면서 녹색의 그라운드 안에서 울고 웃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맛깔나는 글 솜씨로 버무려 냈던 저자는 이 책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씨줄로 ‘김대중’을 날줄 삼아 야구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넘나들며 아련한 추억 한 편을 더 짜냈다. &lt;BR&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BR&gt;
타이거즈를 함께 그리워하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굴곡이 많았던 인천의 야구팬에게 큰 빚을 진 기분이다.&lt;/span&gt;&lt;/p&gt;&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8&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2.swf?nid=3006586&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Baseball allergy</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Thu, 23 Apr 2009 05:33:17 GMT</pubDate>
		</item>
		<item>
			<title>시베리아 나무처럼 자란 '히어로' 황두성</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C%8B%9C%EB%B2%A0%EB%A6%AC%EC%95%84-%EB%82%98%EB%AC%B4%EC%B2%98%EB%9F%BC-%EC%9E%90%EB%9E%80-%ED%9E%88%EC%96%B4%EB%A1%9C%EC%A6%88-%ED%99%A9%EB%91%90%EC%84%B1</link>
			<description>&lt;p&gt;&lt;strong&gt;&lt;font size=&quot;3&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083329250.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83&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by 오마이뉴스 유성호&lt;/p&gt;&lt;/div&gt;
[인터뷰] &quot;자신감을 실은 공 하나가 제 가장 큰 무기죠&quot;&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1999년 봄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치르는 해태 타이거즈의 마운드에는 한 낯선 사내가 서있었다. 스프링 캠프에서 그을린 탓인지 얼굴은 흙빛이었고 체격은 깡말라 다부져 보였던 그는 타석에 선 타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었다. &lt;BR&gt;
&lt;BR&gt;
봄이 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빠른 볼이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제구력이 형편 없었던 것이다. 그의 공을 몸에 맞기라도 하는 날엔 시즌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마감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상대 타자들은 홈플레이트에서 한두발씩 슬금슬금 물러나기 바빴다. &lt;BR&gt;
&lt;BR&gt;
그런 탓에 그는 들쭉날쭉한 제구력에도 불구하고 변화구 하나 던지지 않고 빠른 볼만으로 손쉽게 아웃을 잡아내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도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quot;아~ 저 선수, 투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어깨 하나는 정말 싱싱하군요. 제구력만 가다듬으면 무시무시하겠는데요.&quot; &lt;BR&gt;
&lt;/font&gt;&lt;strong&gt;&lt;BR&gt;
&quot;제구력만 가다듬으면 무시무시하겠는데요&quot;&lt;BR&gt;
&lt;/strong&gt;&lt;BR&gt;
그는 임창용의 트레이드 상대로 양준혁, 곽채진과 함께 삼성에서 해태로 온 황두성이었다. 철저한 무명이었던 그에게 야구를 시작하고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크게 언론에 오르내린 것은 해태와 삼성의 3:1 대형 트레이드로 시끌벅적하던 그 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시범 경기가 끝나고 정규시즌이 시작될 무렵 그는 다시 무명의 자리로 돌아갔다. &lt;BR&gt;
&lt;BR&gt;
문제는 &quot;무시무시하겠는데요&quot;라는 해설자의 전망 앞에 붙은 &quot;제구력만 가다듬으면&quot;이라는 가정이 좀처럼 현실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훈련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던 포수를 그만두고 투수가 되기로 마음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팀을 옮긴 데다, 전에 입었던 푸른색 유니폼과는 달리 빨간색 유니폼은 늘 어색하기만 했다. 그는 2년 만에 다시 팀에서 쫓겨났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quot;지금 생각하면 해태 시절이 너무 아쉬워요. 투수로 전향하자마자 트레이드가 됐거든요. 팀이 바뀌면서 맘 편하게 저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혼자서 운동을 하다시피 했었죠. 코치들의 조언도 많이 받고 생각하면서 야구를 했더라면 좀더 빨리 실력이 늘었을 텐데. 그 땐 투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공만 세게 던졌던 것 같아요.&quot;&lt;BR&gt;
&lt;/font&gt;&lt;BR&gt;
지난 17일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황두성은 아직도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lt;BR&gt;
&lt;BR&gt;
실업자 처지가 된 그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투수 왕국' 현대 유니콘스였다. 당시 현대는 비록 정민태가 일본으로 떠나고 정명원이 은퇴를 하긴 했어도 에이스급인 김수경, 임선동, 위재영, 전준호에 신인급 신철인, 송신영, 마일영 등을 앞세워 강력한 투수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lt;BR&gt;
&lt;BR&gt;
다른 팀에서 방출된 선수에게는 바늘 구멍만한 틈도 보이지 않았던 투수력을 가진 팀이었다. 하지만 황두성은 현대로 가기로 했다. 현대 말고도 다른 팀에서 테스트를 받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왔지만 그는 거절했다. 투수력이 강한 팀보다는 약한 팀에 가야 1군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커지겠지만 그런 약삭빠른 계산을 하지 않기로 했다.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quot;그냥 마음을 비웠어요. 앞으로 2~3년만 열심히 해보고 안되면 미련 없이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죠. 그러니 이왕이면 센 팀에서 부딪혀 보자고 맘을 먹었어요. 현대에서 안 되면 다른 팀에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당시 2군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기회를 많이 주셨죠.&quot; &lt;BR&gt;
&lt;/font&gt;&lt;strong&gt;&lt;BR&gt;
&quot;이왕이면 센 팀에서&quot;... 마음을 비운 현대행 &lt;BR&gt;
&lt;/strong&gt;&lt;BR&gt;
테스트 기간을 거친 끝에 팀에 합류한 뒤 그는 2군의 마운드에 섰다. 다행히 성적도 잘 나왔다. 하지만 1군에서의 부름은 없었다. 1군 엔트리가 늘어나는 시즌 후반기에나 잠깐 얼굴을 비치다 말았다. 현대의 1군 마운드는 세월이 흐를수록 단단해져 가는 화석처럼 견고해져만 갔다.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quot;2군 생활이 길어지면 가장 힘든 게 뭔지 아세요? 목표 의식이 흐려지고 2군 생활에 안주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주변에서도 '너는 이제 야구로 성공하기 힘들어'라는 낙인을 찍어요. 해도 안되는 운동 '그만두라'는 소리도 듣게 되죠. 그러면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스스로 '야구는 내 길이 아닌가'라고 끊임없이 회의를 하게 돼요. 결국 그렇게 소리 없이 야구판에서 사라지게 되는 거죠.&quot;&lt;/font&gt; &lt;BR&gt;
&lt;BR&gt;
황두성도 포기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록 2군에서 올린 것이긴 하지만 성적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이제 벽 하나만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놓기가 싫었다. 당시 2군에서 투수 육성을 맡았던 오영일 투수 코치도 흔들리는 그를 붙잡았다.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quot;코치님이 많은 용기를 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2군에서 성적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래, 고비 하나만 넘으면 된다'는 오기가 저를 버티게 했죠.&quot; &lt;BR&gt;
&lt;/font&gt;&lt;BR&gt;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투수 왕국'의 신화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쯤이었다. 2005년 시즌, 에이스 정민태와 신인왕 오재영이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이탈했고 김수경도 부진에 빠졌다. 5선발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했던 임선동은 2군으로 떨어졌다. 팀 방어율은 개막 1달 만에 5점대로 치솟으며 꼴지를 달리고 있었다. &lt;BR&gt;
&lt;BR&gt;
황두성은 이 균열을 8년 동안 혹독하게 담금질해 단단해진 팔 하나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영원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제구력'의 비밀도 풀었다. 그가 프로 데뷔 8년 만에 첫 승을 거둔 2005년 4월 24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였다.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quot;믿었던 마무리 조용준 선수가 흔들렸어요. 팀이 이기고 있다가 9회 말에 동점을 허용해서 연장에 갔는데 10회 말에도 아웃 하나를 잡는 사이에 만루를 만들어주더라고요. 상황이 그렇게 되니까 당시 투수 코치셨던 김시진 감독님이 저를 호출했어요. 뜻하지 않게 등판을 하게 된 거죠. 감독님이 부담을 덜어주시려고 그러셨는지 '맘대로 안되면 타자를 맞추고라도 내려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냥 홈플레이트만 보고 힘껏 공을 던졌어요. 자신감 있게.&quot;&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030514191.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5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by 오마이뉴스 유성호&lt;/p&gt;&lt;/div&gt;
&lt;BR&gt;
&lt;strong&gt;비로소 풀린 제구력의 비밀... '투수 왕국'의 마운드에 입성하다 &lt;BR&gt;
&lt;BR&gt;
&lt;/strong&gt;외야 플라이 하나로도 경기가 끝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감을 실어 던진 그의 공에 정의윤은 삼진, 박용택은 1루 땅볼로 물러났다. 팀의 주전 마무리가 벌여놓은 위기 상황을 무실점으로 수습한 것이다. 게다가 이숭용이 11회 초 홈런으로 경기를 다시 역전시켰고 황두성은 11회마저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길고 길었던 2군에서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던 순간이었다.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quot;지금 돌아보면 제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때였어요. 그리고 그 경기에서 깨달은 게 있어요. 투수에게 있어서 제구력이나 스피드 보다 중요한 게 자신감이라는 사실. 맞지 않기 위해 양쪽 구석구석에 공을 던지지 않아도 내 구위를 믿고 자신 있게 타자와 승부하니까 통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lt;BR&gt;
&lt;/font&gt;&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그 경기에서 깨달음 하나로 지금까지 제가 야구를 하고 있는 셈이죠. 지금도 저는 바깥쪽 안쪽 꽉 찬 공을 던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제 구위를 믿고 과감하게 타자를 공격하는 겁니다.&quot;&lt;BR&gt;
&lt;/font&gt;&lt;BR&gt;
오직 '자신감' 하나를 무기로 붙박이 1군 선수가 된 황두성은 팀에서 원하는 대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감초'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첫 승의 여세를 몰아 11승을 올리며 팬들의 머리 속에 황두성이라는 이름 석자를 새겨 넣었다. 2006년과 2007년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팀의 마운드를 지켰고, 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작년에는 팀이 마무리 투수 부재에 시달리자 자원해서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 &lt;BR&gt;
&lt;BR&gt;
그리고 원하던 태극마크도 달았다. 그의 야구 인생이 한 번 더 화려하게 꽃피울 기회가 왔다고 기뻐했지만 작은 아픔도 겪었다. &lt;BR&gt;
&lt;BR&gt;
작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따내는데 큰 활약을 벌이고도 정작 본선 무대에는 서보지 못했고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로 뽑혔다가 아시아 라운드가 시작하기 직전 짐을 싸게 된 것이다.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quot;어떻게 단 태극마크인데 정말 잘해 보고 싶었죠. 게으름 부리지 않고 많은 준비를 했는데 이상하게 컨디션이 예전보다 빨리 올라오지 않았어요. 결국 내 책임인 거죠. 너무 상심이 컸고 아쉬웠어요. 부모님한테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죠. 하지만 제 스타일이 나쁜 일을 맘에 안담아 두는 편이에요. 이미 다 털어 버렸죠. 히어로즈를 위해 뛰어야할 133게임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quot;&lt;BR&gt;
&lt;/font&gt;&lt;strong&gt;&lt;BR&gt;
시베리아의 나무처럼 자란 황두성 &quot;올해는 무척 바쁠 겁니다&quot;&lt;BR&gt;
&lt;/strong&gt;&lt;BR&gt;
시베리아의 나무들은 성장은 느리지만 그만큼 더 단단하게 자라난다. 하지만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추운 땅에서 시들지 않고 살아남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황두성은 그런 시베리아의 나무처럼 살아남아 더디지만 강하게 컸다. 그런 그가 쉽게 실망이나 절망을 쉽게 입에 담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lt;BR&gt;
&lt;BR&gt;
프로에 온 후 처음으로 풀 타임 마무리 투수에 도전하는 황두성에게 올해는 매우 바쁜 한해가 될 것 전망이다. 장원삼-마일영-이현승-김수경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이 탄탄한 데다 타격에서는 거침없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강정호-황재균 콤비의 활약까지 더해지면서 히어로즈가 올 시즌 돌풍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lt;BR&gt;
&lt;font color=&quot;#996633&quot;&gt;&lt;BR&gt;
&quot;원래는 30 세이브가 목표였어요. 하지만 좀 올려 잡아도 될 것 같아요. 맘대로 안되는 것이 야구이긴 하지만 40 세이브에 도전해 볼 계획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 팀 전력이 탄탄하고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모두 해보자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거든요. 올 시즌에는 경기 후반이 되면 제게 불펜에서 몸을 푸는 모습을 많이 보시게 될 겁니다.&quot; &lt;/font&gt;&lt;/p&gt;&lt;BR&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8&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2.swf?nid=2990498&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Baseball allergy</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Tue, 21 Apr 2009 05:57:20 GMT</pubDate>
		</item>
		<item>
			<title>서른여덟 최향남의 '보헤미안 랩소디'</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C%84%9C%EB%A5%B8%EC%97%AC%EB%8D%9F-%EC%B5%9C%ED%96%A5%EB%82%A8%EC%9D%98-%EB%B3%B4%ED%97%A4%EB%AF%B8%EC%95%88-%EB%9E%A9%EC%86%8C%EB%94%94</link>
			<description>&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size=&quot;2&quot;&gt;&lt;BR&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c9edff&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size=&quot;2&quot;&gt;지난 20일 김해 상동구장에서 최향남 선수를 만났습니다. 김해에 내리는 순간만 해도 서울보다는 날씨가 따뜻해 최향남 선수의 실전 투구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죠. 그런데 웬걸 일반인들에게는 따뜻한 날씨였을지 몰라도 야구 선수들에게는 추운 날씨였나 봅니다. 예정됐던 중앙대와의 오후 연습경기가 춥다는 이유로 취소되는 바람에 경기 모습과 훈련 모습을 직접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이 아쉽긴 했지만 덕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최향남 선수가 결국 해태를 떠나가는 걸 보면서 많이 아쉬하던 팬 중 한명이었는데 취재를 위해서 최향남 선수를 만나니까 이런저런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날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lt;/font&gt;&lt;/span&gt;&lt;/div&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strong&gt;서른 여덟 최향남의 '보헤미안 랩소디'...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lt;/strong&gt;&lt;br /&gt;
&lt;/font&gt;&lt;strong&gt;&lt;font size=&quot;3&quot;&gt;[인터뷰] &quot;빨간 앵무새의 기적을 보여주고 싶어요&quot;&lt;/font&gt;&lt;BR&gt;
&lt;/strong&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376271734.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351&quot; alt=&quot;&quot;/&gt;&lt;/div&gt;&quot;아~~&quot; &lt;BR&gt;
&lt;BR&gt;
어깨와 팔굼치에 얼음을 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늘게 열린 입에선 옅은 신음 소리도 났다. 공을 던지느라 달아오른 근육에 하는 얼음 찜질이 그저 시원할 줄만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그건 투수라면 감내해야 할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lt;BR&gt;
&lt;BR&gt;
늦깎이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최향남. 지난 20일 바람이 심하고 쌀쌀한 날씨 탓에 오후 훈련이 취소됐지만 그는 실내 연습장에서 기어코 투구 수 400개를 모두 채웠다. 롯데 자이언츠 2군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경남 김해의 상동구장에서 그는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이자 가장 늦게까지 훈련하는 선수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그는 집이 아니라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lt;BR&gt;
&lt;BR&gt;
그를 이처럼 채찍질하는 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겠다는 꿈이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 그는 배수의 진을 쳤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자마자 휴식 대신 도미니카행 비행기를 탔던 것도 이런 간절함 때문이었다.&lt;BR&gt;
&lt;BR&gt;
&lt;strong&gt;간절함을 품고 떠났던 도미니카행&lt;/strong&gt; &lt;BR&gt;
&lt;BR&gt;
도미니카 윈터리그는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된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선수들 또한 실력이 출중한데다 열정도 뜨거웠다. 테스트에 합격해 팀에 들어갔다고 해서 출전 기회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돈 3000원짜리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매 경기 불펜에서 경기에 나갈 준비를 했다. &lt;BR&gt;
&lt;BR&gt;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경기가 6회에 접어들 무렵 등판 준비를 위해 몸을 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순간 현기증이 났다. 다리는 힘이 풀려 말을 듣지 않았다. 태어나서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덜컥 겁부터 났다. 순간 TV에서 봤던 다우너 소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내가 싸구려 음식을 먹다 광우병에 걸렸나 보구나.' &lt;BR&gt;
&lt;BR&gt;
절망할 새도 없이 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병원에서는 다행히(?) 식중독이라고 했다. 3일간 입원해 있으면서 솔직히 그는 후회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게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곧 마음을 다잡았다. &lt;BR&gt;
&lt;BR&gt;
&quot;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해요. 힘들다고 가던 길을 멈추면 내가 원하던 인생을 살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quot; &lt;BR&gt;
&lt;BR&gt;
이를 악물고 버티기 위해 그는 바퀴벌레가 득시글대는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싸구려 도시락 대신 7배나 비싼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많은 경기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8이닝 2실점이라는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리그를 마쳤다. &lt;BR&gt;
&lt;BR&gt;
&lt;strong&gt;국내에서 평범했던(?) 최향남... 마음은 메이저리그에&lt;/strong&gt; &lt;BR&gt;
&lt;BR&gt;
사실 최향남은 적어도 국내 리그에서는 최고가 아니다. 10승을 넘은 것은 단 한 번 뿐이고 해태-LG-기아-롯데를 거치며 기록한 통산 성적도 52승 65패에 평균자책점은 4.04다. 그런데도 최향남이 메이저리그를 꿈꾼 것은 10년 전부터였다. &lt;BR&gt;
&lt;BR&gt;
침대에 누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누가 뭐래도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1997년 8승 3패에 평균자책점 2.99, 1998년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했던 LG 트윈스 시절이었다. 만나면 엉덩이를 걷어차거나 전지훈련 가서는 따로 방으로 불러 맥주 한 캔을 나눠주던 게 유일한 애정표현이었던 당시 김응룡 감독이 해태를 떠난 후 마음도 편했다. &lt;BR&gt;
&lt;BR&gt;
&quot;그땐 정말 무모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어요. 타자들을 상대할 때 전혀 두렵지 않았죠. 항상 마음먹은 대로 힘껏 공을 던졌습니다. 그런 공을 던졌을 때는 맞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quot; &lt;BR&gt;
&lt;BR&gt;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김용수에 이어 LG의 에이스 자리를 넘보던 최향남은 그때만 해도 금기로 여겨졌던 머리 염색으로 감독 눈밖에 난데다 결국 부상이 겹쳐 2003년 방출됐다. 팀에서 쓸모없는 선수라는 낙인이 기분 좋을 리 없었지만 그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셈 쳤다. 그리고 그 '자유'를 메이저리그 도전의 기회로 바꿨다. &lt;BR&gt;
&lt;BR&gt;
하지만 그를 주목하는 미국 구단은 없었다. 2년간 고향팀 기아에서 와신상담하며 공 끝을 가다듬었다. 구단과 팬들은 그가 고향팀에 정착해 활약해 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2006년 다시 클리브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lt;BR&gt;
&lt;BR&gt;
&quot;저도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저도 한 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대접받는 선수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로 선수에게 안정이라는 건 없어요. 국내에서 인정받는데 굳이 미국까지 왜 가느냐고 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길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죠. 국내에서 인정받은 것도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두고 노력한 덕분입니다. 국내에 눌러 앉으려고 했다면 지금의 최향남도 없었을 겁니다.&quot; &lt;BR&gt;
&lt;BR&gt;
&lt;strong&gt;최고의 한 해였던 2006년... 얻은 건 자신감&lt;/strong&gt; &lt;BR&gt;
&lt;BR&gt;
갈아타야 할 비행기를 놓칠까 초긴장 상태로 찾아간 그곳에서 그는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트리플A 버팔로 바이슨스에서 시즌 8승 5패 평균자책점 2.37을 기록했고 탈삼진은 103개로 팀내 최다였다. 그는 팀내 최고 수훈 선수 중 한 명으로 뽑혔다. 메이저리그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클리브랜드에서는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 &lt;BR&gt;
&lt;BR&gt;
&quot;그땐 정말 몇 경기만 더 나가면 평균자책점을 1점대로 낮출 수 있을 것 같았아요. 그만큼 나가면 안 맞을 자신이 있었죠. 8월 마이너리그 시즌이 끝난 게 아쉬울 정도였죠. 그리고 그만큼 했으니 기대를 많이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나를 마이너리그용 취급하는 것 같아 화도 많이 났습니다.&quot; &lt;BR&gt;
&lt;BR&gt;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얻은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원하던 '강한 공'을 찾았고 예전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느껴졌던 메이저리그 선수들과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lt;BR&gt;
&lt;BR&gt;
&quot;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메이저리그 수준에 가까운 타자들과 정면 승부를 해도 이젠 내 공이 통했거든요. 당장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던지고 싶었던 '강한 공'도 찾았어요. 빠른 볼이 아니라 타자가 못 치는 공이 '강한 공'이죠. 좋은 밸런스에서 타자의 허를 찌르는 공 말이에요.&quot; &lt;BR&gt;
&lt;BR&gt;
마음 같아선 바로 메이저리그의 다른 팀을 알아보고 싶었지만 트리플A의 버팔로 바이슨스와 계약한 기간이 무려 6년이었다. 족쇄를 풀고 다시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언제든 자유롭게 놓아주겠다고 약속한 롯데에서 2년간의 담금질. 롯데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이별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시 떠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lt;BR&gt;
&lt;BR&gt;
이번엔 느낌이 좋다. 그를 불러준 팀은 '노장들의 천국' 세인트루이스다. 게다가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았다. 에이전트가 머물 집도 마련해 주고 통역도 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여건에서 미국 생활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최향남은 솔직히 유혹도 느낀다. &lt;BR&gt;
&lt;BR&gt;
&quot;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번엔 정말 마지막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뭐라도 먹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약 먹고 150km 정도 던지면 코치와 감독이 내 공에 '뿅~' 갈 텐데. (웃음) 근데 그렇게 해서 1년 잘하면 뭐하나요. 결국 사기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름답게 남는 건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거잖아요.&quot; &lt;BR&gt;
&lt;BR&gt;
&lt;strong&gt;최향남의 '보헤미안 랩소디'...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lt;/strong&gt; &lt;BR&gt;
&lt;BR&gt;
고등학교 시절엔 팔이 아파 1년을 무작정 쉬었다. 대학 진학 때는 선생님이 체육특기생 원서가 아닌 일반 원서를 써준 바람에 동국대 입학이 허무하게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프로에는 '구타가 없을 테니 오히려 잘됐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해태에 입단했지만 웬걸 프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lt;BR&gt;
&lt;BR&gt;
선수 생명에 지장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군대도 현역병으로 마쳤고, '불펜 선동렬'이라고 불리던 해태에서는 결국 '불펜'이란 두 글자를 떼지 못하고 LG로 트레이드 됐다. LG 시절 머리 염색 파문은 짧았던 전성기보다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메이저리그 도전기로 매번 겨울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궈왔다. &lt;BR&gt;
&lt;BR&gt;
최향남이 지금까지 야구로 쓴 서사시의 대략적인 얼개다. 진정한 자유인 최향남의 '보헤미안 랩소디'의 결말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모르긴 몰라도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lt;BR&gt;
&lt;BR&gt;
&quot;메이저리그 캠프에 가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기뻐요. 가서 빨간앵무새(세인트 루이스의 마스코트)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정말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냐고요?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못할 일이 없겠구나 그런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lt;BR&gt;
&lt;BR&gt;
최종 목표는 50~60대가 됐을 때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울을 볼 때 악해 보일 때도 있고 선해 보일 때도 있거든요.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약속도 했어요. 우리가 50~60대가 돼서 거울을 볼 때 선한 표정이 나타나게끔 살아보자고. 그런 얼굴은 자기의 꿈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quot;&lt;/font&gt;&lt;/span&gt;&lt;/p&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Baseball allergy</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Wed, 25 Feb 2009 00:32:32 GMT</pubDate>
		</item>
		<item>
			<title>[인터뷰] 이충렬 감독 &quot;&lt;워낭소리&gt;는 우직한 기다림의 결실&quot;</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C%9D%B8%ED%84%B0%EB%B7%B0-%EC%9D%B4%EC%B6%A9%EB%A0%AC-%EA%B0%90%EB%8F%85-%EC%9B%8C%EB%82%AD%EC%86%8C%EB%A6%AC%EB%8A%94-%EC%9A%B0%EC%A7%81%ED%95%9C-%EA%B8%B0%EB%8B%A4%EB%A6%BC%EC%9D%98-%EA%B2%B0%EC%8B%A4</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quot;2&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379841932.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75&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 /&gt;
작년 가을 출산을 앞둔 아내는 꼭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고 불쑥 말했다. 곧 태어날 아기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는 마치 자기가 감독을 한 영화라도 되는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lt;BR&gt;
&lt;BR&gt;
그러면서 아내는 이런 소망을 내비쳤다. &quot;정말 좋은 영화인데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quot; 그 땐 '도대체 무슨 영화길래'라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지만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에서 일하는 아내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준비하면서 미리 본 영화가 있는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다. &lt;BR&gt;
&lt;BR&gt;
그런데 심상치 않았다. 그 영화가 부산영화제에서부터 관객들을 울리기 시작하더니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탔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lt;BR&gt;
&lt;BR&gt;
그리고 아내가 출산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간 지난달 15일 개봉하더니 2월 3일 관객수 10만을 돌파했다. 한국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이다. 영화 속 소처럼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관객을 만난 결과였다. &lt;BR&gt;
&lt;BR&gt;
아무리 영화가 좋아도 개봉관을 잡기 힘들고 그래서 관객들을 끌어모으기 힘든 독립영화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 영화도 비켜가지 못할 것이라던 나의 회의론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반면 아내의 소망은 현실이 됐다. &lt;BR&gt;
&lt;BR&gt;
이쯤 되면 다들 눈치를 챘겠지만 아내가 함께 보자고 했던 영화는 바로 &amp;lt;워낭소리&amp;gt;였다. &lt;BR&gt;
&lt;BR&gt;
영화에 평점을 준 한 네티즌은 “하늘의 모든 별을 &amp;lt;워낭소리&amp;gt;에”라는 극찬을 했고 도올 김용욕 교수도 인디스토리에 전화해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단다. 예전엔 기자들에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인디스토리의 보도자료도 요즘엔 보내기가 바쁘게 기사화 된다. 전에 없던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다. &lt;BR&gt;
&lt;BR&gt;
평소 영화 보러가자면 TV에도 볼게 많은데 뭐하러 돈들여 영화관까지 가느냐던 어머니는 &amp;lt;워낭소리&amp;gt;를 3번 보셨다. 그러면 말다한 거 아닌가. &lt;BR&gt;
&lt;BR&gt;
&lt;strong&gt;&quot;하늘의 모든 별을 &amp;lt;워낭소리&amp;gt;에&quot;&lt;BR&gt;
&lt;/strong&gt;&lt;BR&gt;
지난달 30일 아내가 일하는 인디스토리를 찾았다. 이충렬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 구석에 관객 22만을 돌파한 독립영화의 전설(?) &amp;lt;원스&amp;gt;와 &amp;lt;워낭소리&amp;gt;의 관람객 증가 추세를 비교한 표가 눈에 띄었다. 또 한쪽에는 &amp;lt;워낭소리&amp;gt; 포스터가 쌓여있었고 인디스토리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디스토리의 일터엔 활기가 넘쳤다.&lt;BR&gt;
&lt;BR&gt;
약속 시간인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이충렬 감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예쁘장한 볼펜 한묶음이 들려 있었다. 선댄스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비록 수상 소식은 가져오지 못했지만 대신 인디스토리 식구들에게 줄 선물은 챙겨온 것이라 했다. &lt;BR&gt;
&lt;BR&gt;
첫 스크린 데뷔에서 크게 사고(?)를 친 그였지만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직 ‘PD’가 아닌 ‘감독’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실감이 안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댄스 영화제 다큐 경쟁 부문에 진출 소식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고. &lt;BR&gt;
&lt;BR&gt;
모&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든 시청자에게 공개되는 방송에 아직도 익숙해서인지 관객 5만, 10만이라는 숫자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그에게 먼저 영화 내용 중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lt;BR&gt;
&lt;/span&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014480566.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370&quot; alt=&quot;&quot;/&gt;&lt;/div&gt;-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영화 속 장면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할아버지가 소 달구지에서 내려 소와 함께 걷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lt;BR&gt;
&lt;/font&gt;“나도 그렇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그전까지는 한번도 소 달구지에서 내려 걸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가 힘이 부치니까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가 나무짐을 덜어서 나눠지고 옆에서 걷더라. 길에서 기다리다 그 장면을 잡아내면서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순간 성자의 모습을 느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 독립영화를 보면서 가끔 ‘소통이 불가능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amp;lt;워낭소리&amp;gt;는 대중의 정서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는 것 같다. &lt;BR&gt;
&lt;/font&gt;“다큐멘터리도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눈높이를 관객의 입장에 맞추고 편집했다.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 관객들이 익숙한 극영화의 서사를 적용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의 수없이 반복되는 말과 행동들을 적절하게 여러 장면들에 배치했다. 시간을 미분해 재구성했다고 할까. 이 때문에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의 삶이라는 팩트를 가지고 나만의 조리법으로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이해해 달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리얼리티는 아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영화를 보다보면 인과관계상 있어야할 장면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젊은 소가 송아지를 낳는 장면은 없는데 송아지가 태어나 있다거나 마지막 죽은 소를 장사 치르는 장면은 비중에 비해 분량이 짧다.&lt;/font&gt; &lt;BR&gt;
“제작 환경이 열악했던 탓이다. 비용 문제 때문에 상주하면서 찍지 못했다. 3년 동안 제작하면서 촬영감독도 계속 바뀌었다. 그래서 인상이 강하게 남는 송아지 출산 장면, 늙은 소가 쓰러지는 장면, 축사가 무너지는 장면을 모두 놓쳤다. 소가 죽던 날에도 밤에 연락받고 내려가려는데 아무도 같이 가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서 찍었다.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lt;/font&gt; &lt;BR&gt;
“그림이 될 만한 장면들을 놓치고 걱정이 많이 됐고 어쩔 땐 모두 다시 찍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편집을 해놓고 보니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장면이 빠지면서 관객들이 느끼는 감동이 더 커진 것 같다. 영상의 빈 자리를 할아버지의 마음이 채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정서적인 공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의도한 생략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됐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원래 방송용으로 기획했다고 들었는데.&lt;/font&gt; &lt;BR&gt;
“그렇게 담배를 좋아하시는 할아버지가 담배 피는 장면이 없는 것도 방송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가 마무리되어갈 무렵에 제작사도 바뀌고 방송국에서도 &amp;lt;워낭소리&amp;gt;에 대해 퇴짜를 놨다. 편집 과정에서 방송용보다 영화용으로 만들어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고 결국 &amp;lt;우리학교&amp;gt;를 제작한 고영재 PD를 만나면서 극장에 걸리게 됐다. 이것도 과정은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잘 됐다. 중간에 포기한 제작사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고 들었다.(웃음)”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송아지가 날뛰다 할아버지가 넘어지는 장면을 정지화면으로 처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lt;BR&gt;
&lt;/font&gt;“사실 그건 효과가 아니다. 그 때 내가 직접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그만 카메라 앵글 안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영화에 뜬금없이 나를 등장시킬 수 없어서 그 직전까지만 살려 내다보니 느린 화면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gt;&lt;/font&gt;&lt;/span&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영화 끝의 자막에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라고 했는데 이 땅의 어머니들이 서운하시지 않을까.(웃음)&lt;/font&gt; &lt;BR&gt;
“사실 따지고 보면 &amp;lt;워낭소리&amp;gt;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할아버지 빼고는 할머니와 소들이 다 여성이다.(웃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만 해도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만 아버지는 소통한 적이 없었던 관계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이었다. 아무튼 많은 자식들이 &amp;lt;워낭소리&amp;gt;를 통해서 나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땀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380190695.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75&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strong&gt;느리지만 우지하게... 기다림의 결실 &amp;lt;워낭소리&amp;gt;&lt;/strong&gt;&lt;BR&gt;
&lt;BR&gt;
&amp;lt;워낭소리&amp;gt;의 제작과정은 소의 걸음처럼 느리지만 우직했다. IMF 당시 아버지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결심한 후 기획에만 5년이 걸렸다. ‘핸디캡’있는 아버지와 소를 찾기 위해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 남해, 지리산, 진도, 청주, 함평 등 우시장이 있는 곳과 기계로 농사를 짓기 힘든 계단식 논이 있는 마을들을 모조리 뒤졌다. 풍광이 너무나 좋았던 지리산의 마을을 찾았지만 소가 수명을 다해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lt;BR&gt;
&lt;BR&gt;
2005년 촬영에 들어가서도 6개월을 기다렸다. 카메라가 다가가면 사진 찍는 줄 알고 동작을 멈추는 할아버지가 촬영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에 대해 알아가고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촬영에 들어가서도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뒤를 쫓는 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소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한 장면 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제작 과정 3년은 그런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제작 기간이 상당했는데 제작비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lt;BR&gt;
&lt;/font&gt;“어렵긴 했지만 중간 중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때웠다. &amp;lt;워낭소리&amp;gt;를 시작하면서 이번에도 안되면 그만 두려고 했다. &amp;lt;워낭소리&amp;gt;가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버텼다.”&lt;/font&gt;&lt;/span&gt;&amp;nbsp; &lt;BR&gt;
&lt;BR&gt;
&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 방송일 하면서 어떤 분야를 다뤘나. 그리고 실패했다고 한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lt;BR&gt;
&lt;/font&gt;“사실 내가 무당 전문가다.(웃음) 무속 분야를 다루기도 했었고 문제작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센 주제들을 주로 다루고 싶었다. 비전향 장기수를 다루기도 했었고 &amp;lt;워낭소리&amp;gt; 전에 사북 탄광 노동자들에 대한 기획을 했다. 직접 사북에 가서 6개월 동안 광부들과 함께 살면서 갱에도 들어가고 테이프 150개를 찍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는 '이런 걸 왜 찍었냐”며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 &lt;BR&gt;
&lt;BR&gt;
그렇게 몇 개를 실패하고 나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밤에 호흡 곤란이 와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일종의 공황 장애인데 이번에 선댄스 영화제에 초정되고 나서 비행기 탈 일부터 걱정이 되더라. 아직도 약을 먹고 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 부모님께 &amp;lt;워낭소리&amp;gt; 보여드렸나?&lt;/font&gt; &lt;BR&gt;
“내가 시골 출신인데 시골에서는 아들이 좋은 대학 나와서 성공하길 바라는 분위기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아들의 계속된 실패에 부모님도 적잖이 맘 고생이 많으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언론에도 나오고 해도 아직 잘 믿지 못하시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하신다. 결혼도 안한 노총각 자식이 오랜만에 효도한 기분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lt;/font&gt; &lt;BR&gt;
“방송에서 영화로 매체가 바뀌었을 뿐 나의 정체성은 PD다. 앞으로도 일상적인 것에 시선을 두고 소소한 것들의 위대함, 아름다움을 성찰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영화 &amp;lt;궤도&amp;gt;처럼 실제 인물을 가지고 극영화를 만들고 싶기도 하다.” &lt;BR&gt;
&lt;BR&gt;
&lt;strong&gt;&quot;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을 지켜주세요&quot;&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138125083.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40&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를 구박(?)하는 감초 역할로 자칫 지루할 수 있었던 다큐에 유머를 가미해준 이삼순 할머니는 &amp;lt;워낭소리&amp;gt;를 보면서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lt;BR&gt;
&lt;BR&gt;
원래 말이 많지 않았던 할머니가 “영감이 죽어야 내가 편케 산다”, “아이고 누구는 싱싱한 영감 만나서 농약도 치는데”, “라디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이라며 촬영 내내 쉴 새 없이 하소연을 쏟아 낸 것은 아들 같은 이충렬 감독에게 자신의 삶을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었다. 이제 촬영이 모두 끝나고 할머니는 다시 말수가 줄어든 일상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젊은 소를 길들여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lt;BR&gt;
&lt;BR&gt;
하지만 이 감독은 일부 언론의 극성과 일부 영화팬들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평화롭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상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몹시 걱정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두 분 노인들을 멀리서 그냥 지켜봐 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cc9900&quot;&gt;“소가 죽고 나서도 촬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나, 그래서 더 빨리 죽은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너문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 영화로 인해서 그분들의 삶 자체가 훼손되거나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되는데... 몇몇 방송과 신문이 두 분이 사시는 봉화마을에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도 극구 말렸는데 막무가내로 취재를 갔다 온 이들도 있더군요. 사실 방송을 하면서 출연자들의 삶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병폐를 많이 봤습니다. 이번 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을 사랑한다면 그냥 멀리서 지켜봐 주세요.”&lt;/font&gt;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embed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2.swf?nid=2481691&quot; quality=&quot;high&quot; bgcolor=&quot;#ffffff&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8&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Cine toc</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Wed, 04 Feb 2009 04:34:59 GMT</pubDate>
		</item>
		<item>
			<title>80년대 KBS수신료 거부했던 부모님의 한숨</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80%EB%85%84%EB%8C%80-KBS%EC%88%98%EC%8B%A0%EB%A3%8C-%EA%B1%B0%EB%B6%80%ED%96%88%EB%8D%98-%EB%B6%80%EB%AA%A8%EB%8B%98%EC%9D%98-%ED%95%9C%EC%88%A8</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size=&quot;2&quot;&gt;우리 집이 처음으로 컬러TV를 산 것은 아마도 84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브라운관 앞에 미닫이문이 달린 흑백TV가 우리 집 엔터테인용 가전의 전부였다. &lt;br /&gt;
&lt;BR&gt;
당시 아버지가 사오신 건 골드스타 상표가 붙은 14인치 볼록브라운관 컬러TV. 처음 보는 컬러의 세상은 어린 나에게는 별천지였다. 그래서 컬러TV가 집안에 들어온 후 부모님으로부터 TV 그만보라는 소리를 무던히도 들었던 것 같다. &lt;BR&gt;
&lt;BR&gt;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당시 컬러TV가 있는 집에만 부과했던 KBS수신료를 내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땐 지금처럼 KBS수신료가 전기요금 고지서에 합산돼서 부과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리고 KBS수신료가 25년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으니 당시에도 2500원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물가 수준을 생각하면 그렇게 적은 돈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lt;BR&gt;
&lt;BR&gt;
당시 우리 집은 밤 9시가 되면 무조건 TV를 꺼야했다.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에 '찍소리' 못했던 방송사들의 '땡전 뉴스'가 시작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참고로 내 고향이 광주고 아직도 부모님은 광주에 사신다) 87년 직선으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지만 군사정권의 후예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중엔 김영삼 마저 노태우의 품에 안기면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 집 TV는 계속해서 밤 9시 이후에는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lt;BR&gt;
&lt;BR&gt;
그랬던 부모님이었기에 '땡전 뉴스'를 전하는 KBS에 수신료를 납부하는 건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군사정권의 입 노릇을 했던 KBS에 수신료를 내지 않기 위한 부모님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lt;BR&gt;
&lt;BR&gt;
우선 TV를 보지 않을 때는 TV를 장롱 속에 숨겼다. 그리고 낮선 사람이 초인종을 누를 경우 반드시 누군 지 확인하고 반드시 장롱 문을 잠근 후 문을 열어주라고 신신 당부를 하셨다. 동네 통장 등 조사원들이 아이들만 있는 낮 시간대에 불쑥 방문해 컬러TV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곤 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30~40인치 평면TV라면 집 안에 TV 숨기기가 불가능했을 테지만 14인치 컬러TV는 장록 속에 언제든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KBS수신료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lt;BR&gt;
&lt;BR&gt;
하지만 1994년 전기요금과 KBS수신료가 합산 고지되면서 부모님은 땅을 치셨다. &quot;더러운 놈들, 별별 수작을 다 부리는구만잉.&quot; &lt;BR&gt;
&lt;BR&gt;
그렇게 잊혀졌던 KBS수신료가 2009년 다시 부모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권이 바뀌자 사장이 바뀌고 권력의 비위에 거슬리는 프로그램들이 폐지되는가 하면 군사 독재 시절에나 있는 일인 줄 알았던 기자PD 해직사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cc9900&quot;&gt;&quot;KBS 뉴스 안보면 그만인디 지금까지 낸 시청료가 얼만디... 국민들한테 뜨건 맞을 봐야 정신을 차릴랑가.&quot; &lt;BR&gt;
&lt;/font&gt;&lt;BR&gt;
게다가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을 거치고 요즘에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아버지는 피해의식 때문인지 필요이상의 걱정도 하고 계신다. &quot;느그 회사(필자 주 : 오마이뉴스)는 정말 괜찮은 거여? 이명박이 한번 손 볼라고 할텐디...&quot; 웃으면서 &quot;괜한 걱정 마시라&quot;고 대답하고 말지만 아버지의 한숨은 계속되고 있다. &lt;BR&gt;
&lt;BR&gt;
나는 KBS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을 원론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공영방송을 우리나라에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 어느 쪽의 눈치도 보지 않고 국민과 시청자들의 눈치만 보는 방송만 만들어준다면 그깟 몇천원 아깝지 않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는 공영방송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lt;BR&gt;
&lt;BR&gt;
그런데 이명박 정권과 함께 과거로 회귀한 KBS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도 갖추지 못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신료는 자본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시청자들이 주는 것인데 아직 권력으로부터도 독립을 이루지 못한 KBS에 내는 수신료가 과연 누구를 위해 쓰일 것인지는 뻔하다. &lt;BR&gt;
&lt;BR&gt;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이 가져올 폐해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과 같은 국민들의 마음 속에 다시 일고 있는 수신료 거부 논의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lt;/font&gt;&lt;/span&gt;&lt;/p&gt;&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8&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2.swf?nid=2392830&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어퓨 굿 대한민국</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Mon, 19 Jan 2009 02:08:59 GMT</pubDate>
		</item>
		<item>
			<title>한국판 '명예의 전당', 팬들이 바라는 가입기준은?</title>
			<link>http://blog.ohmynews.com/consrad/entry/%ED%95%9C%EA%B5%AD%ED%8C%90-%EB%AA%85%EC%98%88%EC%9D%98-%EC%A0%84%EB%8B%B9-%ED%8C%AC%EB%93%A4%EC%9D%B4-%EB%B3%B4%EB%8A%94-%EA%B0%80%EC%9E%85%EA%B8%B0%EC%A4%80%EC%9D%80</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quot;2&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82/1160583797.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477&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한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성구회' 초대 회원 양준혁·송진우·전준호 선수(왼쪽부터)&lt;/p&gt;&lt;/div&gt;
13일 한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격인 '성구회' 창립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영문 이름은 '다이아몬드 클럽'으로 다이아몬드는 야구 그라운드와 보석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합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전설'로 회자될 200승 투수 송진우(한화) 선수, 2000안타를 기록한 양준혁(삼성) 전준호(히어로즈) 선수가 초대 멤버입니다. &lt;BR&gt;
&lt;BR&gt;
앞으로 성구회에 가입하려면 이들처럼 투수는 200승 또는 300세이브, 타자는 2000안타 이상을 기록해야 합니다. 물론 해외파도 가입할 수 있지만 가입 기준 기록의 50%를 국내 리그에서 달성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박찬호 선수와 같은 경우는 메이저리그에서만 117승을 올렸기 때문에 가입이 불가능합니다. 반면 한일통산 1827안타를 기록 중인 이승엽 선수는 한국에서 9시즌 동안 1286안타를 기록했기 때문에 앞으로 173개를 보태 2000안타를 돌파하면 정회원 자격을 얻습니다. 물론 본인이 가입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도 있습니다. &lt;BR&gt;
&lt;BR&gt;
그리고 기준 기록을 돌파하지 못했다하더라도 명예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성구회 회장을 맡은 송진우 선수는 &quot;한국 프로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기거나 한국 야구발전에 공헌한 선수 다섯 분 정도를 우선 염두해 두고 있다&quot;고 했습니다. 한일 통산 156승 230세이브를 기록한 선동열 삼성 감독이 명예회원 1순위입니다. 박찬호 선수도 그 상징성에서 명예회원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lt;BR&gt;
&lt;BR&gt;
&lt;strong&gt;성구회 가입 기준에 관한 논쟁... 팬들도 참여하자&lt;BR&gt;
&lt;/strong&gt;&lt;BR&gt;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에서 논쟁 아닌 논쟁을 벌였던 것이 가입 기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보다 경기 수가 많은 일본의 '명구회' 기준을 봐도 2000안타, 200승, 250세이브입니다. 세이브 기준이 우리보다 50개 적습니다. 게다가 홈런은 기준에서 빠졌습니다. 홈런 타자들은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투수의 경우 국내 풍토상 선발에서 마무리로, 마무리에서 선발로 보직이 바뀌는 경우도 허다해 그만큼 200승과 300세이브 고지는 멀어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lt;BR&gt;
&lt;BR&gt;
그래서 송진우·양준혁·전준호 선수도 가입 기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lt;/p&gt;&lt;BR&gt;
&lt;blockquote&gt;&quot;야구는 하나하나가 다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챙겨야할 기록이 많아 부득이하게 3개로 정리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성'이다.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가면서 꾸준하게 뛰는 선수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투수 부분의 경우 200승이나 300세이브 달성이 쉽지 않기 때문에 2세이브를 1승으로 인정해 줄지 여부를 고민하는 중이다.&quot; - 전준호&lt;BR&gt;
&lt;BR&gt;
&quot;홈런의 경우 300개는 너무 적고 400개는 한국 정서상 어감이 좋지 않다. 그런데 500개는 달성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리고 홈런을 300~400개 정도 치면 2000안타라는 기록은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투수의 경우에는 승과 세이브 뿐 아니라 경기 출장수를 넣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조웅천 선수의 경우 800경기 출장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기록을 다 기준에 넣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quot;-송진우&lt;/blockquote&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그리고 송진우 '회장님'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lt;br /&gt;
&lt;BR&gt;
&lt;font color=&quot;#cc9900&quot;&gt;&quot;후배 선수들이 이 기준이 지금은 까마득해 보이겠지만 힘든 기록이기 때문에 달성했을 때 더 값지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고등학교 졸업하고 19~20세에 입단하는 시대다. 우리 세 명은 대학 졸업하고 병역 의무까지 마치고 기록을 세웠다. 후배 선수들이 성구회 출범으로 동기부여를 받고 더 분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quot; &lt;BR&gt;
&lt;/font&gt;&lt;BR&gt;
하지만 성구회 회원들은 가입 기준은 다소 변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창립 초기니 만큼 많은 의견을 들어보고 운영에 있어서 고칠 부분이 생기면 반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팬들의 의견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성구회 초대 회원 세명만 이런 문제를 고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lt;BR&gt;
&lt;BR&gt;
메이저리그의 명예의 전당 가입 여부는 기자들의 투표로 결정이 됩니다. 한국형 명예의 전당은 팬들의 참여로 만들어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100년 후를 보고 만들었다는 성구회가 권위를 세워가려면 선수의 도덕성이라든지 팀 공헌도, 팬 친화도 등 '숫자'에 나타나지 않는 것들도 평가 기준에 포함되는 것이 맞을 테니까요. 특히 성구회는 '스타'들의 친목 모임이 아니라 장학사업, 유소년 야구 지원 등 야구 저변확대와 봉사활동에 뜻을 두고 만들어지는 단체이기도 해서 그 필요성이 더 큽니다.&lt;BR&gt;
&lt;BR&gt;
명예회원의 경우도 성구회 내부 의견으로만 자격을 부여하기 보다 팬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팬 여러분의 의견을 나눠주세요. 좋은 의견들을 취합해 성구회 측에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8&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2.swf?nid=2359892&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Baseball allergy</category>
			<author>youngleft (스위치히터)</author>
			<pubDate>Tue, 13 Jan 2009 09:11:38 GMT</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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