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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nnel>
		<title>길위에서 중얼거리다</title>
		<link>http://blog.ohmynews.com/gakgol/</link>
		<description>내 소망은 정치없는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같은 무지랭이가 굳이 정치를 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 보는 것!! 그러니 그때까진 바로 보아야 바로 쓸 수 있겠지? ..... 어쭈~ 그렇다면..눈관리는 필수? 손관리는 사명?? ㅋ</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03 Jul 2009 19:20:41 GMT</pubDate>
		<item>
			<title>날씬한 자본주의</title>
			<link>http://blog.ohmynews.com/gakgol/246893</link>
			<description>&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3366&quot; size=&quot;2&quot;&gt;&lt;BR&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373132677.jpg&quot; width=&quot;266&quot; height=&quot;465&quot; alt=&quot;&quot;/&gt;&lt;/div&gt;상가 대형 유리창은 하루에도 수천 장씩 &lt;br /&gt;
풍경을 삼키는 대식가다 &lt;BR&gt;
끝없이 배를 채운다 &lt;BR&gt;
오토바이, 승용차, 행인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대도 &lt;BR&gt;
언제나 날씬하고, 뒤가 깨끗하다 &lt;BR&gt;
배설물도 없고, 기억도 하지 않는다 &lt;BR&gt;
순간, 순간을 먹어치우는 &lt;BR&gt;
저 지루한 운명은 쉼 없이 반복된다 &lt;BR&gt;
내가 노예냐고, 내가 짐승이냐고 따져 묻지 않는다 &lt;BR&gt;
&lt;BR&gt;
유리창의 커다란 입에 제물로 바쳐지는 &lt;BR&gt;
오늘 그리고 내일 &lt;BR&gt;
저장되지 않는 발자국, 손자국들이 풀풀 &lt;BR&gt;
먼지처럼 날아다니다가 &lt;BR&gt;
투명한 유리를 통과하며 &lt;BR&gt;
간단명료하게 죽음을 완성한다 &lt;BR&gt;
&lt;BR&gt;
상가 대형 유리창은 수천수만의 유령이 들락거리는, &lt;BR&gt;
뼛조각 하나 없이 &lt;BR&gt;
텅 빈 유리관만 남은 공동묘지 &lt;BR&gt;
차가운 가슴뿐인 유리창은 허연 눈을 희뜩거리며 &lt;BR&gt;
또 다시 누군가의 그림자를 조용히 삼킨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3366&quot; size=&quot;2&quot;&gt;&amp;lt;날씬한 자본주의 / 홍일표&amp;gt; &lt;BR&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8e8e8e&quot;&gt;&lt;strong&gt;&lt;font size=&quot;3&quot;&gt;&lt;em&gt;&lt;BR&gt;
# 서민 대통령&lt;BR&gt;
&lt;/em&gt;&lt;/font&gt;&lt;/strong&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gt;&lt;font color=&quot;#999966&quot;&gt;어느 서민대통령과 서민들의 대화다. &lt;BR&gt;
&quot;배고파요&quot;&lt;BR&gt;
&quot;왜요? 빵먹으면 되지...&quot;&lt;BR&gt;
&quot;그게..저..빵이...&quot;&lt;BR&gt;
&quot;그럼 라면 먹어요&quot;&lt;BR&gt;
&quot;그것두..돈이...&quot;&lt;BR&gt;
&quot;아, 그럼 나처럼 '찍소리' 말고 돈벌어요. 사람들이 겔러터져선 말야...요즘 월매나 사기조은 세상인데..&quot;&lt;BR&gt;
&quot; .............................&quot;&lt;BR&gt;
&lt;/font&gt;&lt;BR&gt;
요즘엔 초딩들도 이정도 수준은 아니다.&lt;BR&gt;
돈있으면 춘향일 사지 월매는 모하게?&lt;BR&gt;
서민대통령의 '서'자는 쥐'서(鼠)'자더냐?&lt;BR&gt;
사람새끼가 '찍소리'하면 그게 사람이더냐?&lt;BR&gt;
80년대 사오정 시리즈로 웃기려던 거라면, &lt;BR&gt;
이건 '깜찍'하다 못해 '끔찍' 한거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3366&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lt;font face=&quot;dotum&quot;&gt;'설치류 세상'에 국민은 '궁민'이 맞다.&lt;BR&gt;
사람들아, &lt;BR&gt;
소통없다 행여나 불평일랑 하지마라. 고혈압으로 떡실신 안당하려면.&lt;BR&gt;
&lt;BR&gt;
히유~ 그저 먼지처럼 모두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lt;BR&gt;
&lt;/font&gt;&lt;/p&gt;&lt;center&gt;&lt;div id=&quot;jukeBox2468932Div&quot; style=&quot;width:0px; height:0px;&quot;&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
				&gt;writeCode(getEmbedCode('http://blog.ohmynews.com/script/jukebox/flash/main.swf','100%','100%','jukeBox2468932Flash','#FFFFFF',&quot;sounds=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098564686.mp3*!Position+-+%EB%A8%BC%EC%A7%80%EA%B0%80+%EB%90%98%EC%96%B4_*&amp;amp;autoplay=1&amp;amp;visible=0&amp;amp;id=2468932&quot;,&quot;false&quot;))&lt;/script&gt;&lt;/div&gt;&lt;/center&gt;&lt;BR&gt;
&lt;/font&gt;&lt;/font&gt;&lt;BR&gt;
&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音有吟遊</category>
			<author>각골명심 (각골명심)</author>
			<pubDate>Fri, 03 Jul 2009 18:33:39 GMT</pubDate>
		</item>
		<item>
			<title>비정규직법은 희대의 악법, 폐지가 해답</title>
			<link>http://blog.ohmynews.com/gakgol/246886</link>
			<description>&lt;p&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&lt;br /&gt;
&lt;strong&gt;&lt;font face=&quot;batang&quot; color=&quot;#003366&quot; size=&quot;5&quot;&gt;기간제법은 희대의 악법, 폐지가 해답&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lt;strong&gt;&lt;font color=&quot;#8e8e8e&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d41a01&quot;&gt;[기고]&lt;/font&gt; ‘시행’이든 ‘유예’든 비정규직 해고 보장&lt;BR&gt;
&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082420178.jpg&quot; width=&quot;555&quot; height=&quot;36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유예 안이 2009.7.1. 국회에서 한나라당 단독으로 기습 상정됐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이번 단독상정의 국회법상 유효여부는 차치하더라도 &quot;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을 외면 할 수 없다.&quot; 며 날치기 상정한 유예 안이 &quot;기간제법 제4조 2항(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의 전환)의 시행 3년 유예&quot;로 된 것은 도대체 어느 별 어느 나라에서 통용되는 논리적 귀결이란 말인가?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묻지도 따질 필요도 없이 노무현 정권의 유산임이 명백한 기간제법은 그 태생부터 날치기를 통해 태어났고 진화 역시 날치기로 되었다. 이 법은 비정규직 노동자 뿐 만 아니라 향후 사회로 나와 직업을 가지게 될 잠재적 비정규직인 대학생, (이대로 흘러간다면)향후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매우 높은 청소년 등 국민 상당수의 목줄을 죄고 점점 조여 간다는 점에서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에 비길 만 하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기간제법은 이미 2년간 시행되어 왔다. 지난 2년의 법 시행기간동안 이랜드를 비롯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법을 편법적으로 이용하는 사용자들에 의해 자신의 직장을 속절없이 잃고 거리로 내몰려 왔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이미 기간제법은 입법논의 단계에서부터 그 명칭과는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양산하게 되고 일상적인 해고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말이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따라서 정부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현행 기간제법이 유예 없이 시행되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는 주장은 &lt;font color=&quot;#d41a01&quot;&gt;이미 기간제법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어 왔다는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주장&lt;/font&gt;에 불과하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064321230.jpg&quot; width=&quot;555&quot; height=&quot;362&quot; alt=&quot;&quot;/&gt;&lt;/div&gt;&lt;/font&gt;&lt;/p&gt;&lt;BR&gt;
&lt;p&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face=&quot;dotum&quot;&gt; &lt;/p&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faffa9&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2&quo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003366&quot;&gt;(~전략~)그러나 이번 사태는 새로운 입법으로 저소득층 근로자의 고용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돌출되었고, 근로자와 사용자의 대립 뿐 아니라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정부 및 사회단체 등 사이의 갈등 양상을 띠고 있는데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정치적인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후략~)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2&quo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003366&quot;&gt;(~전략~)사회 전반적인 고용불안의 극복 및 사회복지 체제의 정비가 함께 조화롭게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위 ‘기간제 및 단기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그 결과 여성 등 저소득층 근로자의 고용환경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발생하였고, 따라서 노조원들 개개인의 의사를 넘어서 사회 전체적인 이슈가 됨으로써 그 쟁의 양상이 장기화 되고 치열해지게 된 점, 반면 피고인들 대부분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득이 이 쟁의에 가담하게 된 여성 근로자들로서(~후략~) &lt;BR&gt;
&lt;/font&gt;&lt;/font&gt;&lt;/div&gt;&lt;BR&gt;
&lt;p&gt;&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&lt;br /&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위 박스의 판결문들은 바로 이랜드 투쟁 속에서 나온 판결문들의 내용 중 일부이다. 이랜드 투쟁이 2007년 여름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미 기간제법의 입법 및 시행초기부터 기간제법의 문제점을 법원이 인정하고 있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그러나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이나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은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고 그동안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하여 왔다.&lt;/font&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그리고 이제서야 호들갑들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기간제법 제4조 2항의 시행을 3년간 유예하지 않는다면 10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될 것이라고 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협박을 서슴지 않으며, 민주당은 자신들이 만든 원죄는 교묘하게 숨긴 채 자신들만이 비정규직을 위한다고 혹세무민의 선전만 계속하고 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p&gt;&lt;BR&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d0ff9d&quo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003366&quot; size=&quot;2&quot;&gt;(~전략~) 이 사건 사용자는 일찍부터 기간제법 시행에 대비하여 왔던 사실이 인정되고, 일반조교와 행정보조원의 업무 내용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오히려 대학의 행정업무 특성상 장기간 복무한 자의 업무수행능력이 높을 것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반조교와의 근로관계를 일괄적으로 단절하려 하였으며, 행정보조원의 근로계약기간은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을 적용할 수 없는 2년을 상한으로 명시하였고 행정보조원의 급여가 이전 일반조교보다 오히려 높게 책정된 사실 등을 종합할 때, 이 사건 사용자가 이 사건 근로자들에 대하여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은 향후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의 적용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여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후략~) &lt;BR&gt;
&lt;/font&gt;&lt;/div&gt;&lt;BR&gt;
&lt;p&gt;&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위 판정문은 명지대학교에서 행정조교로 길게는 14년간 일했던 노동자를 해고한 명지대학교에게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내린 판정문중 일부인데, 상기 판정문의 내용을 보면 기간제법 시행 2년간 사용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lt;br /&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d41a01&quot;&gt;사용자들은 ① 기간제법이 시행되자 &quot;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quot; 를 막기위해 ② 취업규칙 등 각종 내부 규정을 수정하여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를 하였고 ③ 비정규직 노동자들 기간만료로 해고하며 ④ 그로인한 빈자리는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해서 보완하여 ⑤ 기간제법 제 4조 2항의 적용을 회피하려는 준비를 해 왔던 것이다.&lt;/font&gt;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그야말로 참담한 현실이다. 비정규직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도구로 사용되며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빈자리를 또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로 메우는 악순환이 2년 내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기간제법의 정규직 전환기간은 그 기간 내에 해고가 금지되는 기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기간동안은 아무 문제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형집행기간에 불과하며 용케 살아남더라도 남는것은 무기계약직이라는 허울좋은 명칭일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저수준에 육박하는 낮은 근로조건의 향상은 바랄 수 없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현행 기간제법은 시행을 하건 유예를 하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보장한다는 본질이 변할 수 없는 희대의 악법이다. 따라서 현행 기간제법의 시행이나 유예를 논하기 이전에 폐지 혹은 그에 준하는 대대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기간제법의 수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lt;font color=&quot;#d41a01&quot;&gt;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사용사유의 제한을 법으로 명문화하여 비정상적 고용형태인 기간제 근로계약에 대하여 엄격한 제한을 두어야 함과 동시에 현행 차별시정제도를 더욱 강화하는 형태로의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lt;/font&gt;하다. 그렇지 않다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 보장을 위한 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현행 기간제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lt;BR&gt;
&lt;BR&gt;
&lt;BR&gt;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lt;font color=&quot;#003366&quo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8e8e8e&quot;&gt;2009-07-03 / 김재민(노무법인 필) / 출처: 민중언론-&lt;/font&gt;&lt;font face=&quot;batang&quot; color=&quot;#d41a01&quot; size=&quot;5&quot;&gt;&lt;strong&gt;참&lt;/strong&gt;&lt;/font&gt;&lt;font face=&quot;batang&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4&quot;&gt;&lt;strong&gt;세상&lt;/strong&gt;&lt;/font&gt;&lt;BR&gt;
&lt;/font&gt;&lt;BR&gt;
&lt;BR&gt;
&lt;BR&gt;
&lt;/font&gt;&lt;/p&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반대 신자유주의!</category>
			<author>각골명심 (각골명심)</author>
			<pubDate>Fri, 03 Jul 2009 14:26:09 GMT</pubDate>
		</item>
		<item>
			<title>모성본능..</title>
			<link>http://blog.ohmynews.com/gakgol/246806</link>
			<description>&lt;p&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9966&quot; size=&quot;2&quot;&gt;&lt;br /&gt;
산을 내려오다 그만&lt;BR&gt;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9966&quot; size=&quot;2&quot;&gt;늙은 나무의 흰 뼈와&lt;BR&gt;
바람에 쪼여 깡치만 남은 샛길이&lt;BR&gt;
세상으로 난 출구를 닫아걸고 있습니다&lt;BR&gt;
아직은 사위가 침침하지만&lt;BR&gt;
곧 사방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들겠지요&lt;BR&gt;
그렇다고 산에 갇힐까 염려는 마세요&lt;BR&gt;
설마 그러기야 할라구요&lt;BR&gt;
또 그런들 어쩌겠어요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9966&quot; size=&quot;2&quot;&gt;혹시 보이시는지&lt;BR&gt;
점자를 더듬는 소경처럼&lt;BR&gt;
빛이 아물어야만 판독 가능한&lt;BR&gt;
저 내밀한 것들의 아우성 말입니다&lt;BR&gt;
밤하늘을 저공 비행하는&lt;BR&gt;
반딧불이의 뜨거운 몸통과&lt;BR&gt;
흐르지 못하고 서성이는 시린 산그늘,&lt;BR&gt;
팥배나무 잎맥에 파인 바람의 지문과&lt;BR&gt;
억겁을 휘돌아 식물의 육신을 빌려&lt;BR&gt;
짓무른 환부를 째고 해산한&lt;BR&gt;
꽃잎 끈 눈물 같은 사리 한알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9966&quot; size=&quot;2&quot;&gt;내 안의 오래된 상처도&lt;BR&gt;
푸르고 곱게 부식되어&lt;BR&gt;
다음 생엔 부디&lt;BR&gt;
이마 말간 꽃으로 환생하시기를&lt;BR&gt;
삼가 합장 또 합장하며&lt;BR&gt;
저문 산에 꽃燈 하나 내걸고 내려옵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9966&quot; size=&quot;2&quot;&gt;&amp;lt;저문 산에 꽃燈 하나 내걸다 / 손세실리아&amp;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217964914.jpg&quot; width=&quot;399&quot; height=&quot;353&quot; alt=&quot;&quot;/&gt;&lt;/div&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lt;/p&gt;&lt;BR&gt;
&lt;div align=&quot;right&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모성애가 담고있는게 단지 여성성(女性性)의 상징일 뿐일까? &lt;BR&gt;
그렇지 않다.&lt;BR&gt;
&lt;BR&gt;
모성(母性)이 품는건 단지 아이가 아니다&lt;BR&gt;
그것은 세상이다!&lt;BR&gt;
세상과 생명(아이) 사이를 어떻게 관계지어 가야 할지에 대한&lt;BR&gt;
보다 본질적으로 인간애가 가져야 하는 물음이자 태도이기에 그렇다&lt;BR&gt;
&lt;BR&gt;
오늘날 우리는 &lt;BR&gt;
어쩌면 일단의 거대한 '모성거부증후군'들과&lt;BR&gt;
모성본능을 지켜내기 위해 맞서 싸우고 있는것 인지도 모른다&lt;BR&gt;
&lt;BR&gt;
만약,&lt;BR&gt;
모성본능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라면,&lt;BR&gt;
그것은 이미 '인간이기를 상실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lt;BR&gt;
&lt;/font&gt;&lt;/div&gt;&lt;BR&gt;
&lt;p&gt;&lt;/font&gt;&lt;center&gt;&lt;div id=&quot;jukeBox2468062Div&quot; style=&quot;width:0px; height:0px;&quot;&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
				&gt;writeCode(getEmbedCode('http://blog.ohmynews.com/script/jukebox/flash/main.swf','100%','100%','jukeBox2468062Flash','#FFFFFF',&quot;sounds=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376063428.mp3*!X+Japan+-+Crucify+My+Love%28Dahlia%29_*&amp;amp;autoplay=1&amp;amp;visible=0&amp;amp;id=2468062&quot;,&quot;false&quot;))&lt;/script&gt;&lt;/div&gt;&lt;/center&gt;&lt;BR&gt;
&lt;/font&gt;&lt;/p&gt;&lt;BR&gt;
&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音有吟遊</category>
			<author>각골명심 (각골명심)</author>
			<pubDate>Thu, 02 Jul 2009 16:29:24 GMT</pubDate>
		</item>
		<item>
			<title>인간 파괴의 '더러운 전쟁'을 중단하라</title>
			<link>http://blog.ohmynews.com/gakgol/246799</link>
			<description>&lt;p&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&lt;br /&gt;
&lt;strong&gt;&lt;font face=&quot;batang&quot; color=&quot;#003366&quot; size=&quot;5&quot;&gt;&quot;MB, 중도실용주의라면 쌍용차 사태에 개입하라&quot;&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lt;strong&gt;&lt;font color=&quot;#8e8e8e&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d41a01&quot;&gt;[기고]&lt;/font&gt; 인간 파괴의 '더러운 전쟁'을 중단하라&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lt;/font&gt;&lt;/p&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359388536.jpg&quot; width=&quot;555&quot; height=&quot;311&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p&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&lt;br /&gt;
&lt;font color=&quot;#8e8e8e&quot;&gt;쌍용자동차의 긴장은 용역과 '구사대'를 등을 동원하여 파업을 깨고자 한 자본이 공장 외부로 철수하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선 듯합니다. 이 와중에 자본은 희망퇴직 기회의 재부여, 분사 및 영업직 전환을 통한 일자리 제공, 무급휴직 및 향후 우선 재고용, 협력사와 연계한 재취업 기회 제공, 5년 내 경영정상화를 통한 제한적 리콜제 시행 등의 인력 구조조정 방안을 담은 최종안을 제시하며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파산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공권력'의 투입가능성을 말하면서 그 내적 긴장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하지만 이미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파산 선고입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8e8e8e&quot;&gt;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그들은 오직 노동을 통해서만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부모를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그들의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에서 보이듯 노동자들은 한치 앞의 상황을 내다볼 수 없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존재인데 자본이 그런 안을 들이대며 위협한들 어떤 노동자가 그것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일방적으로 제시된 안을요. 자본의 안에 대해 '죽은 자들'을 겨냥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정리해고를 모면한 노동자들, 즉 '산 자들'의 욕망을 자극하여 이른바 '노-노갈등'을 증폭시키고 '경찰력'을 투입하기 위한 수순의 명분용이라는 비판이 가시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그런데 문제는 그 '산 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최종안조차도 진정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예고편이라는 점에 있습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8e8e8e&quot;&gt;남게 된 노동자들에 대한 3년의 기본급 동결, 2년간 상여금 250% 반납, 3년 동안 일체의 복지 반납 등에 더하여 정리해고를 통한 대폭적인 인원감축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보이고 있으니 향후 노동강도가 얼마나 세질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과도한 인사 및 경영권 침해등과 같은 불합리한 노사관행을 개선하여 경영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는 그 동안의 민주적 노동조합활동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향후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징표이기에 그렇습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이미 노동자들이 임금 조건 등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놓고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다한 채 오직 인적인 구조조정만을 고집하면서 일방적으로 제시한 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파산 내지 공권력을 투입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 이 어찌 양식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나요. 한마디로 자본이 제시하는 대책은 노동자들을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lt;BR&gt;
&lt;/fon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&lt;BR&gt;
그렇기에 그것은 구조조정의 칼을 피해간 '산 자들'조차 '살아 있는 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본에게 노동자는 필요에 따라 취하고 버릴 수 있는 상품에 불과한 존재이기에 그런 것이겠지요. 그들에게 노동자는 결코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기에 그런 것이겠지요.&lt;BR&gt;
&lt;/fon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391092530.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7&quot; alt=&quot;&quot;/&gt;&lt;/div&gt;&lt;font color=&quot;#993366&quot;&gt;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 쇠파이프로 무장한 용역 사이에 경찰 지휘관이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amp;nbsp; ⓒ 권우성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&lt;BR&gt;
&lt;font color=&quot;#d41a01&quot;&gt;사정이 이런데도 진정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겨운 것인지 모르는 자들은 쌍용차파업을 두고는 배부른 노동자들이 매번 떼를 써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수법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 어려운 위기의 시기에 먼저 회사를 살려야 노동자도 살지 않겠는가라는 나름의 처방을 내 놓으며 소수가 다수를 위해 희생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말도 합니다. 그리곤 짐짓 이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단속적으로 반복되는 노사 간의 갈등상황이 정말로 지겹다는 발언을 남기고 슬며시 사라집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8e8e8e&quot;&gt;이제는 너무나 자주 들어 식상할 대로 식상한 것이 된 이러한 언술에 그래도 잠시 주목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무엇이냐구요. 이 세상에는 자본만이 자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우리의 주변에는 그 자신의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수많은 '자발적 자본가들'이 존재합니다&lt;/fon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 &lt;/fon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도대체 그들이 누구냐구요. 그것을 따지기 이전에 혹시 우리가 그런 자본은 아닌가요.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하지만 사실 필자도 이들 못지않게 그 어떤 반복되는 상황이 지겹습니다.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일하던 박정희 정권 때에도 경제성장을 하여 빵이 늘어나면 '노사가 그것을 함께 나누며 번영된 민주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하였지요. 공개적 독재의 날섬이 너무 무섭기도 하였기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며 쥐죽은 듯 노동하였고 그 결과 자본과 권력 또한 자랑스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을 이루었습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그런데 도대체 그 약속, 노동자의 그 소박한 꿈은 어디로 갔나요. &lt;/fon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이후 그런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을 대가로 선진국 클럽이라 할 OECD에 가입하였고 그 회원국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의, 상상할 수도 없는 평균 2316시간의 중노동을 하는데도 오히려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소수의 자본과 권력이 거의 모든 성과를 독점하니 이 또한 어찌된 일입니까. 온 집안 식구들이 파트타임이다 아르바이트다 해서 일을 해도 한 사람의 가장이 노동하던 때보다 생활하기가 더 어려우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요. 이 정도의 엄청난 생산력을 지닌 나라에서 자식 하나 공부시키는 것이 이처럼 어려우니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요. 세계 10위라는 무역국의 지위를 넘나드는데도 최저임금을 깎자고 난리를 치는 나라가 진정 사람 사는 나라이기는 한 것입니까. 그들이 약속하는 그 좋은 시절은 언제 오는 것인가요. 이제는 지겨움의 정도를 넘어 정말 넌덜머리가 날 뿐입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천문학적인 유동성이 이윤을 찾아 부동산과 증권 시장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린다는데, 왜 그 돈은 노동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존재와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되어 쓰이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국민의 공금인 연기금은 채권, 증권에 투자하여 엄청난 손해를 보면 오히려 그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면서도 왜 그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이용될 수는 없는 것인가요. 거대 글로벌 자본들의 사내 유보자금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철철 흘러넘쳐나고 있다는데, 왜 그 축적에 기여한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항상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왜 주기적으로 경제위기가 오면 결국 노동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죽어나가야 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lt;/fon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죄라면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노동을 한 죄밖에 없는데 말이지요. 아마도 큰 죄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평소 비정규직노동자 등 가난한 자들과 더 함께 하지 못한 죄 말입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이른바 학문의 수준에서는 국가의 성격, 그 위상과 역할을 둘러싼 적지 않은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 국가가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는 기제라는 것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노사관계의 비대칭성이 국가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조차 부정하는 무대포의 주장이 자본의 이데올로그가 아니라면 이 시대에 어찌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것을 어떻게 해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쌍용차 문제, 나아가 지금 비정규직 문제 등이 단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그렇기에 오늘의 쌍용차 문제, 비정규직 사태를 만든 가장 근본적인 책임을 신자유주의 정권들, 그것을 옹호하는 사회정치세력들에게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냐구요. 애초 기존의 불평등하고 부당한 사회관계들, 권력관계들을 온존, 심지어 역행시키려는 자들에게 일차적 책임을 돌리는 것은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기에 그렇습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따라서 근본적인 책임은 기존의 관계들을 해소, 극복하여 민주적 사회관계들을 만들고자 꿈꾸는 사회정치세력들, 이른바 '진보', 그리고 좌파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8e8e8e&quot; size=&quot;2&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그것의 현실적 표현인 이명박 정권에게 쌍용차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오늘의 쌍용차 사태를 만든 핵심당사자가 바로 국가라는 점에서 위임권력의 최소한의 양식을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이 그렇게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노무현 정권은 산업은행을 통해 상하이자동차에 2700억이나 빌려준 것은 물론 기술이전을 제한하는 약정마저 없애는 특혜를 안기면서까지 매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알고 있듯이 상하이자동차는 인수 후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은 물론 신차개발 등을 위해 그 어떤 투자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핵심기술을 빼낸 후 그것을 부실덩어리로 만들어 놓은 뒤 나 몰라라하고 빠져나갔지요. 그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어땠습니까. 쌍용차의 매각 지체를 비판하며 더 빨리 매듭지으라고 직간접적으로 압박하지 않았던가요.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그런데도 지금 바로 그 매각의 핵심당사자들이 사태해결을 외면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후계자로서 '추모정국'의 최대수혜자가 된 민주당은 가장 커다란 책임을 져야 할 정치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해결의 열쇠를 쥔 이명박 정권 또한 묵묵부답입니다. 과거 노무현 정권의 아주 작은 흠집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모든 '권력 및 사정 기관'을 동원하여 저인망식 조사를 하던 그 집요함과 철저함이 무색하리만치 노동자들의 삶이 걸린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해서는 '노사의 대화'만을 강조할 뿐 그저 손을 놓고 있습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아마도 정치적으로는 갈등관계에 있으나 자본에 대해서는 &quot;시장권력론&quot;이니 &quot;비즈니스 프렌들리&quot;니 하며 경쟁적으로 구애하는 '애증의 친구' 사이 이기에 그런 것인가 봅니다.&lt;/font&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8e8e8e&quot; size=&quot;2&quot;&gt;그렇다면 선거철도 아닌데, 왜 애꿎은 서민을 들먹이며 재래시장을 찾아 불필요한 '떡볶이 논쟁'을 벌이는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차가운 가슴으로 삶에 지쳐 움츠러든 가난한 서민들의 거친 손을 잡는 이유를 정말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의 부모와 자식이, 그들의 동료들이 바로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진정 모르기에 그러는 것인가요. 그러면서 비정규직의 비참한 삶 운운하니 연민을 넘어 같은 인간이라는 점이 부끄럽기조차 합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진정 중도이자 서민을 위한 정치세력임을 자임한다면, 위임받은 공적 권력으로서 행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아니 지금의 쌍용차 사태를 야기한 핵심당사자들이라는 점을 최소한 인정한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즉각 문제해결에 나서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른바 '4대강 사업'에 수십 조 원을 들여 건설자본의 재생산을 돕고자 하는 마당에, 과거 상하이자동차에 2700억 원의 막대한 자금과 온갖 특혜를 주었던 마당에, 왜 공적자금 투여에 그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인가요. 알 수 없습니다. 올해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한 국정방침과 어긋나기에 그런 것이라면 그 생각이 무에 그리 중요한가요. 당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그 언술을 깨끗이 잊으셨나요.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라는 그 말이요.&lt;/font&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사회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삶과 존재를 부정하는 정치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반(反)인간, 따라서 반(反)정치이기 때문입니다.&lt;/font&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최소한의 기대조차 부정하게 만드는 현실입니다. 그 것은 자신들의 책임과 역할에 민감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을 자꾸 타자에게 전가시키려는 권력의 오래된 습성 때문에 조성됩니다. 사익과 파당에 근거한 조중동과 같은 수구언론의 보도를 추종하며 쌍용자동차사태의 악화를 외부세력, '좌파'가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권력의 편협한 인식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요. 최근에는 용산사태에 대해서도 동일한 인식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동조하여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용산사태나 쌍용자동차 사태를 자본의 뜻에 따라 쉽게 처리하여 지금은 함포고복(含哺鼓腹)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답답한 것이겠지요.&lt;/font&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안타깝지만 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난 냉전시기를 지배한 반인간, 반정치의 찌꺼기입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8e8e8e&quot;&gt;그렇다면 진정 '좌파'가 죄입니까. 이명박 정권이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서 권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강부자 정권'으로 계속 존재한다면, 그리하여 오직 경찰국가로 이 사회 전체를 끊임없는 전쟁터로 만든다면, 거기에 진보, 좌파가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lt;/font&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어떤 정치체제에서든 수탈, 억압, 배제, 차별당하는 이들의 존재와 삶을 옹호하며 자본과 권력의 부당한 행태를 비판하고 그것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가장 민주주의적인 세력이 진보좌파라면, 어떻게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 나몰라할 수 있나요. 아니 진보좌파 이전에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어찌 이런 부당함을 그저 바라보고만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위임받은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공적 책임성을 느끼지 못하는, 말로만 중도를 외치는 정치세력들이나 할 수 있는 위선이지 진정한 진보좌파, 아니 양식 있는 사회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삶의 자세, 정치적 행태가 아닙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8e8e8e&quot;&gt;그렇기에 그런 편협한 사고로부터 벗어날 때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최소한의 공간이 마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기화하지 못하는 공적 권력기관들의 존재는 문제해결에 그 어떤 의미 있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적대적 긴장 만을 증폭시킬 뿐이지요.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8e8e8e&quot; size=&quot;2&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는 여전히 양식 있는 많은 분들이 존재하기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오늘의 쌍용차사태를 있게 한 그 정치세력들의 의미 있는 고민과 대책을 기대해 봅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봅니다. 왜냐구요. 그 까닭은 '비정규직보호법'이라는 악법을 제정한 과거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일원인 그녀의 행위에 과거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의 의미가, 인간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에 그렇습니다.&lt;BR&gt;
&lt;BR&gt;
그런데 그 당시 환상의 짝꿍이 되어 그것을 통과시킨 한나라당과 지금의 집권 이명박정권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나요. 관련 상임위에서 비정규직법 3년 유예안을 몰래 상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라는,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린 그들 '자본의 당'의 목표를 다시 확인하며 절망합니다. 또한 그 모습을 보며 쌍용자동차에 경찰특공대를 동원하여 그 곳을 '제2의 용산'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라는 소름 돋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도한 기우에 불과한 것인가요.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를 자꾸 물거품으로 만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관계조차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이 '더러운 전쟁들'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니 촉구합니다. 노동자들, 가난한 자들은 결코 누구의 노리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대중에게 어떤 아픔은 세월이 지나면 잊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아픔은 한이 되고 분노가 되기에 그렇습니다.&lt;/font&gt; &lt;font color=&quot;#8e8e8e&quot;&gt;그래서 쌍용차 사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봅니다. 그 과정에서 그처럼 강조하는 중도실용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BR&gt;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lt;font color=&quot;#003366&quot;&gt;2009-07-02 /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 / 출처: 프레시안&lt;/font&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225929073.jpg&quot; width=&quot;169&quot; height=&quot;28&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font&gt;&lt;/p&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대안사회가는길</category>
			<author>각골명심 (각골명심)</author>
			<pubDate>Thu, 02 Jul 2009 14:21:20 GMT</pubDate>
		</item>
		<item>
			<title>투쟁없이는 민주주의 없다</title>
			<link>http://blog.ohmynews.com/gakgol/246640</link>
			<description>&lt;p&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&lt;br /&gt;
&lt;strong&gt;&lt;font face=&quot;batang&quot; color=&quot;#003366&quot; size=&quot;5&quot;&gt;투쟁없이는 민주주의 없다&lt;/font&gt;&lt;/strong&gt; &amp;nbsp;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&lt;BR&gt;
&lt;font color=&quot;#8e8e8e&quot; size=&quot;3&quot;&gt;&lt;/p&gt;&lt;BR&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e4e4e4&quot;&gt;&lt;strong&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한 세기에 걸친 공세에 시달려, 이제 껍데기뿐&lt;BR&gt;
‘경제 법칙’이 지배하면서 흔적 없이 사라질 판&lt;BR&gt;
&lt;BR&gt;
&lt;/font&gt;&lt;/strong&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언론 플레이에 능한 철학자들이, ‘국민’이란 단어를 ‘포퓰리스트’로, ‘주권’을 ‘주권주의자’로, ‘국가’를 ‘국가주의자’로 바꿔놨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다. …민주화 투쟁의 최우선 과제는 공격당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그 본래 의미를 복원시켜주는 것이다.&lt;BR&gt;
&lt;/font&gt;&lt;/div&gt;&lt;BR&gt;
&lt;p&gt;&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&lt;br /&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소설 &amp;lt;치타&amp;gt;(Gu?pard)의 주인공인 살리나 왕자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죽음, 그것은 절대적인 평온”이라고 중얼거린다. 문학 속에서는 이처럼 시간과 역사를 초월해 평화를 추구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다. 살리나 왕자나 (쥘 베른의) 소설 &amp;lt;해저 2만 리&amp;gt;의 주인공인 네모 함장의 경우처럼, 사회생활을 저버린 채 타인과 동떨어져 지내면서 개인적인 ‘성취’를 도모하는 일이 문학작품 속에선 극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딱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평온’은 말 그대로 죽음을 의미한다.&lt;/font&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그런데 사회조직 속에서 갈등이 사라지길 염원하는 이들은 흔히 삶에 저항할 줄을 모른다.&lt;/font&gt; &amp;nbsp; &amp;nbsp;&amp;nbsp;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요즘의 민주주의에서는, 마치 합의를 이룬 것처럼, 어떠한 분노의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이른바 ‘현대적’이라는 정치권의 아첨꾼들은 심지어 ‘평온한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현실 문제를 이론화했다. 반면 주요 정치가들과 대부분의 정치 집단은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아이디어만 내놓고 있다.&lt;BR&gt;
&lt;BR&gt;
이런 몽환적 정치 인식은 정파 간의 실제 간극을 지워버리는 동시에 사회운동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우리는 시위 때마다 권력자들이 “정치는 거리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되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진지한 반론들을 제도의 틀 안에서 혹은 거리에서 표현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에 필요한 표현의 공간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lt;BR&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066188874.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45&quot; alt=&quot;&quot;/&gt;&lt;/div&gt;&lt;/font&gt;&lt;/p&gt;&lt;BR&gt;
&lt;p&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민주주의는 합의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제도다.&lt;/font&gt;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의 클레이스테네스가 보통선거 제도를 도입한 것은 당시 아테네에 퍼진 갈등을 부정하기보다는 평화적으로 그 해결책을 찾고,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임의 법칙을 모색하겠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lt;font color=&quot;#0000ff&quot;&gt;투쟁과 민주주의가 화두가 되지 않았던 적은 결코 없었다.&lt;/font&gt;&lt;br /&gt;
&lt;BR&gt;
19세기, 프랑스 공화당원들은 직접·보통 선거 제도를 지지했다. 그들은 국가가 그 자체로서 신성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의 참여를 통해서만 정당성을 갖는다고 인식했다. 1877년 8월 15일 급진 공화파인 레옹 강베타가 당시 프랑스의 파트리스 마크 마옹 전 대통령에게 일러준 유명한 훈수가 있다. &lt;font color=&quot;#0000ff&quot;&gt;“국민이 의사 표명을 했을 때는 따르거나 혹은 사임을 해야 한다.”&lt;/font&gt; 이어 강베타는 국민과의 정치적 충돌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lt;font color=&quot;#0000ff&quot;&gt; “집권자들은 만약 보통선거 제도가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우리가 그렇게 내려진 결정의 권위를 존중할 경우 모든 갈등이 평화적으로 종식되고, 모든 위기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물론, 당대에는 직접·보통 선거 제도가 노동운동과 충돌을 낳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 제도를 부르주아 방식으로 노동운동의 내부 갈등을 해결하려는 수단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루동 지지자들은 정치 투쟁의 자율성을 전면 부정하고, 경제 상황의 변화에 부합하는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마르크스와 대립각을 세웠다. 장 조레스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구축한 공적 영역의 역사인 동시에, 심지어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구축한 그들의 자율성의 역사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민주주의를 해방과 투쟁의 도구라고 강조한다. “요즘도 여전히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비인간적인 독재’를 들먹이거나 혹은 갑작스런 권력 쟁취나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을 계획하는 사회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아직 나약하던 시대,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승리를 가장하는 수단으로 여기던 당시로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각 진영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울 방편을 모색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에서는 공화파의 중재가 있었고, 드레퓌스 옹호 사건에서 공화파의 개입이 힘을 발휘하며 민주주의 원칙이 정착된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이처럼 민주주의는 20세기 초반에 점점 더 보편적인 원칙처럼 소개됐다. 그로부터 20년 뒤 이 생각들은 많이 달라졌다. 극우적인 성향들이 정당성을 확보한 요인도 있지만 소련 체제가 노동운동에 강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민주주의 원칙에 의문을 제기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1차 세계대전(1914~18)을 계기로, 민주주의의 근간이 뒤흔들렸다. 전쟁으로 인해 어떠한 정치적 반대와 충돌도 허용되지 않았고, 전례 없는 대량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한 극적인 합의를 도출할 때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가면처럼 이용됐다. 전쟁이 끝나자 소련의 전체주의적 체제가 들어섰다. 그럼에도, 합리적인 일부 혁명가들은 여전히 민주주의가 계급 투쟁과 어떻게 보조를 맞출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언론의 무제한적인 자유, 즉 집회 및 결사의 절대적인 자유가 없이는 광범위한 대중의 지배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라며 가장 광대하고 무제한적인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물론,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은 마치 민주주의의 승리처럼 환영받았다. &lt;font color=&quot;#0000ff&quot;&gt;하지만 시민들은 몰개성화한 인간, 이를테면 기준이나 뿌리가 없이 권위적인 성향에 쉽게 먹잇감이 되는, 미세 분열된 개인으로 전락하고 만다.&lt;/font&gt; 이로 인해 1940년부터 1950년까지 매카시즘이 스탈린주의와 보조를 맞추게 됐다. 미국은 1954년 과테말라에, 소련은 1956년 헝가리에 각각 개입하며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을 드러냈다. 가장 최근의 사건들, 특히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같은 사건들 또한 이런 과정을 전혀 종식시켜주지 못했다. &lt;font color=&quot;#0000ff&quot;&gt;반대로 이 사건들은 오히려 자본주의를 최종 승리한 유일한 시스템처럼 정당화한 경향이 있었다.&lt;/font&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그런데 민주주의 원칙은 반대 의견이 부재할 때 그 의미를 잃게 된다. 민주주의와 사회계급 투쟁이 이율배반적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사회적 투쟁의 기반인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민주주의 체제의 원칙은 자유다. ‘자유’의 가장 중요한 징표는 피지배자와 지배자가 서로 위치를 바꿔간다는 점이다.”&lt;/font&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많은 시민이 민주화 투쟁을 소소하게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lt;font color=&quot;#0000ff&quot;&gt;하지만 민주화 투쟁의 최우선적 가치는, 공격에 맞서 싸우고 있는 민주주의에 그 본래 의미를 복원시켜주는 일에 있다.&lt;/font&gt; 보통선거 제도는 민권의 필수적인 도구다. 그러나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초기 단계에는 보통선거 제도를 정착시키지 않았다. 프랑스의 첫 국회는 참정권을 오로지 납세자들에게만 부여해, 부자들만 정치적인 표현을 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대중은 봉기했고, 1792년 8월 10일 보통선거 제도가 탄생하며 군주제가 타도됐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혁명 후, 원칙적으로 유지되었던 보통선거 제도는 19세기 말까지 왜곡되어 사용됐다. 그래서 나폴레옹 시대에는 보통선거 제도가 국민투표 참정권으로 변신해, 유권자의 자격을 주택 소유 여건에 따라 제한했고, 제2공화국 때는 이 제도를 통해 노동자들을 투표에서 배제했다. 당시 여성들은 투표권조차 없었다. 분명 사람들은 이제 보통선거 제도가 잘 복원돼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더 교활하게 왜곡돼 있다. 대표적인 예로 대통령 선거와 같은 특별한 선거를 들 수 있다. 이는 종종 20~25%밖에 득표하지 못한 후보에게 거의 전권을 부여함으로써 논쟁의 본질적인 차이를 없애버린다. 이러한 제도는 의회 활동을 제약한다. 그것은 또한 경제적인 이유나 유럽의 지침 같은 제약들을 구실로 민주적 토론을 위축시키기도 한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변화의 옹호자들조차도, 이런 상황이 권력을 안정시키고 심각한 사회 위기 속에서도 권력을 살아남게 했다고 말하면서도, 정치적 표현의 부재가 자주 거리의 충돌을 확산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19세기로 회귀해버린 것이다. 납세자들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하던 시기와 거의 유사해진 것이다.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왜냐하면 경제와 사회 체제에 정말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은, 자유주의 투쟁뿐만 아니라 민주화 투쟁에도 맞서는 권력을 정당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lt;/font&gt; 프랑스의 첫 국회 때 ‘샤플리에법’이 이미 제안했던 것인데, 그때 이 법은 투표권을 최고 특권층으로 제한함으로써 모든 ‘연합’을 금지했다. 요컨대 사람들은 한 세기 동안 발전시켜온 사회 및 정치 민주주의를 폐기처분해버린 셈이다.&lt;/font&gt;&lt;/p&gt;&lt;BR&gt;
&lt;p&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민주주의를 정의하는 국민·주권·공화국·시민권(이 단어는 그렇게 많이 짓밟히지 않았다. 그 반대다) 등의 단어들이 집중적으로 짓밟히며, 그 의미를 잃거나 경멸적인 뜻으로 덧칠되었을 때, 이미 민주주의는 철학적으로 대단히 퇴보해버리지 않았던가! 주권이 무엇인가? 프랑스 헌법에는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민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또 세계인권선언 21조를 따르자면 주권은 국가의 토대가 된다.&lt;br /&gt;
&lt;BR&gt;
주권을 논하는 원칙은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2001년 브뤼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의장 로마노 프로디가 “유럽은 오직 유럽 당국에 의해서만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고 선언했을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국민의 주권은 어디서 행사되는 것일까? 로비단체들의 영향력을 조심스럽게 은폐하는 시민사회의 정당성은 무엇일까? 많은 정파들이 혼재한 가운데, 사회에 깔린 실제 기류가 어떻게 표출될 수 있을까?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국민이 여타 로비단체 중 하나일 뿐인 이런 복합적인 정치 현장에서 사회 투쟁은 극히 제한적인 정당성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2005년 5월 29일에 치러진 프랑스의 유럽헌법조약 국민투표 결과(조약이 부결됨)가 강제 폐기처분되고, 더 나아가 유럽의회가 프랑스의 국민투표 결과를 개의치 않겠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못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투쟁에 그 어떤 정치적 해석이 가해질 가능성이 더는 없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민주주의가 완벽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장 조레스의 표현처럼, 민주주의는 “계층들이 움직이는 복판이며, 거대한 사회 충돌 속에서 중재하는 힘이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날이 갈수록, 민주주의 기반에 대한 공략들이 깊이 있는 반론을 담은 정치적 표현들을 막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민주주의 시스템의 토대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다. 언론 플레이에 능한 철학자들이 주도하는 작업들은 심지어 민주주의 이념의 원칙을 침식시키고 있다. 이들의 이념 작업은 ‘국민’이란 단어를 ‘포퓰리스트’로, ‘주권’을 ‘주권주의자’로, ‘국가’를 ‘국가주의자’로 바꿔놨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이처럼 책무의 본말이 전도돼 있기 때문에, 통치권자들은 즉시 방어하는 입장이 되고, 사회 투쟁이 표출될 수 있는 정치 터전이 심한 공격을 받고 있다. 또 개인은 자신의 자유와 투쟁에 대한 흥미를 동시에 잃어버렸다. 그래서 순응주의가 득세 할 수 있었고, 순응주의는 사회 투쟁의 의미가 분명히 규명되는 터전인 민주주의 토론의 중요성을 단숨에 부정한 채, 충돌의 해결책을 ‘경제의 법칙’이라고 일컫는 무소불위의 표현에 떠맡기고 있다.&lt;BR&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dotum&quot;&gt;&lt;font color=&quot;#993366&quot;&gt;&lt;font size=&quot;2&quot;&gt;&lt;/p&gt;&lt;BR&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ffdaed&quot;&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333333&quot; size=&quot;2&quot;&gt;&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2009-06-03 / 알드레 벨롱-정치학자 / &lt;span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5mm&quot;&gt;&lt;font color=&quot;#333333&quot;&g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219/1269743101.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9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글쓴이: 앙드레 벨롱(André Bellon) &lt;BR&gt;
* 저서: &amp;lt;새로운 예속&amp;gt; &amp;lt;1980년대 정치사&amp;gt; &amp;lt;천일야화&amp;gt; 등 &lt;BR&gt;
* 번역: 조은섭 -파리 7대학 불문학박사로 알리랑스 프랑세즈에서 강의중. 주요 역서로 &amp;lt;착각&amp;gt;(2004) 등이 있다. &lt;BR&gt;
&lt;/font&gt;&lt;BR&gt;
&lt;/font&gt;&lt;/span&gt;&lt;/font&gt;&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대안사회가는길</category>
			<author>각골명심 (각골명심)</author>
			<pubDate>Wed, 01 Jul 2009 00:29:07 GMT</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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