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범 60주기-22] <백범과 감옥생활-⑤> 고종 '특명'으로 극적 목숨 건져

    [특별기획-백범 60주기] 2009/05/19 09:00 정운현

    '칙명'을 내려 그의 목숨을 구해준 고종황제


    해주감옥에서 인천감옥으로 이감된 백범은 세 차례에 걸쳐 신문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보신대로 감옥에서 그는 신문명을 소개하는 책도 읽고, 문맹의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또 그들 가운데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소장을 대신 써주는 등 나름으로 보람된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감옥살이는 힘들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일본은 그가 태어나던 병자년(1876년)에 조선과 ‘수호조약’이라는 미명하에 강제로 협약을 맺고는 하루가 다르게 조선땅을 넘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며 일본군 장교를 처단했으니 일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이제나저제나 죽을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독립신문>을 읽다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경성․대구․평양․인천에서 아무 날 강도범 누구누구, 살인범 누구누구 등과 함께 인천에 있는 살인강도 김창수(김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찌된 일인지 마음은 차분했습니다. 교수대에 오를 시간이 반나절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는 식사하고 책을 읽는 등 평상시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교수형 소식이 전해지자 '산 조문' 이어져

    그런데 주변에선 난리가 났습니다. 그 신문이 배포된 후로 감리서가 술렁거렸고, 인천항 사람들의 ‘조문’이 옥문에 답지하였습니다. 원래 조문(弔問)이란 죽은 사람에게 하는 것인데 산 사람인 그에게 말하자면 ‘산 조문’을 온 것입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보러 왔소” 하고는 모두 비오듯 눈물을 흘렸는데, 그를 마지막으로라도 보기 위해 면회자들이 감옥 앞에 줄을 이었습니다.

    당시 인천감옥에서는 사형 집행을 늘상 오후에 끌고 나가서 우각동(牛角洞)에서 교살하던 것이 관례였었습니다. 그는 아침밥, 점심밥을 잘 먹고 죽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할 마음도 없이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는 동료 죄수들이 마치 제 일처럼 다들 가슴아파하였습니다. 그에게 음식을 얻어먹던 도둑 죄수들과 그에게 글을 배우던 감옥 제자들, 그리고 그에게 소송에 대한 지도를 받던 여러 죄수들이 몹시도 애통해 하며 울어댔습니다. 과연 제 부모 죽을 때에도 그렇게 애통해 하였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사형장으로 끌려 나갈 시간을 기다리며 차분하게 <대학>을 읽으며 기다렸는데, 시간이 제법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 그럭저럭 저녁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옆 사람들은 “창수는 특수죄인이니 야간집행을 하려는가 보다” 하였습니다.

    일본영사관이 인천감리 이재정에게 김창수(김구)에 대해 참수형을 요구하면서 보낸 공문


    그리고 다시 얼마 뒤 저녁 무렵이 되어서 여러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옥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옳지, 지금이 그때로군!’ 하고 앉아 있는데, 동료 죄수들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마치 자기들이 죽으러 가는 듯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순간 감옥 안쪽 문을 열기도 전에 감옥 뜰에서 “김창수 어느 방에 있소?”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치 저승사자의 목소리 같았다고나할까요?

    그런데 그들은 그의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아이구! 이제 김창수는 살았소! 아이구, 우리 감리 영감과 감리서 전 직원과 각 청사 직원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밥 한 술 먹지 못하고 창수를 어찌 차마 우리 손으로 죽인단 말이냐 하고 서로 말없이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탄하였소. 그랬더니 지금 대군주(고종) 폐하께옵서 집무실에서 전화로 감리 영감을 불러 계시옵고, 감리 영감은 김창수의 사형을 정지하라는 칙령(勅令)을 받잡고 밤중에라도 감옥에 내려가 창수에게 알려주라는 분부를 내리셨소. 오늘 하루 얼마나 상심하셨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모보수' 네 글자에 고종이 어전회의 열어

    그간의 경위를 살펴보면, 당시 백범은 3차 신문(1986. 9. 10)을 마치고 미결수 상태로 인천감옥에 수감돼 있었습니다. 인천감리서의 수장인 감리사 이재정은 신문 결과를 사법행정 담당부서인 법부(法部)에 보고하였습니다. 이후 10월 22일자로 법부대신 한규설은 고종에게 김창수(김구)에게 교수형을 건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법률에 ‘사형 죄는 세 번 복심하여 왕에게 아뢴다’고 규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으려니 그 때 임금 곁에서 보좌하던 승지(承旨),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관 한 사람이 죄수들의 조서를 뒤적이며 보던 중 ‘국모보수(國母報讐)’ 넉 자를 보고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이미 임금의 재가(裁可)가 난 사안이지만 이를 다시 꺼내 임금께 보여드렸습니다. 그 내용을 본 고종은 즉시 어전회의를 열었고, 회의에서 국제관계와 관련된 일이니 일단 생명이나 살리고 보자고 결정을 하고는 이를 인천감리서에 연락해준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백범일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대군주께서 친히 전화하신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때 경성부 안에는 이미 전화가 가설된 지 오래였으나, 경성 외의 지역에 장거리 전화가 설치된 것은 인천이 처음이었다는 사실이다. 인천까지의 전화 가설공사가 완공된 지 3일째 되는 병신년(丙申年, 1896) 8월 26일의 일이었다. 만에 하나 그때까지 전화 준공이 못 되었다면, 바로 사형이 집행되었을 거라고들 하였다.”

    10월 2일자로 인천감리서에서 조속한 판결을 건의한 당일자로 법부에서 내려보낸 답신 전보


    그러나 위의 <백범일지> 내용 가운데는 오류가 몇 있습니다. '백범연구자'인 도진순 교수가 펴낸 <주해본 백범일지>에 따르면, 8월 26일은 양력 10월 2일에 해당되는데, 이날 인천감리서에서는 일본영사관의 압력을 받고서 법부에 김창수에 대한 조속한 판결을 건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법부는 당일 전보를 보내 사형은 '왕이 결정할 문제'라며 이를 유보하였습니다. 이 때 법부에서 인천감리서에 연락을 취한 통신수단은 ‘전화’가 아니라 ‘전보’였습니다.

    국내에서 전화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2년 뒤인 1898년의 일입니다. 당시 궁내부(宮內部)에서 각 아문(衙門)과 연락을 위해 고종 황제가 머물던 덕수궁에 전화시설을 마련하여 각 아문은 물론 인천감리서에까지 전화를 개통하면서부터입니다. 이밖에도 인천감리서로 연락을 한 주체는 고종황제가 아니라 법부였으며, 또 김창수에 대해 사형을 중지시킨 것이 아니라 고종의 재가를 명분으로 판결을 지연시킨 것입니다.

    일본영사관, 김창수에 '참수형' 압력

    구사일생으로 그가 목숨을 건졌다는 소문이 퍼지자 감옥 안은 다들 기뻐하며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마치 한겨울 눈서리가 내리다가 갑자기 봄바람이 부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다들 그를 보고 참말로 이인(異人, 기인)이라며 경탄하였습니다. 사형 당일에도 태연하게 말하고, 밥 먹고 한 것은 필시 선견지명이 있어 자기가 죽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대군주의 칙령으로 사형이 정지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날 ’산 조문‘을 왔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축하인사차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는데, 전날 왔던 사람들과는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즉, ‘사형 정지’ 이전에 그를 찾은 사람들은 순전히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찾아왔었다면, 이번에 찾아온 사람들은 그가 머지않아 대군주의 부름을 받아 귀한 몸이 될 줄 알고 미리 와서 아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관리도 있었고, 인천의 저명인사들도 여럿 포함돼 있었습니다.

    해방 후 환국하여 고종황제의 능을 찾은 백범(오른쪽 다섯번째), 오른쪽 세번째는 선우진 비서(1946. 7. 24)


    (* 6부에서는 그가 인천감옥을 ‘탈옥’한 얘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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