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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nnel>
		<title>난곡을 떠난 이웃사촌은 어디로 갔나</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link>
		<description>2003년 '달동네 난곡'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새 아파트촌이 들어섰다. 하지만 재입주율은 8.7%. 정들었던 난곡을 떠난 1만5천여명의 이웃사촌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을 찾아나섰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11 Mar 2009 10:53:28 GMT</pubDate>
		<item>
			<title>&quot;달동네 난곡 가내공업, 우리만 남았어요.&quot;</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53836</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177fcd&quot;&gt;[글&amp;nbsp; 최봉실]&lt;BR&gt;
&lt;/font&gt;&lt;BR&gt;
난곡 종점에서 버스로 한 정류소만 내려가면 신림13동 우림시장이다. 신림13동은 재개발된 난곡 아파트 바로 아랫마을인 국회단지, 중앙단지와 더불어 달동네 난곡 원주민들이 많이 이주한 곳이다. 오마이뉴스 ‘난곡 그 후’ 취재팀은 재개발로 난곡을 떠난 이웃사촌을 찾던 중, 달동네 시절 난곡에서 가내공업을 하다 이곳으로 내려와 계속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숙(60), 이종식(62) 부부를 만났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408962372.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379&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신림13동 우림시장. 난곡 원주민들이 많이 이주해 살고 있다. &lt;/p&gt;&lt;/div&gt;
&lt;BR&gt;
우림시장의 한 은행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이들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편직 공장을 만날 수 있다. 공장으로 내려가는 입구는 말끔했고 공장 안에는 자동 편직 기계가 가지런히 즐비해 있었다. 자동 기계라 부부 둘이서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lt;BR&gt;
&lt;BR&gt;
하지만 달동네 난곡에서 가내공업을 하던 대부분의 집들은 난곡이 재개발 되면서 중요한 생계일을 접어야 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난곡에서 가내공업을 하던 집들 중 지금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 집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거예요. 대부분 다 그만 뒀지요. 그래도 이 일 했던 사람들은 다 다시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구요.”&lt;/font&gt; &lt;BR&gt;
&lt;BR&gt;
다른 난곡 가내공업 집들과 달리 이씨 부부는 난곡을 떠나서도 계속 공장을 운영한 것이다. 반자동 기계로 하던 것도 아예 자동 기계로 다 바꿨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으로 지하 공장을 얻었어요. 이 자동 기계가 한 대 1250만 원이예요. 총 열 두 대인데 이거 마련하느라 2억 가까이 빌렸을 걸요. &amp;nbsp;그런데 지금은 다 갚았어요. 일이 잘 돼 한 달에 500만 원씩 벌기도 했거든요.”&lt;/font&gt; &lt;BR&gt;
&lt;BR&gt;
공장은 신림 13동에 있지만 집은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신림7동 중앙단지에 있다. 난곡 재개발로 일부 난곡 원주민들이 신림10동에 마련된 임대아파트로 들어갈 무렵 이씨네는 중앙단지로 내려왔다. 이씨 부부는 “ 전세 끼고 융자 보태서 40평 집을 2억에 사버렸다”고 호탕하게 대답했다. 난곡 달동네에서 53만 원에 산 16평 집을 7천 3백 만 원에 팔아 그 돈을 집 사는 데 보탠 것이다. &lt;BR&gt;
&lt;BR&gt;
하지만 자신들의 경우는 “잘 된 경우”라 했다. 잠시 부모님 집에 들렀던 결혼한 이씨의 딸이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 원주민들을 쫓아내는 재개발에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난곡에서 태어나고 자란, 난곡이 고향인 젊은 세대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우리는 그나마 잘 된 경우죠. 하지만 어렵게 된 사람들이 많아요. 재개발은 없는 사람들을 그냥 쫓아낸다는 거죠. 원주민들이 그대로 살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은 정말 안 좋은 것 같아요.” &lt;BR&gt;
&lt;/font&gt;&lt;BR&gt;
이씨 가족이 난곡에 들어온 것은 먼저 난곡에 살고 있던 이경숙씨의 시고모가 이들의 이사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73년 시부모님이 시골집을 팔아 난곡에 집을 장만했다. 이씨 부부는 그때는 이웃끼리 사는 것이 “너무 좋았다”며 행복해 했다. 낮 반주를 기분좋게 마시고 들어온 이종식씨도 그동안 취재로 만났던 이웃들 이름을 이야기하자 한 사람 한 사람 “특별한 사이”라며 반가워했다. &lt;BR&gt;
&lt;BR&gt;
이종식씨는 중학교때부터 편직 일을 배워 지금까지 평생 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이 일 하며 자식들 공부 다 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냈다고 뿌듯해 했다. 하지만 평생 편직 일을 한 이종식씨는 “지금이 가장 어렵다”고 전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난곡에서 가내공업 할 때는 월 200만 원씩 벌었어요. IMF때가 호황이었는데, 그 때는 월 1000만 원씩까지도 벌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후부터 점점 어려워지다 최근에 급격히 안 좋아졌어요. 수출도 안 되고 내수도 안 되고. 무엇보다 개방이 너무 많이 되고 중국산이 많이 들어오면서 일거리가 팍 줄었어요. 우리 옷들이 다 메이커로 나가는 옷들인데. 지금 두 달째 이렇게 기계가 놀고 있다니까요.” &lt;BR&gt;
&lt;/fon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84369698.jpg&quot; width=&quot;579&quot; height=&quot;36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이종식, 이경숙 부부가 운영하는 편직 자동 기계 공장. 최근 일이 떨어져 &amp;quot;기계가 놀고 있다&amp;quot;고 한다. &lt;/p&gt;&lt;/div&gt;
&lt;BR&gt;
열악한 가내공업 형편도, 다른 이웃은 재개발로 다 일을 접게 되는 상황에서도 버텨왔던 이씨 부부이지만 지금 상황은 정말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소기업, 하청기업가로서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저는 중학교때 이 일 배워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예요. 세금도 꼬박꼬박 다 내요. 그런데 우리 같은 소기업, 하청업에 정부 지원이 너무 없어요. 은행에서 돈 빌리려고 하면 절차나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아주 사업을 하기가 어렵다니까요. 소기업들이 대출 좀 편하게 할 수 있는 제도라도 마련되면 좋겠어요.”&lt;/font&gt; &lt;BR&gt;
&lt;BR&gt;
그래도 두 부부는 연신 기분 좋고 호탕했다. 이종식씨는 “다음에 술 안 먹었을 때 한번 오면 들려줄 얘기가 많다”며 옛 난곡 이야기와 이웃 소식을 반가워했다.&lt;/font&gt;&lt;BR&gt;
&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1부]어디로 갔을까</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Wed, 18 Feb 2009 13:43:00 GMT</pubDate>
		</item>
		<item>
			<title>아슬아슬 생활 터전, &quot;계속 살게 해주세요.&quot;&lt;br&gt;-난향동 산93-1번지 난곡 원주민의 소원</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53136</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&lt;BR&gt;
&lt;font color=&quot;#177fcd&quot; size=&quot;3&quot;&gt;[글 최봉실]&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69030144.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난향동 산93-1번지 여섯 가구에는 10여 명의 난곡 원주민이 살고 있다.&lt;/p&gt;&lt;/div&gt;
&lt;BR&gt;
&lt;fon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좋게 하려다 살 터전 잃게 마요.”&lt;/font&gt; &lt;BR&gt;
&lt;BR&gt;
난곡 원주민 김수정(가명, 57)씨가 보내온 문자 내용이다. 김수정씨는 재개발된 난곡 아파트 바로 아랫 자락인 난향동 산93-1번지에 산다. 이곳은 달동네 난곡으로 불렸던 신림7동 산101번지 일대가 재개발되고 난 후에도 개발에서 제외되어 옛 달동네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록 세월이 빗겨간 낡은 노후주택이지만 김씨에게는 소중한 삶터다. 재개발이며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이곳마저 철거될까 김씨는 불안하다. 그런 사정을 털어놓고도 내심 걱정스러워 보낸 문자였다. &lt;BR&gt;
&lt;BR&gt;
김수정씨는 남아 있는 달동네 난곡 가옥을 찾아온 오마이뉴스 ‘난곡 그 후’ 취재팀에게 자신은 이곳이 좋아서 산다고 강조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나는 이곳이 너무 좋아서 살아요. 산 밑이고, 복지관 앞이니 혜택도 좋고. 공기도 좋고. 나는 좋아서 여기 살고 있고 죽을 때까지 여기 살고 싶어요.” &lt;BR&gt;
&lt;/font&gt;&lt;BR&gt;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노후주택이 외부에서 바라보기 좋지 않을 거라 걱정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저 앞에 새 건물이 들어섰는데, 저 위에서 여길 내려다보면 보기가 좋지 않을 거잖아요. 그렇지만 철거해버리면 저도 그렇고 여기 있는 노인네들 갈 데가 없으니, 그냥 깔끔하게 손 봐서 계속 살게 해주면 좋겠어요. 보기도 좋고, 우리도 계속 살 수 있게 말이예요.”&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59796204.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남아 있는 달동네 가옥 마당 앞 장독대&lt;/p&gt;&lt;/div&gt;
&lt;BR&gt;
이곳에 사는 여섯 가구의 세입자들은 고물을 줍는 일을 하거나 홀로 사는 독거 노인이다. 혼자 살고 있는 김씨는 다리가 안 좋아 아르바이트 일을 하고 몸을 추스르기 위해 쉬기를 반복하며 지낸다. 김씨 집은 전세 1100만 원. 바로 옆집 할아버지네 전세가 1500만 원인 것만 빼면 나머지 주민은 전세 1000만 원 이하에 지내고 있다. 김씨는 비록 가옥은 노후하지만 이곳만한 터전을 찾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개발이 되면 우리 같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어요? 밀려나는 거지. 어디 임대아파트 같은 데 들어가게 한다고 해도 이 분들 거기 가면 뭐해 먹고 살아요? 다 고물 줍는 일 하시는 분들인데. 주택가를 간다 해도 고물을 쌓아 놓을 자리가 없는데. 여기는 마당이며 터가 넓으니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잖아요. 결국 또 이런 비슷한 데 산 밑에 찾아가는 것밖에 없는 거죠.”&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33428039.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난향동 산93-1번지 가옥 세입자들은 주로 고물 줍는 일을 한다. 마당에 고물이며 폐지가 쌓여 있다.&lt;/p&gt;&lt;/div&gt;
&lt;BR&gt;
김수정씨는 난곡 재개발 당시 순환재개발 방식으로 제공됐던 신림 10동 임대아파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성치 않는 몸으로 벌이가 쉽지 않으니 홀로 살아가는 김씨에게 매달 20만 원이 넘는 관리비며 월세가 큰 부담이었던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그래서 한 달 만에 임대아파트를 나왔어요.”&lt;/font&gt; &lt;BR&gt;
&lt;BR&gt;
결국 김씨가 갈 곳은 재개발에서 제외되고 남아 있는 달동네 가옥뿐이었다. 96년 금호동 재개발에 밀려 난곡에 들어온 김수정씨. 다시 2001년 난곡 재개발로 밀려났다가 간신히 찾은 삶의 터전이 난향동 산93-1번지, 남아 있는 달동네 난곡이었던 것이다. 김씨의 삶을 통째로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인 셈이다. &lt;BR&gt;
&lt;BR&gt;
난향동 산93번지 일대는 난곡 종점 앞 도로 곁에 들어선 복합상가에 흡수되어 개발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옥주들과 개발업자들의 이해가 맞지 않아 결국 복합상가 개발에서 제외되었다. 이제 개발 계획은 끝났고 “그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 이곳 통장의 설명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80170076.jpg&quot; width=&quot;579&quot; height=&quot;34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김수정씨가 사는 난향동 산93-1번지를 두번째 방문했을 때, 그 사이 강아지들이 태어났다. 발에 달라붙어 꼬리를 흔드는 녀석들에게 &amp;quot;사진 찍자&amp;quot;며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한 발치 떨어져 자기들끼리 포즈를 취하는 듯했다. &lt;/p&gt;&lt;/div&gt;
&lt;/font&gt;&lt;/font&gt;&lt;BR&gt;
&lt;BR&gt;
&lt;/div&gt;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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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1부]어디로 갔을까</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Wed, 11 Feb 2009 03:31:00 GMT</pubDate>
		</item>
		<item>
			<title>&quot;석달이 30년 됐어.&quot;&lt;br&gt;- 난곡 원주민 김미선 할머니의 아슬아슬 내 집 마련</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52686</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177fcd&quot;&gt;&lt;BR&gt;
[글 최봉실]&lt;/font&gt;&lt;BR&gt;
&lt;BR&gt;
화투를 치며 둘러 앉아 있는 할머니들 뒤 켠, 한쪽 다리를 쭉 편 채 아래 눈짓으로 화투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달동네 난곡 원주민인 김미선(가명, 70) 할머니는 오늘도 느즈막한 아침, 전동스쿠터를 타고 신림 7동 난곡 종점 아래 있는 ‘난곡 노인의 쉼터’를 찾았다. 여기서 달동네 난곡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점심 식사가 끝난 후부터 시작된 10원, 50원 짜리 화투판이 벌써 2시간째. 이 할머니는 구경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간다. &lt;BR&gt;
&lt;BR&gt;
오마이뉴스 난곡 취재팀이 난곡 재개발로 떠나간 달동네 난곡의 이웃사촌을 찾던 중, 이 노인 쉼터에 마실 나온 김미선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들 놀이를 그저 구경만 하고 있는 이 할머니를 옆방으로 청했다.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에 몸을 끌다시피 해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7635&quot;&gt;“내가 다리가 아파. 20년 전 난곡 살 때 인공뼈를 박았거든. 4급 장애자야. 그런데 재발해서 3년 전에 다시 수술했어. 그 수술은 신림3동에 내려와 한 거지.”&lt;/font&gt; &lt;BR&gt;
&lt;BR&gt;
다리가 왜 아프냐고 묻자, 할머니는 두말없이 대답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고생해서 뼈가 삭아서 그래. 노동을 많이 해서.”&lt;/font&gt; &lt;BR&gt;
&lt;BR&gt;
김미선 할머니가 난곡에 들어온 것은 큰 아들이 7살 때. 막내는 난곡에서 나았다. 그러나 난곡에 살려고 해서 산 게 아니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석달만 살자고 했는데 30년을 산 거야.”&lt;/font&gt; &lt;BR&gt;
&lt;BR&gt;
형편이 나아질 동안만 이사와 있으려고 했는데, 형편이 좀처럼 피지 못했던 것. 결국 재개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나온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원래는 사당동에 있는 남성국민학교 앞에 세를 얻었는데 그 집이 저당잡힌 집이었던 걸 몰랐던 거지. 이틀 사이 집을 내놓고. 갈 데 없어 난곡 왔는데 . . . ”&lt;/font&gt; &lt;BR&gt;
&lt;BR&gt;
그렇게 30년 마지못해 산 세월이지만, 어느새 고향이 되어버렸다. &lt;BR&gt;
&lt;BR&gt;
'난곡이 고향 같으시겠어요?'하는 질문을 &quot;고향 같&quot;까지 내뱉는 순간, 할머니는 단호하게 말을 자르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고향!”이라고.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자고새면 이웃사람이었어. 눈만 뜨면 이웃 얼굴 보고 산 거지. 그런데 살던 고향이 영 없어진 거야.”&lt;/font&gt; &lt;BR&gt;
&lt;BR&gt;
김미선 할머니의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아쉬움을 알았는지, 어머니가 살던 곳이라며 내려오기 전 난곡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이 할머니는 “그 주변에서는 내가 맨 마지막에 내려왔다.”고 했다. “그게 딱 정월 초하루였지.” 2003년 1월 1일을 말한다. &lt;BR&gt;
&lt;BR&gt;
할머니는 “능력도 없고 변변한 수입도 없었으나 난곡에서는 8평 집주인&quot;이었다. 8평 집은 1970년대 초 40여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재개발로 그 집을 떠날 때 할머니는 7천만 원에 아파트 입주 딱지를 팔았다. 그 돈으로 신림3동에 내려와 조그마한 내집을 장만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자식들이 욕심 낼까봐 얼른 집을 사버렸지. 뭐 어찌어찌 해서 자식들에게 이리저리 나가다보면 그 돈이 홀라당 없어져버리니까.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았거든. 그래서 그냥 집을 샀어.”&lt;/font&gt; &lt;BR&gt;
&lt;BR&gt;
석달 살려다 30년 살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고향도 생기고, 절친한 이웃도 생기고, 내집이라 할 수 있는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난곡 30년 세월이 남긴 선물이다.&lt;BR&gt;
&lt;/font&gt;&lt;/fon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52111352.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세이브마트앞. 김미선 할머니가 사는 신림3동은 재개발로 이주한 난곡 원주민이 많이 살고 있다. &lt;/p&gt;&lt;/div&gt;
&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1부]어디로 갔을까</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Mon, 09 Feb 2009 02:30:00 GMT</pubDate>
		</item>
		<item>
			<title>난향동 산93번지 . . . 달동네 난곡이 남아 있다.</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51941</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&lt;BR&gt;
&lt;font color=&quot;#177fcd&quot;&gt;[글 최봉실]&lt;/font&gt;&lt;BR&gt;
&lt;BR&gt;
&lt;BR&gt;
달동네 난곡이 남아 있다. 다 사라지고 없다고 생각했던 옛 가옥들이 달동네 골목과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 있었다. &amp;lt;오마이뉴스&amp;gt;의 ‘난곡 그 후’ 취재팀은 재개발된 '아파트촌 난곡' 바로 아래 한 귀퉁이에 달랑 남아 있는 옛 난곡 가옥들을 찾아가봤다. &lt;BR&gt;
&lt;BR&gt;
난향동(옛 신림7동) 산93-1번지. 난곡 사거리에서 난곡 종점을 거쳐 재개발된 난곡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큰 길에서는 남아 있는 옛 달동네 가옥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신림복지관 뒤, 숲 쪽으로 돌아 들어가야 비로소 남아 있는 옛 난곡 가옥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는 한 지붕 아래 6가구, 10여 명이 살고 있다. &lt;BR&gt;
&lt;BR&gt;
독거 노인 최순남(가명,81) 할머니는 거동이 어려운 몸을 바퀴 달린 기구에 의지한 채 낡은 나무 문을 열고 막 나오는 중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 안에 있다가 바람 쐬러 나오는 길이었다.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외출은 그것이 전부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dual&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table style=&quot;margin: 0px auto&quot; cellspacing=&quot;5&quot;&gt;&lt;tr&gt;&lt;td&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22625345.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225&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22625345.jpg')&quot;/&gt;&lt;div class=&quot;cap1&quot;&gt;바람을 쐬러 나와 있는 최순남(가명) 할머니&lt;/div&gt;&lt;/td&gt;&lt;td&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16052270.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225&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16052270.jpg')&quot;/&gt;&lt;div class=&quot;cap1&quot;&gt;6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lt;/div&gt;&lt;/td&gt;&lt;/tr&gt;&lt;/table&gt;&lt;/div&gt;&lt;BR&gt;
할머니는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곳에 내려와 현재 6년 째 살고 있다. 난곡에서 막내딸과 살다 딸은 결혼해 다른 곳으로 나가고 혼자 이곳으로 왔다. 난곡이 재개발될 때 받은 집 보증금 400만 원과 이주비 200여 만 원으로 지금 집을 얻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남편은 45세 때 병으로 죽었어요. 자식들이 있지만 자식들도 살기 어려워요. 자식 있으니까 영세민 지원은 못 받아요.”&lt;/font&gt; &lt;BR&gt;
&lt;BR&gt;
기초수급비 8만 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한 주에 한 번 교회 구역예배를 위해 방문하는 교인들을 맞는 것, 그리고 이렇게 집 입구에 놓인 의자까지 나와 건물과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바깥 세상을 바라보며 한 줌 바람을 쐬는 것이 할머니 생활의 전부다. &lt;BR&gt;
&lt;BR&gt;
아내와 아들과 살고 있는 김용환(84) 할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집 앞에 널려 있는 고물을 옮기고 정리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저녁부터 밤까지는 고물을 주우러 다니고 13동에서 고물 수리하는 일을 한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dual&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table style=&quot;margin: 0px auto&quot; cellspacing=&quot;5&quot;&gt;&lt;tr&gt;&lt;td&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13608694.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225&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13608694.jpg')&quot;/&gt;&lt;div class=&quot;cap1&quot;&gt;난향동 산93-1번지 가옥&lt;/div&gt;&lt;/td&gt;&lt;td&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09715451.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225&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09715451.jpg')&quot;/&gt;&lt;div class=&quot;cap1&quot;&gt;한 지붕 아래 6가구가 살고 있다. &lt;/div&gt;&lt;/td&gt;&lt;/tr&gt;&lt;/table&gt;&lt;/div&gt;&lt;BR&gt;
할아버지 가족은 봉천동에 살았다. 그런데 재개발로 철거된다고 해서 90년에 난곡에 왔다. 그로부터 2년 후인 92년, 지금 이 자리로 이사해 여태 살고 있다. 주변이 모조리 쓸리고 우람한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것을 다 지켜봤다. &lt;BR&gt;
&lt;BR&gt;
그런데 할아버지는 몇 년째 이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전세가 1600만 원으로 너무 비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옆집들은 700만 원, 900여 만 원, 1100만 원이란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계속 나갈려고 했는데 돈 안 내줘서 못 나가고 있었어요. 최근에 주인이 바뀌어 돈 준다고 했는데 겨울에는 집 구하기 힘드니 봄까지 기다려 보는 거예요.” &lt;/font&gt;&lt;BR&gt;
&lt;BR&gt;
이곳 93-1번지에는 독거 노인인 할아버지 한 분과 고물상을 하는 부부 등 4가구가 더 살고 있다. 그리고 조금 위로 올라가면 산93-2번지 주소로 일곱 가구가 옛 난곡 골목과 가옥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&lt;BR&gt;
&lt;BR&gt;
재개발에서 제외된 93번지 일대는 총 2만 9천 평으로 사유지와 공원녹지가 섞여 있어 여러 차례 개발이 빗겨갔다. 심광현(56) 9통 통장은 이제 개발 사업이 끝나 이곳은 그대로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옆에 있는 복합상가로 흡수해서 같이 개발하려고 했는데 이곳 땅주인들과 건설업체 사이에 합의가 안돼 이렇게 남게 되었지요. 이제 개발 계획은 없습니다. 계속 이곳에서 살고 싶다면 그대로 살 수 있겠죠.” &lt;/font&gt;&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dual&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table style=&quot;margin: 0px auto&quot; cellspacing=&quot;5&quot;&gt;&lt;tr&gt;&lt;td&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33062278.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399&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33062278.jpg')&quot;/&gt;&lt;div class=&quot;cap1&quot;&gt;난향동 산93-2번지&lt;/div&gt;&lt;/td&gt;&lt;td&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87353402.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399&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87353402.jpg')&quot;/&gt;&lt;div class=&quot;cap1&quot;&gt;옛 난곡 모습 너머로 재개발 아파트가 보인다.&lt;/div&gt;&lt;/td&gt;&lt;/tr&gt;&lt;/table&gt;&lt;/div&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47876879.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좌측으로는 신축 건물이, 우측으로는 옛 난곡 가옥이 이어진다. &lt;/p&gt;&lt;/div&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1부]어디로 갔을까</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Thu, 05 Feb 2009 23:00:00 GMT</pubDate>
		</item>
		<item>
			<title>&quot;니네가 현실을 아느냐?&quot;&lt;br&gt;- 전국 재개발뉴타운 가옥주들의 분노 : '뉴타운공청회'가 무산된 이유</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51145</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200%&quot;&gt;&lt;BR&gt;
&lt;div&gt;&lt;BR&gt;
&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177fcd&quot;&gt;[글 최봉실]&lt;BR&gt;
&lt;/fon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25106162.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용산 세입자 상가 참사 현장 / 사진 최지용&lt;/p&gt;&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e4e4e4&quot;&gt;정말 극한 상황이 아니면, 누구든 감히 위험을 무릎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왠만하면 타협하고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lt;BR&gt;
&lt;BR&gt;
그런데 호프집 아저씨가, 밥집 아저씨가, 금은방 아저씨가, 갈비집 아주머니가, 영세 가게 상인들이 추운 겨울 한복판에 차디찬 시멘트 바닥 옥상 위에 망루를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면, 용인에 사는 주거 세입자 철거민이, 수원의 주거 세입자 철거민이, 중구 순화동 주거 세입자 철거민이 용산4구역 철거민들을 도와 삶과 목숨을 건 투쟁에 돌입했다면, 그들이 감수했어야 할 삶에 대한 위협과 공포와 분노가 어느 정도였단 말인가? &lt;BR&gt;
&lt;BR&gt;
지난 1월 20일, 용산 재개발 4구역 상가 4층 건물에서는 강제 진압 작전으로 발생한 화마에 철거민 세입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열리기로 되어 있었던 뉴타운 공청회 현장은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공청회에 모여든 재개발/뉴타운 지역의 가옥주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분노와 절규를 쏟아낸 것이다. 마치 당일 아침 발생한 용산 참사에서 쓰러져간 세입자 철거민들이 지난 세월 쏟아냈을 울분과 절규를, 시간을 되돌려 목도하는 듯했다. &lt;BR&gt;
&lt;BR&gt;
당시 쏟아지는 가옥주들의 분노로 결국 무산되고 만 뉴타운공청회 현장 이야기를 자료로 남기기 위해 이곳에 올린다. 운명을 달리한 용산 철거민들을 기억하며 또다시 이들 뉴타운 피해자들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내모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lt;/div&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16296579.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31330273.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29078005.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발 디딜 틈 없는 뉴타운 공청회 현장&lt;/p&gt;&lt;/div&gt;
&lt;BR&gt;
서울에만도 152개 구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 사업. 지난 5월부터 8개월 간 진행된 뉴타운 평가 작업을 마무리하는 공청회가 1월 20일, 시청 별관 후생동 건물 대강당에서 열렸다. 그런데 예정된 공청회 장소부터 안그래도 부글부글 끓고 있던 주민들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lt;BR&gt;
&lt;BR&gt;
공청회 장소는 소강당 규모에 지나지 않는 200여 좌석의 공간. 공청회가 시작되기 10분 전부터 복도는 각 구역 주민들로 북적북적했다. 강당 안에도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좌석을 다 메우고도 통로마다 꽉꽉 들어찼다. 기자석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더구나 무대 위에는 공청회 토론자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흥분한 주민들의 외침이 쏟아졌다. “장소를 옮겨라”는 요구도 빗발쳤다. 이번 공청회를 준비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 자문위원단 하성규(중앙대 도시 및 지역계획과 교수) 위원장이 &quot;40년 이상 진행된 도시재정비사업을 종합 검토했다&quot;라고 밝힌 결과에 대한 공청회 장소로는 너무도 초라했다. &lt;BR&gt;
&lt;BR&gt;
가재울5구역 주민인 김성정(65)씨는 공청회와 자료집의 무성의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건 가짜 공청회”라고 못박았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공청회 공지를 해야지. 공청회 했다는 흔적만 남기겠다는 거 아냐. 알릴려면 한 달 전에 여기저기 언론사에 띄우고 해야지. 그리고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 홈페이지가 없다는 것, 그것부터 극악한 범죄야. 투명하지 않게 하는 거잖아. 그 다음에 자문 위원이 18명인데 명단이 없어요. 이 얼마나 개판이야. 그리고 이런 공청회 자료집이 어디 있어요? 이렇게 천연색을 해 가지고. 천역색이 무슨 필요가 있는데? 그리고 이렇게 두꺼운 종이로 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쪽수가 적어? 그렇게 커다란 사업을 평가하는 건데? 그리고 자료집에는 공청회에 나온 이 토론자들, 이 사람들 의견이 나와 있어야 돼. 그런데 그런 게 하나도 없잖아요.” &lt;BR&gt;
&lt;/font&gt;&lt;BR&gt;
공청회 장소와 자료집은 모여든 130구역 조합원들에게 쌓이고 쌓인 분노에 불을 지른 셈이다. 진행자가 “오늘 이 공청회는 서울시 주거환경에 대해서”라고 말을 하자 주민들은 “어이구, 주거 환경 우리 좋아요”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lt;BR&gt;
&lt;BR&gt;
뉴타운 각 구역에서는 뉴타운/재개발 과정의 비리와 불법 행위, 부당한 뉴타운 지구 지정에 대해 항의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이날 서울역 집회부터 참석한 ‘전국뉴타운/재개발 주민비상대책위원회 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이들 각 구역 비상대책위원회가 연대한 단체다. 지난 11월 결성된 이 연합회는 100구역을 넘어 2달 만에 130구역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전국 재개발/뉴타운 구역 주민들의 원성과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36222447.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25966890.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뉴타운 가옥주들. 뉴타운 사업으로 일생 모은 재산이 위협받고 있다고 불아해 했다.&lt;/p&gt;&lt;/div&gt;
&lt;BR&gt;
이 연합회 이름으로 모인 500여 명의 각 구역 주민들이 이 날 공청회에서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터트린 더 본질적인 이유는 자문위원단이 내놓은 연구 결과 때문이다. 8개월 동안 연구하고 검토했다는 뉴타운 사업에 대한 최종 평가 결과가, 현장의 주민들이 가장 고통받고 있는 문제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뉴타운 공청회 자료집을 미리 훑어본 각 구역 주민들은 &quot;탁상공론이다,&quot; &quot;허술하기 짝이 없다&quot;며 소리쳤다. 한쪽에서 &quot;하성규 위원장 나와라, 서울시장 나와라&quot;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현장에 가서 주민들의 목소릴 좀 들어보세요. 조례를 지키지 않는 구청이 실제로 비일비재한데도 그걸 견제하거나 감독하는 그런 기능을 마련하겠다는 언급은 여기에 하나도 없어요. 도대체 하성규 위원장님이 누구십니까? 이 정책을 할려면 법으로 할 텐데 실제로 정비 사업에서 구청이나 인가권을 갖고 있는 관청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일이 허다하고, 저희 조합원들의 권리가 이렇게 무시되면서 사업이 진행되는데 이런 종합적인 검토에서 그런 중요한 게 왜 빠졌습니까? 누구세요? 보고서 쓰신 분 누구세요? 이런 문제점도 지적 못하는 공청회. 70번 토론회를 어떻게 했어요? 속기록 가져 와요.”&lt;/font&gt; &lt;BR&gt;
&lt;BR&gt;
한 주민의 성토에 여기저기 “나와라, 나와라,” “우리 조합원들은 허수아비야, 허수아비,” “엿장시 마음대로야” 하는 함성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lt;BR&gt;
&lt;BR&gt;
공청회가 지연되는 동안 극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발언하려고 하자 연합회 부회장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며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먼저 밝히라고 요구하고, 그는 발언부터 하려고 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 잠시 후 그가 조합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주민들은 &quot;우리가 조합장들에게 얼마나 당했습니까?”라며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때 한 주민은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갑자기 오열하기도 했다. 각 구역 조합원들이 조합의 비리와 불법에 치를 떨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결국 경찰이 주민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 조합장을 데리고 나가서야 주민들은 진정될 수 있었다. &lt;BR&gt;
&lt;BR&gt;
옆에서는 한 주민이 마이크를 갖다 대는 기자에게 제대로 사실을 확인하고 검토할 수 없도록 막가파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재개발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밀어붙이는 것은 강도야. 이런 나라가 어디가 있어? 안 그래? 이건 아주 잘못된 거지. 당신도 구멍가게 하나 차릴래도 경제적 검토를 할 시간이 있어야 잖아.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해?”&lt;/font&gt; &lt;BR&gt;
&lt;BR&gt;
그러나 주민들은 회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다려주자”며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400192417.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뉴타운 공청회를 시작하며 인사말을 하고 있는 하성규 자문위원장&lt;/p&gt;&lt;/div&gt;
&lt;BR&gt;
예정 시간을 넘어 20분이 경과했을 무렵, 마침내 하성규 자문위원장이 나와 인사말을 했다. 주민들은 위원장의 말이 끝날 때까지 쥐죽은 듯 조용하게 경청했다. 그리나 다른 위원을 소개하며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하자, 주민들은 “질문부터 받아주세요”하고, 진행측에서는 “나중에 기회를 주겠다”며 대립했다. 결과가 다 나온 것을 또 다시 듣고 앉아 있을 힘과 여유가 주민들에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70차례 회의 해서 책임 있게 보고서 만드셨다니까 지금 따져야 합니다. 성동구청은 사업시행 인가에 대한 동의를 조합설립 동의서로 가늠한다고 하고 인가 내주고, 마지막에 관리처분 총회에서는 저희 조합원들이 총회날까지 그렇게 알려달라고 했던 감정평가액 안 알려줬는데, 이걸 가지고 또 성동구청은 관리처분 인가 내주고. 이러한 행정 관청이 위법한 행정 처분을 하는 데 이런 문제들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우리 세금 갖고 이거 자문위원들 출장비, 토론비 다 받았을 거 아냐. 다 내놔. 나도 하겠다 나도 하겠어. 돈 안 받고 해, 나는. 부끄러운 줄 알아. 부끄러운 줄.” &lt;BR&gt;
&lt;/font&gt;&lt;BR&gt;
왕십리1구역 가옥주이자 이 연합회 총무인 이동훈(41)씨의 말에 다시 좌석에서는 “옳소, 옳소,” “사기꾼이야, 사기꾼”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듯 전문가들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도 하늘을 찔렀다. 뉴타운 반대 대책 위원회의 이정순씨는 “이런 공청회는 요식행위요 탁상공론”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3년 전에 국회에서 토론회 한다고 해서 질의 했어요. ‘우리 집값 너무 적게 쳐주고 추가 부담액이 너무 많다. 그러면 원주민 재정착 못한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랬더니. 전문가라는 사람이 ‘그때 가서 재산 증식이 되는데 무슨 말이냐?’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엊그제 그 분이 모 신문에서 서울 시내 뉴타운 하는데 평균 1억 7천만 원 추가부담금이 있어야 입주를 할 수 있다고 한 거예요. 그 웃기는 전문가라는 놈이 그걸 인제야 알고 있으니. 차라리 우리 반대하던 사람이 여기 서야 해요. 실질적으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나서서 정책을 만들어야 된다구요. 이 사람들이 뭘 알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quot;&lt;/font&gt; &lt;BR&gt;
&lt;BR&gt;
공청회가 지연된 지 30분 정도 경과했을 무렵, 다시 진행자가 “장내가 소란해서 정상적인 공청회가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누가 이거 들으러 왔어? 계획 세운 거. 우리 재산 이미 몇 억씩 나갔는데. 딱 반토막이야.” 하며 여기저기 고성이 터져 나왔다. &lt;BR&gt;
&lt;BR&gt;
결국 30분 넘게 지연되던 공청회가 무산되자, 주민들은 “시장에게 따지러 가자”며 시청 본관 앞으로 나갔다. 3시가 다되어 연합회 대표 2명이 관계자들과 면담하러 들어간 후, 주민들은 추위 속에서 여기저기 모여 면담 결과를 기다렸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99394450.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16175588.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13446653.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84131672.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78451856.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81700524.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면담하러 들어간 뉴타운 주민대표들을 기다리고 있는 뉴타운 주민들과 구호들&lt;/p&gt;&lt;/div&gt;
&lt;BR&gt;
면담은 3시간이 지난 6시가 조금 넘어서야 끝났다. 그때까지 남아서 기다린 100여 명의 각 구역 주민들이 면담 결과를 들었다. &lt;BR&gt;
&lt;BR&gt;
면담은 시장 비서실장과 담당 책임 과장들과 이뤄졌다. 면담에 참석했던 구리인천 인창동 재개발 구역 주민이자 연합회 부회장인 김수찬(55)씨가 면담 결과를 전했다. 그가 “이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우리의 심각한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하자, 듣고 있던 주민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거지”라며 냉소했다. 그러자 김수창 부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모르는 척 하는 것도 있고, 진짜 모르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가 정확하게 얘기를 했구요.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순간이고, 대관령에서 현재 사이드 브레이크고 뭐고 브레이크 죄다 파열돼서 지금 현재 우리 주민들이 대형 버스 타고 가다 꼬꾸라 박혀 죽을 입장이다. 그러니 당신네들 사업을 중단해달라’고 했지만, 자기네는 권한이 없다고 합니다. 권한이 왜 없습니까? 인허가권 다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lt;/font&gt; &lt;BR&gt;
&lt;BR&gt;
면담 참석자들은 그 외에도 조합이 불법을 하게 되는 원인에는 자금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고 했다. 조합이 시원치 않은 것은 자금 때문이므로 시가 그런 부분을 지원해줄 것을 제안한 것이다. &lt;BR&gt;
&lt;BR&gt;
김수찬 부회장은 면담에서 쌍방은 다음의 두 가지 사항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첫째, 다음 주에 시측에서는 시장과 자문위원장이 배석해서 주민 대표들과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것, 그리고 둘째, 주민비대위 연합회 측에서는 각 구역의 온갖 문제점들과 피해 내용들을 정리해서 20가지로 수렴해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15632627.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4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면담 결과를 전하는 김수창 연합회 부회장. 주민들이 경청하고 있다.&lt;/p&gt;&lt;/div&gt;
&lt;BR&gt;
연합회 이동훈 총무는 &quot;그래도 공청회 진행을 지켜볼 수 있지 않았냐&quot;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amp;nbsp;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첫째, 이 공청회가 주거정비사업 추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예요. 전제 자체가 잘못입니다. 원주민 재정착률 10%라는 것. 살던 주민 다 내몰고 비싼 아파트만 보기 좋게 짓는 건, 이건 도시화 사업이라는 거죠. 오늘 공청회에 참석하는 토론자들이 토지 등 건물을 자본 출자한 조합원들이 오히려 피해를 당하고 있는 얘기를, 당사자들,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사전 지식,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공청회 해봤자 사업은 기존 했던 방법으로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는 거죠.&quot;&lt;/font&gt; &lt;BR&gt;
&lt;BR&gt;
다음으로 그가 지적한 점은 사업의 일방성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그리고 이건 사업이잖아요. 그러면 조합원들이 사업성을 충분하게 검토해보고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돈 번다는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게 하는 거죠. 시공사하고 행정관청, 조합 임원, 부동산 중개업자. 그 4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거죠.&quot;&lt;/font&gt; &lt;BR&gt;
&lt;BR&gt;
마지막으로 모든 경제적 피해를 가옥주들이 다 떠안고 정작 가옥주들에게 그러한 정보는 일체 차단되어 있는 현실이 심각한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조합원들이 현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자기 집이 자기 집이 아닌 그런 상황이 되는 거죠. 돌이킬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위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합원들이 얼마나 부당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lt;/font&gt; &lt;BR&gt;
&lt;BR&gt;
뉴타운 재개발 현장에서 주민들이 겪는 피해와 주민들의 분노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현실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 실질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lt;/font&gt;&lt;/font&gt;&lt;/font&gt;&lt;BR&gt;
&lt;/div&gt;&lt;/div&gt;&lt;BR&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488521&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4부]누구를 위한 뉴타운?</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Wed, 04 Feb 2009 23:00:00 GMT</pubDate>
		</item>
		<item>
			<title>&quot;집 헐리고 쓰레기차에 실려 난곡 왔지.&quot;&lt;br&gt; - 달동네 난곡 이인순 할머니의 한많은 세월</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47912</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&lt;BR&gt;
&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size=&quot;2&quot;&gt;(오마이뉴스의 '우리동네 난곡' 취재팀은 재개발로 달동네 난곡을 떠나간 이웃사촌을 찾고 있던 중 이인순(81)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할머니 앞으로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담았다.)&lt;/font&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177fcd&quot;&gt;[글 최봉실]&lt;/font&gt;&lt;BR&gt;
&lt;BR&gt;
이인순 할머니, 안녕하세요. &lt;BR&gt;
&lt;BR&gt;
지난 해 봄부터 오마이뉴스의 '우리동네 난곡' 취재팀은 달동네 난곡을 떠나간 이웃사촌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을 통과하고 있네요. &lt;BR&gt;
&lt;BR&gt;
할머니를 만난 것은 그 겨울 한복판이지요. 신림7동 중앙단지 노인 쉼터에서, 그리고 40년째 이어온 난곡 계모임에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림7동 국회단지에 있는 노인정에서 만났을 땐, 마루 베란다 창문에 접해 있던 소파 아래 바닥에 주저앉아 긴 사연의 이야기를 속삭이듯 짧게 나누었습니다. &lt;BR&gt;
&lt;BR&gt;
2001년 12월 9일. 할머니는 재개발로 난곡을 떠나던 날이 언제인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짧고 뽀글뽀글한 퍼머 머리. 동그란 눈매에 동그란 얼굴을 한 할머니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amp;nbsp; &lt;BR&gt;
&lt;BR&gt;
무엇보다 할머니의 구수한 이북 말씨가 다시 듣고 싶습니다. 할머니의 난곡 친구분들 중 절친한 두 분도 이북 출신이셨지만, 할머니의 이북 말씨가 제일 그대로 살아 있었어요. &lt;BR&gt;
&lt;/div&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401251097.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1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신림7동 노인정에서 만난 이인순 할머니&lt;/p&gt;&lt;/div&gt;
&lt;BR&gt;
할머니는 북에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전쟁통에 남으로 피난을 내려오셨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청계천에 라디오 가게를 하나 차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셨지요. 하지만 보증을 잘못 서 그만 가게가 망하고, 그 탓에 전세 살던 집을 빼 이촌동에 사글세 1만 원 집을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구청에서 나와 집을 마구 때려 부수었다고 하셨지요.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갑자기 그러는 거야. 아무 얘기도 없었는데. 우리는 그 길로 쓰레기차에 실려 난곡으로 옮겨졌어.&quot;&lt;/font&gt; &lt;BR&gt;
&lt;BR&gt;
'쓰레기차'라고 하시는 말이 믿기자 않아 제가 재차 물었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40년 전 그 쓰레기 차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 눈살을 찡그리셨습니다. &lt;BR&gt;
&lt;BR&gt;
68년, 그렇게 난곡으로 온 할머니 가족은 난곡으로 이주한 다른 철거민들처럼 손수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집 잃고 막막해진 이들이 지을 수 있는 집이 튼튼하면 얼마나 튼튼할 수 있었을까요?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천막 치고 살았는데. 비가 오면 홀랑 벗겨지는 거야. 이불도 다 젖고, 그랬지.&quot;&lt;/font&gt; &lt;BR&gt;
&lt;BR&gt;
할머니는 그때의 막막함과 설움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어이없어 하셨습니다. 남편은 몸이 안 좋아 집에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란 할머니 혼자서 새마을 일을 하는 것뿐. &quot;그거 해서 밀가루 받아 매달 수제비 해 먹었다&quot;고 하셨어요.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49321800.jpg&quot; width=&quot;266&quot; height=&quot;362&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친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lt;/p&gt;&lt;/div&gt;하지만 할머니 가슴을 더욱 저리게 했을 일이란, 어렸을 때부터 소아마비에 뇌 마비로 장애를 앓고 있던 아들 일이겠지요? 어미가 아픈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아들이 어느날 홀연히 집을 나갔으니. 더구나 아들이 집을 나가 소식을 끊은 것이 40세 때라니요. 몸에 장애를 안고 장년이 될 때까지 아드님은 얼마나 가슴에 한을 쌓고 살았길래, 그렇게 홀연히 집을 나간 것일까요? 그런데 그 아들도 노인이 되었을 60세의 나이에, 할머니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 소식을 듣게 되셨지요.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우암동 송파쪽에 있는 천주교에서 연락이 온 거야. 아들이 거기서 지내다 죽었는데, 데리러 오겠는지, 어떻게 하겠냐고 말야.&quot;&lt;/font&gt; &lt;BR&gt;
&lt;BR&gt;
폭포처럼 밀어대는 세월의 무게에 이제 더 이상 대응할 힘을 잃은 것처럼, 할머니는 기가 차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그 세월을 도대체 어떻게 견디며 사셨나요? 할머님의 손을 꼭 잡으며 그렇게 여쭸더랬죠.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그러니 이렇게 나다니는 거지. 집에서 생각하고 있으면 미쳐.&quot;&lt;/font&gt; &lt;BR&gt;
&lt;BR&gt;
그래서 아침 먹고 나면 옆집 난곡 친구와 더불어 노인 쉼터로, 국회단지 노인정으로, 저녁 먹을 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있다가 집에 돌아가시는 할머니. 그런 사연을 간직한 할머니신데, 어찌 그 미소는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지요? 할머니의 한 친구분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quot;이인순이가 친구들 중에서 마음씨가 제일 좋다&quot;구요. &lt;BR&gt;
&lt;BR&gt;
다행히 지금은 남편 분도 건강해지셨다구요. 하지만 두 분 다 80세가 넘으셨으니 아무쪼록 더욱 건강하셔야지요. 그리고 난곡이 재개발 될 때 받은 이주비와 집값으로 5000여만 원을 받아 그 돈으로 지금 살고 계신 반지하 집을 장만하셨으니 그것도 다행스럽다고 해도 될까요? 게다가 할머니 바로 옆집에 또 절친한 달동네 난곡 친구 분이 살고 계시니, 또 매일같이 난곡 친구들을 만나며 지내시니, 그것이라도 그 고통스럽던 세월에 대한 조금의 위로라 할 만할까요? 부디 남은 여생은, 몸 건강히 즐거우시기를 빕니다. &lt;BR&gt;
&lt;BR&gt;
할머니가 현재 살고 계시는 신림7동 중앙단지에도 재건축추진위원회 간판이 걸려 있더군요. 하지만 8개월 넘게 진행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재검토' 결과가 지난 15일 발표되었어요. &quot;재개발, 재건축 사업에서 공공의 역할이 늘어나 민간 주도 막개발에 제동이 걸릴 것&quot;이라는 결론이예요. 뉴타운이 서민주거 불안을 초래해 추가 지정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군요. 뉴타운 사업이 할머니의 남은 여생을 마지막까지 흔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떨리는 가슴을 조심스레 쓸어내려 봅니다. &lt;BR&gt;
&lt;BR&gt;
이인순 할머니,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lt;BR&gt;
&lt;/font&gt;&lt;/p&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68554827.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1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이인순 할머니가 사는 신림7동 중앙단지. 재개발추진위원회 간판이 걸려 있다.&lt;/p&gt;&lt;/div&gt;&lt;/p&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411497&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1부]어디로 갔을까</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Thu, 22 Jan 2009 02:25:00 GMT</pubDate>
		</item>
		<item>
			<title>고단한 삶이지만 난곡 친구는 풍성&lt;br&gt;- 달동네 난곡 원주민 박영자 할머니</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45568</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&lt;BR&gt;
&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177fcd&quot;&gt;[글 최봉실]&lt;/font&gt;&lt;BR&gt;
&lt;BR&gt;
오마이뉴스 난곡 취재팀은 달동네 난곡을 떠난 원주민을 만나기 위해 지난 12월, 40년 째 이어오고 있는 난곡 계모임을 방문했다. 거기서 만난 박영자(77) 할머니를 지난 9일 다시 만났다. 신림 4거리에서 초록색 8번 마을버스를 타면 할머니가 사는 신림 10동 삼성산 주공아파트 2단지가 나온다. 거기서 대여섯 정거장만 더 가면 빼곡이 들어선 43개동의 재개발 난곡 아파트를 만날 수 있다. &lt;BR&gt;
&lt;BR&gt;
할머니의 임대아파트는 17평. 난곡 재개발 당시 순환재개발 방식으로 제공된 곳이다. 62세 되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된 할머니는 현재 역시 홀로 된 큰 아들(57)과 단 둘이 살고 있다. 남편 퇴직금으로 사업하다가 돈을 날린 며느리가 손녀를 데리고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할머니는 보일러도 틀지 않고 방 불도 켜지 않은 채 전기장판 위에 요를 몇 장 깔고 앉아 있었다. 큰 아들이 공사장에 나가 노동하는 걸로 생활하는데, 형편이 어려워도 아들이 있기 때문에 수급자로 인정이 안 된다. 난곡에 살 때는 할머니가 새마을 일을 하면서 하루 17,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70세도 새마을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젠 60세만 넘어도 그 일을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아들은 인켈에 다녔거든. 근데 그 회사가 없어졌잖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동일을 해. 지금은 인천 송도에 있는 공사 현장으로 노동하러 가거든.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나가고 밤 8시가 넘어야 들어와.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밥 해줘야 하니까.” &lt;BR&gt;
&lt;/font&gt;&lt;BR&gt;
할머니는 요즘 허리 통증 때문에 일주일에 서너 번 병원을 다닌다. 작년 약수터에 다녀오다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게 허리에 무리가 된 것이다. 척추에 주사를 놓는 치료를 받는데 너무 아파 병원 가는 게 영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더 큰 부담은 진료비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매번 갈 때마다 11,700원이 들거든. 그거 내는 것도 보통이 아니더라구. 돈이 그렇게 드니 이젠 가는 게 영 부담이 커. 별로 낫는 것 같지도 않은데 . . . ”&lt;/font&gt; &lt;BR&gt;
&lt;BR&gt;
할머니는 현재 관리비며 월세 등을 합해서 14만 원 정도 낸다. 여기에 매달 꼬박꼬박 대출금 이자와 원금을 갚고 있다.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위해 1000만 원을 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대출을 받지 않고 입주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재개발 되기 전 난곡 집 전세가 900만 원이었어. 새마을 일 해서 모아둔 게 400만 원 정도 있더라구. 그거 합해서 1360만 원 보증금 내고 들어온 거지. 근데 월세며 관리비 해서 25만 원 넘게 나가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는 결국 1000만 원을 대출 받았어. 보증금을 더 낸 거지. 그러니 25만 원 나가던 게 14만 원 정도로 줄더라구. 난곡에 살 때는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다 해도 3만 원이면 됐는데.”&lt;/font&gt; &lt;BR&gt;
&lt;BR&gt;
월 3만 원 정도의 공과금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던 난곡 원주민들이기에 임대아파트 입주도 만만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나는 상황이 나았던 편이야. 내 친구들은 죄다 난곡 종점 쪽으로 내려갔잖아. 여기 오려면 관리비나 월세 내는 게 만만치 않으니까. 여기 들어오고도 나간 사람이 많아. 얼마 안 되지만 아파트 들어간 사람들은 다 대부로 들어갔잖아. 이자에 본전에 관리비까지 감당할려면 뼈골이 빠질 거야.”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36839329.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박영자 할머니. 40년째 이어오고 있는 계모임에서&lt;/p&gt;&lt;/div&gt;
&lt;/font&gt;&lt;BR&gt;
박영자 할머니는 원래 인천에 살았다. 그곳에서 3남 1녀 자녀들을 고등학교까지 다 보냈다. 할머니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정말 딱 밥만 먹고 살았다”고 했다. 하루 세 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던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가을까지 돈 모은 걸로 제일 먼저 김장을 해. 그리고는 쌀 3가마니를 사서 겨울까지 나는 거야. 3,4월까지 날 수 있어. 남은 돈은 딴 데는 못 쓰고 나무를 사. 불 때는 데 쓰는 거지. 그래도 불 떼고 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 장작으로 불 떼서 밥 하면 아주 맛있거든. 방도 따뜻하고.”&lt;/font&gt; &lt;BR&gt;
&lt;BR&gt;
인천에서 난곡으로 이사하게 된 것은 할머니가 40세이던 71년, 먼저 난곡에 들어와 살고 있던 친척이 자꾸 오라고 권유한 때문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애들 큰 집이 먼저 난곡에 와 있었거든. 좋아질 거라며 오라는 거야. 근데 좋아지긴 뭐가 좋아져. 비만 오면 시내도 못 나가. 장화를 신고 다녀야 했거든. 진흙 묻고 하니까 그거 신고는 창피해서 시내를 못 나가는 거지. 버스도 덜덜덜. 거기서 30년을 산 거지.”&lt;/font&gt; &lt;BR&gt;
&lt;BR&gt;
비만 오면 질퍽했던 난곡 삶이었지만, 이웃지간 정만큼은 끈끈했다. 박영자 할머니는 계모임이며 부녀회며 한 달에 한두 번은 제주도, 울릉도, 매물도 등으로 꼭 관광을 다니며 놀았다. 그 할머니들과 지금까지 계모임을 하며 단짝 친구들처럼 어울려 지낸다. &lt;BR&gt;
&lt;BR&gt;
하지만 그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임대아파트로 와 있는 걸 할머니는 많이 아쉬워했다. 몸이 아프지 않을 때는 종종 친구들이 사는 난곡 종점까지 내려가 놀곤 했는데. 허리 다친 이후로는 그것도 쉽지가 않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옛날에는 좋았지. 난 친구들만 따라 다녀. 그런데 아들들이 자꾸 여기로 오자고 해서 왔는데. 그만 나만 여기 떨어져서. . . 그래도 종종 전화해. 뭐하냐고. 그러면 만나서 놀곤 하지.”&lt;/font&gt; &lt;BR&gt;
&lt;BR&gt;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해도 ‘밥만 먹고 사는 삶’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다만 난곡 달동네 시절에 인연을 맺은 이웃사촌 친구들이 있어 삶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박영자 할머니. 돈이 없고 어려워도 친구들과 나누는 즐거움은 전혀 지장이 없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할머니는 찬 겨울바람에 겉옷도 안 걸친 채 아파트 입구까지 배웅 나와서는 “이달 계모임에 와서 꼭 밥 먹고 가라”며 일러준다.&lt;BR&gt;
&lt;/font&gt;&lt;/fon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80713737.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33&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난곡 달동네 당시, 이웃들은 한 달에 한두 번 관광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운데가 박영자 할머니&lt;/p&gt;&lt;/div&gt;
&lt;/div&gt;&lt;BR&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352263&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1부]어디로 갔을까</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Mon, 12 Jan 2009 07:35:00 GMT</pubDate>
		</item>
		<item>
			<title>87세 난곡 할아버지, 원치 않는 4번째 이사하다</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43691</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&lt;BR&gt;
&lt;font color=&quot;#177fcd&quot; size=&quot;3&quot;&gt;[글 &amp;nbsp;최봉실]&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dual&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table style=&quot;margin: 0px auto&quot; cellspacing=&quot;5&quot;&gt;&lt;tr&gt;&lt;td&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81421517.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237&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81421517.jpg')&quot;/&gt;&lt;div class=&quot;cap1&quot;&gt;신림7동 국회단지 꼭대기에 있는 노인정 앞 골목&lt;/div&gt;&lt;/td&gt;&lt;td&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09932529.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237&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309932529.jpg')&quot;/&gt;&lt;div class=&quot;cap1&quot;&gt;여기서 이명환 난곡 할아버지를 만났다&lt;/div&gt;&lt;/td&gt;&lt;/tr&gt;&lt;/table&gt;&lt;/div&gt;&lt;BR&gt;
&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이젠 다른 곳으로 나가려구요.&quot;&lt;/font&gt; &lt;BR&gt;
&lt;BR&gt;
2009년 새해, 달동네 난곡의 원주민 이명환 할아버지(87)의 가장 큰 고민은 이사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신림 10동 주공아파트 2단지. 이명환 할아버지는 2000년 말 난곡이 재개발될 때 이곳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곳 임대아파트에 사는 것은 9년을 채우지 못할 것 같다. 할아버지는 더이상 버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24442271.jpg&quot; width=&quot;381&quot; height=&quot;31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이명환 할아버지. 노인정 소파에서&lt;/p&gt;&lt;/div&gt;&quot;기초생활보호대상자 수급비를 매달 40만 원 정도 받는데, 임대료 26만 원에 가스비, 관리비까지 합하면 34만 원까지도 나갑니다. 쌀은 줄곧 19000원 하는 정부미를 사먹거든요. 그러면 남는 돈이 거의 없어요. 늘 생활이 막막하지요.&quot;&lt;/font&gt; 
&lt;BR&gt;
&lt;BR&gt;
신림7동 난곡 재개발 아파트 아래 국회단지에 마련된 노인정. 재개발로 흩어진 달동네 난곡의 원주민을 찾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이명환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180m 정도의 훤출한 키와 건장한 체구에 정장 조끼와 넥타이를 갖춘 단정한 차림이었다. 그렇게 차려입은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씀 드렸더니 할아버지는 &quot;그렇게 봐주니 고맙네요.&quot;하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amp;nbsp;&lt;BR&gt;
&lt;BR&gt;
이명환 할아버지는 신림 10동 임대아파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재개발 아파트를 통과해 이곳 노인정을 찾는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난곡 원주민 이웃들을 만나는 것이다. 아내 권무순(82) 할머니는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 쉽게 외출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아내는 몸이 많이 아파요. 병원의 진료 과마다 병이 있다니까요.&quot;&lt;/font&gt; &lt;BR&gt;
&lt;BR&gt;
2000년 재개발 당시 집주인이었던 할아버지는 3,4백만 원 하던 집을 6천 5백만 원에 팔았다. 임대아파트 보증금으로 1500만 원 내고 남은 돈은 어렵게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이리저리 내어주고 나니 한 푼도 안 남았다. 이후에 6천 5백만 원 집이 1억 2천만 원이 되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우리가 팔고 나니 다른 사람들이 높이 불러 팔더라고. 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어.&quot;&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06152872.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1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신림10동 주공2단지 임대아파트. 월 지출 부담에 난곡 할아버지는 이제 이곳을 나가려 생각한다.&lt;/p&gt;&lt;/div&gt;
&lt;BR&gt;
이명환 할아버지가 난곡에 들어온 것은 1970년 무렵이다. 원래는 종암동에 살았는데 집이 헐리는 바람에 이웃들과 쌍문동으로 와 천막을 치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왜 집이 헐렸는지 &quot;잘 모르겠다&quot;고 했다. 그런데 쌍문동에서 살던 중 개발된다고 해서 또 다시 마을이 철거되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그 때 동네 사람들이 다 난곡으로 왔어요. 1개 통 전체가 왔지. 난곡에 와서 8평 터에 움막 짓고 산 거죠.&quot;&lt;/font&gt; &lt;BR&gt;
&lt;BR&gt;
난곡 달동네 생활은 재개발이 시작되던 2000년까지 30여 년 동안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한 달에 20일 정도를 공사판에 나가 노동일을 했다. 그것으로 겨우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는 것. &lt;BR&gt;
&lt;BR&gt;
할아버지에게 난곡에서의 삶은 어떻게 기억될까? 할아버지로부터 한마디의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그 때도 죽고만 싶었어요.&quot;&lt;/font&gt; &lt;BR&gt;
&lt;BR&gt;
할아버지는 &quot;그 때도&quot;라고 했다. 지금도 죽고싶을 만큼 힘든 모양이다. 지금은 이런 곳에 와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라도 한다는 이명환 할아버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낙 없이 지금껏 살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것이 못내 안타까운 것을 허탈한 미소로 대신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지금은 이렇게 소일거리라도 하며 보내고 있는데, 그럼 뭐해요. 이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죽을 날만.&quot;&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47230216.jpg&quot; width=&quot;281&quot; height=&quot;31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4번째 원치 않는 이사를 해야 하는 이명환 할아버지&lt;/p&gt;&lt;/div&gt;할아버지는 노인정 마당에 나가 담벼락 아래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가녀린 담배 연기가 먼 하늘 위로 아련히 퍼져갔다. 
&lt;BR&gt;
&lt;BR&gt;
도시 개발의 수순을 따라 종암동에서 쌍문동으로, 난곡으로, 신림10동으로 옮기는 동안 한번도 원해서 이사해 본 적이 없는 이명환 할아버지. 난곡 재개발로 임대아파트를 제공 받았지만, 그 역시도 이미 노인이 되어 옮겨간 이명환 할아버지의 남은 여생을 위한 터전이 되기에는 너무 버거운 곳이었다. 이명환 할아버지는 아픈 아내를 데리고 이제 또다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lt;BR&gt;
&lt;/font&gt;&lt;/font&gt;&lt;BR&gt;
&lt;/div&gt;&lt;BR&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315292&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1부]어디로 갔을까</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Mon, 05 Jan 2009 23:30:00 GMT</pubDate>
		</item>
		<item>
			<title>40년 난곡 계모임 일일 회원으로 참석해 보니</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41986</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lt;font color=&quot;#177fcd&quot; size=&quot;3&quot;&gt;&lt;BR&gt;
[글 &amp;nbsp;최봉실]&lt;/font&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xml:namespace&gt;&lt;o:p&gt;&lt;/o:p&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12월 셋째 주 일요일 12시, 신림 7동 난곡 신림종합복지관 부근의 한 식당에서 40년째 하고 있는 난곡 계모임이 열렸습니다. 오마이뉴스 난곡 취재팀은 달동네 난곡의 이웃사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기 위해 40년 계모임의 일일 회원으로 참석해 보았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계모임 회원 총 18명 중 참석하기로 되어 있는 이들은 14명. 모두 70대 전후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남성이 보였습니다. 그분에게 어떻게 참석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아, 저는 아들이에요. 제가 쉬는 날이라 어머니를 모시고 왔는데 나오시기가 많이 힘드셔서 그냥 차 안에 계세요. 지난달까지만 해도 계모임에서 얼굴들 보고 하셨는데. 당뇨시라 식당 음식을 드시지 못하고 몸이 더 많이 불편해지시니까 이번엔 영 힘드시나봐요. 여기까지 오시고 더 기력이 없어 차 안에 있겠다고 하셔서 제가 대신 들어왔어요.”&lt;/font&gt;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아들 박기봉(55)씨도 난곡에서 자랐습니다. 계모임 회원들이 달동네 난곡에서 어울려 살 때 성장한 자녀인 거죠. 식사를 마친 박기봉씨는 “그럼, 가보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어머니 친구분들은 “그래 어여 가봐.”하며 배웅을 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400930796.bmp&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아들을 도움을 받아 계모임에 참석한 김삼남 할머니. 돌아가는 차 안에서. &lt;/p&gt;&lt;/div&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그렇게 두 모자가 떠난 후 곧바로 조금 젊어 보이는 분이 어느새 목발을 세워 놓고 신발을 벗고 있었어요. 식당 방으로 올라와서는 깁스한 발을 조심하며 두 팔과 엉덩이로 몸을 밀어 식사 자리까지 다가왔어요. 박종림(68)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는데 얼마 전에 퇴원했습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ff9900&quot; size=&quot;3&quot;&gt;“시방 여기 억지로 왔어.”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어이쿠 큰 고생 했네. 택시 타고 다녀.”&lt;/font&gt;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모두들 한 마디씩 거듭니다. ‘억지로 왔다’는 것은 ‘오기 싫은데 억지로 왔다’는 말이 아니라 ‘힘들게 고생해서 왔다’는 말이지요. 박 할머니는 청소 일을 했는데 사고 나는 바람에 이제 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표 내버렸어요. 일 못 다녀.”라고 하지만, 남 일 이야기하듯 웃으며 말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06676072.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교통사고 당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박종림 할머니&lt;/p&gt;&lt;/div&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박 할머니 맞은편에는 난곡 재개발 당시 순환재개발 방식으로 제공되었던 신림 10동 주공아파트에 들어간 할머니가 두 분 계셨어요. 그 분들도 임대아파트로 들어간 다른 난곡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돈이 없어 재개발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했답니다. 그 중 2단지에 사시는 안종렬(82) 할머니는 제일 연장자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우리는 아주 오래된 사이야. 저이 셋이랑은 대방동에서 트럭에 실려 같이 난곡에 왔지.&quot;&lt;/font&gt;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대방동에서 이웃으로 같이 살던 네 할머니는 68년에 대방동 마을이 철거되는 바람에 다같이 트럭에 실려 난곡에 온 거죠. 그 자리에 또 집을 짓고 이웃으로 30년 넘게 살다 재개발 되었구요. 그리고 지금까지 계모임을 하고 있는 거죠. 도시 환경 정비라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재개발하는 바람에 마을이 싹쓸이 철거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달동네 이웃들은 말 그대로 '맞잡은 손 놓지 않고' 평생을 붙들고 함께 살아온 셈입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할머니들의 만남은 또한 그저, 웃고 화내고, 다시 웃는 그런 만남이었습니다. 오기로 했던 한 친구가 나타나지 않자 계주인 양금자(75) 할머니가 전화를 하다가 버럭 화를 냈어요. “자기가 전화해보면 될 걸 꼭 내가 전화하게 해. 전화비 한 푼 안 보태주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는 전 계주인 박영자(76) 할머니에게 하는 소리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듯했어요. 그런데 바로 옆에서 한 할머니가 한 마디 툭 내뱉습니다. &quot;형님들은 아직까지 싸워요.&quot; 그러자 어느새 긴장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것은 저 만의 긴장이었는지도 모르지만. &quot;우리는 안 싸우면 심심해. 그래도 그 자리에서 바로 웃어요. 오해 같은 거 안 하지.&quot;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박영자 할머니. 그런 실랑이가 40년 계모임을 어찌하지는 못하는 일인가 봅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 난곡 달동네에 살 때는 어디서 모이셨어요?&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집집마다 돌았지. 돌아가면서 그 집에서 식사도 준비하는 거지.”&lt;/font&gt;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52660381.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이던 난곡 계모임 장소는 재개발 이후 난곡 인근 식당으로 옮겨졌다. &lt;/p&gt;&lt;/div&gt;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&lt;br /&gt;
재개발로 흩어진 이후에는 난곡 종점 아래 식당에서 계모임을 가졌어요. 이번에는 그곳이 공사 중이라 신림복지관 옆 식당으로 장소가 바뀐 것이죠. 그런데 할머니들은 장소가 바뀌었다고 특별히 연락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원래는 건너편 식당에서 했거든. 여러 사람에게 전화해서 확인해 왔어요. 저기가 공사 중이니 장소가 바뀌었을지 모르니까.&quot;&lt;/font&gt;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박종림 할머니는 그렇게 식당을 잘 찾아왔다는 것을 자랑스레 귀띰해 줍니다. &lt;br /&gt;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252783272.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모임이 마무리될 즈음 먼저 자리를 뜨며 인사하는 안종렬 할머니&lt;/p&gt;&lt;/div&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식사가 끝나자 계주인 양금자(75) 할머니는 회비를 거뒀어요. 오기로 했는데 참석하지 못하게 된 한 회원의 회비는 근처에 사는 박종림 할머니에게 대신 내라고 합니다. 박 할머니는 “나중에 받으라고?” 하면서 기꺼이 회비를 대신 냅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난곡 원주민 할머니들의 계모임은 식사를 마치고 회비를 내고 잠시 '커피율무차'로 입가심을 한 뒤 2시경이 되어 슬슬 마무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계속 연락이 안 된 채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계모임의 마지막 화두는 ‘내 친구는 어디 갔나’가 되었답니다. 연락도 없고 전화도 없으니 모두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ff9900&quot; size=&quot;3&quot;&gt;“안 올 사람이 아닌데. 2시가 다 되어도 꼭 왔는데.”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인가 봅니다. 식당을 나와서 할머니들은 웅성웅성 합니다. ‘연락을 왜 안 해?’하는 비난성 어투에, ‘아들 병원에 갔나? 어디 교회에 간다더니 거기 간 거 아냐?’ 하는 추측성 발언에. 회원들 연락하는 전화비 혼자 감당한다고 불만스러워하던 계주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식 없는 친구 전화번호를 계속 눌러댑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앗, 이제 전화 된다.”&lt;/font&gt;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나타나지 않는 친구와 비로소 연락이 닿자 모두들 환희의 미소가 퍼졌습니다. 오지 않던 친구를 기다리며 데우고 있던 찌개를 싸와서는 “이거 난희 주면 되겠다.” 합니다. 그 할머니는 난곡 재개발로 아들네와 부천에 갔다가 친구들 가까이 살고 싶어 혼자 난곡 근처로 이사 온 최난희(74) 할머니입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난희 집으로!’ 출발합니다.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53561724.bmp&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최난희 할머니 집을 찾아온 난곡 계모임 친구들&lt;/p&gt;&lt;/div&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이렇게 난곡 원주민 할머니들의 2008년 12월 계모임이 끝났습니다. 아니, 사실은 끝은 아닙니다. 2차가 계속 이어졌거든요. 혼자 사시는 양금자 할머니 집에 가서 계속 이야기하고 노는 거지요. 대부분 걸어서 마실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는 난곡 할머니들은, 집이 헐리고 20층 아파트가 우뚝우뚝 솟아나는 등, 여기저기 요란한 세상사에도 아랑곳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노년을 그렇게 버티며,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lt;br /&gt;
&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58738612.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0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69년부터 시작된 난곡 계모임. 2008년 12월 계모임을 마치고 2차를 향해가는 난곡 할머니들&lt;/p&gt;&lt;/div&gt;&lt;/div&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281937&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이런소리 저런소리</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Tue, 30 Dec 2008 08:40:00 GMT</pubDate>
		</item>
		<item>
			<title>최난희 할머니에게 '난곡 친구'가 없었다면</title>
			<link>http://blog.ohmynews.com/nangok/240071</link>
			<description>&lt;div syle=&quot;line-height: 190%&quot;&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lt;font color=&quot;#006699&quot;&gt;[취재 &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black; font-family: '맑은 고딕'; mso-bidi-font-family: 굴림; mso-bidi-language: AR-SA;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font-kerning: 0pt&quot;&gt;&lt;font face=&quot;굴림&quot;&gt;·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6699; font-family: 굴림; mso-bidi-font-family: 굴림; mso-bidi-language: AR-SA;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font-kerning: 0pt&quot;&gt;글&amp;nbsp; 최봉실&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6699; font-family: 굴림; mso-bidi-font-family: 굴림; mso-bidi-language: AR-SA;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language: KO; mso-font-kerning: 0pt&quot;&gt;&amp;nbsp; /&lt;font color=&quot;#177fcd&quot;&gt; 기획 오연호]&lt;/fon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 /&gt;
&lt;BR&gt;
&lt;BR&gt;
&lt;/font&gt;&lt;/span&gt;&lt;/span&gt;&lt;font face=&quot;gulim&quot;&gt;친구에게 &lt;BR&gt;
&lt;/font&gt;&lt;/font&gt;&lt;BR&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90%&quot;&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안녕, 친구야. 너무 오랜만이지? 별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바쁘다고 연락도 못하고 지냈다. 요즘 재개발로 난곡을 떠난 이웃들을 찾아서 옛 달동네에서 살았던 분들을 만나고 있어. &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지금은 경제 한파로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고 1,2억씩 아파트 값이 내려도 꽁꽁 언 부동산 시장은 꼼짝도 안 하고 있지만, 여름까지만 해도 사실 아파트 못 지어서, 아파트 못 들어가서 이 나라가 온통 안달이 나지 않았니? 서울의 신림 7동에 있었던 난곡 마을도 아파트를 짓기 위해 싹쓸이 철거되었거든. &lt;/font&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재개발은 오래된 낡은 가옥만 없앤 게 아니었어. 그 속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 이웃끼리 의지하며 살아가던 정과 연대감,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기쁨을 모조리 없애버린 거였어. 우리 사회는 그 모든 것을 너무도 간단히 돈과 바꾸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거지. &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&lt;br /&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그런데 여기 재개발로 떠나간 난곡 원주민들은 비록 함께 살 터전은 잃었지만, 때로는 마음만으로라도, 그리고 많은 경우, 몸으로 서로를 붙든 손을 놓지 않고 있더라. 다들 바쁘면, 몸이 멀어지면 잊혀지기 마련인데, 여기 난곡 원주민들은 30년이고 40년이고 그 끈끈한 정을 놓지 않고 살고 있는 거야. 사실, 네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 분들을 보며, 자꾸 '네'가 떠올랐기 때문이지. &lt;BR&gt;
&lt;/font&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최난희(72) 할머니는 난곡 재개발 아파트 바로 아래 중앙단지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 18만 원을 내며 홀로 살고 계셔. tv 하나에, 침대 하나, 거울 하나 정도만 단출하게 방을 차지하고 있지. 할머니는 장암 수술을 받은 지 8개월 정도 됐지만 &quot;아들이 아파서 아픈 거 표도 못 낸다&quot;며 웃으셔. 함께 살던 큰 아들이 현재 국립의료원에서 요양 중이거든. 간경화로 간이 거의 망가져 간 이식 안 하면 죽는데. 다행히 생활대상자로 인정이 돼 영세민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데. 그렇게 아들을 119로 실려 보내고, 홀로 월세방을 지키고 계셔. &lt;/font&gt;&lt;/p&gt;
&lt;BR&gt;
&lt;font face=&quot;gulim&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114163892.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1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재개발로 난곡을 떠났던 최난희 할머니. 친구들과 가까이 살고 싶어 다시 난곡 근처로 이사왔다.&lt;/p&gt;&lt;/div&gt;
&lt;/font&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그런데 내가 만나기로 한 시간에 좀 늦어진다는 전화를 했더니 전화기 너머에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할머니의 음성이 들렸어. &quot;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quot;는. 할머니는 인터뷰를 마치곤 또 곧장 할머니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어. 친구들이 없다면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해. &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&lt;br /&gt;
난곡 원주민 최난희 할머니는 그야말로 '친구 따라 강남 온' 할머니야. 같이 살자는 자식들의 손을 뿌리치고 친구들이 있는 이곳 신림7동 중앙단지로 부리나케 이사를 온 거야.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동안 도대체 '친구'라는 말이 몇 번 나왔는지 모르겠어.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 친구' 하셨어. 할머니에게서 '친구'는 그저 공기 같은, 언제나 함께 있는 그런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지. 그 친구란 할머니가 난곡에서 인연을 맺은 이웃사촌들이야. &lt;/font&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난곡 재개발이 시작되던 2001년과 2002년 사이, 할머니는 이주비를 못 받고 그냥 나와야 했어. 73년 경 난곡으로 이사 와 살다가 잠시 다른 지역으로 나가 사는 바람에 해당자가 되지 못한 거야. 그래서 둘째 아들네랑 살 곳을 찾아간 데가 부천이야. 부모 모시는 조건으로 융자해 준다고 해서 가게 된 거래. 그런데 할머니는 도저히 못 살겠더라는 거지. “친구들이 없으니 죽을 것 같았다”며. 말동무가 없으니 너무 힘드셨데. 그래서 1년도 못 살고 혼자 난곡 가겠다고 이곳 중앙단지로 오게 된 거야. 난곡 원주민들이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고 국회단지, 중앙단지와 같은 주변으로 많이들 내려왔거든. &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최난희 할머니는 동네에 있는 노인 쉼터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 또 매달 셋째 주 일요일엔 난곡 이웃이었던 친구들과 40년 째 이어오고 있는 계모임에 참석해. 2만 원씩 내고 밥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거지. &lt;/font&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아들 때문에 속상한 얘기도 할 수 있고, 몸이 아프면 어디가 아픈지 서로 묻고. 지금도 중앙 단지에 7,8명 서로 마음 통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얼굴 안 보이면 어떻게 됐는지 관심 가지고 들여다 볼 친구들이 있지요.&quot;&lt;/font&gt; &lt;br /&gt;
&lt;BR&gt;
할머니는 뭔가 자신의 든든한 백을 얘기하시는 것 같았어.&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p&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10784920.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1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가까이 사는 친구집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최난희 할머니(오른쪽).&lt;/p&gt;&lt;/div&gt;
&lt;/font&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앞에서도 말했지만 최난희 할머니는 난곡에 들어와 20년 정도 살다 잠시 수서로 나가 사신 적이 있어. 그때 난곡 사람들에게 수서에 있는 영세민 아파트 신청을 받았데. 그때 할머니도 신청을 해서 그 아파트로 들어가게 된 거지. 140만원 보증금 내고 관리비, 임대료, 난방비 등을 합하면 다달이 15~20만원이 나갔다더군. 친구들을 의지하면 사셨으니까, 수서로 가셨을 때 외롭지 않았냐고 물었지. 그런데 할머니 이 대답을 하시면서 어찌나 신나게 말씀하시던지. &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&lt;br /&gt;
&lt;/fon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quot;난곡 이웃들이 여럿 살아서 완전 난곡 같았어요. 죄다 난곡 사람들이었어. 난곡에서 많이들 그곳을 신청해 갔거든. 우리 아래층도, 위층도, 옆집도 다 난곡 사람이었어. 일 나가도 난곡 사람, 여길 가도 저길 가도 난곡 사람들이서 옛 동네와 비슷했지. 또 수서 가서도 계모임 하러 매달 난곡에 왔거든.&quot;&lt;/font&gt; &lt;/font&gt;&lt;/font&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그런데 그곳 보증금을 계약할 때마다 올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빌리면서 계약을 갱신하다 보니 보증금을 처음 14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 냈었데. 이리저리 빌려서. 그 뒤 문제가 있다며 계약 갱신 안 된다고 해서 그 영세민 아파트를 나와야 했데. 그래서 할머니는 &quot;살던 곳으로 다시 간 거죠.&quot;라고 말씀하셨어. 재개발 되기 전 난곡은 타지에 나가 있어도 어려워지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고향‘ 같은 곳이었던 거지. &lt;/font&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gt;&lt;br /&gt;
&lt;/fon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최난희 할머니는 마흔 살이었던 73년에 처음 난곡에 왔었데. 사람들이 구덩이 파서 똥 묻곤 했던 곳에 호박 심어서 호박 따다 팔곤 하셨어. 난곡 오기 전에 남편이 고물 장사 같은 거 하고, 학교 돌아다니며 중고 책 같은 거 팔고 다녔는데, 그렇게 해서는 월세 내기도 어려웠다는 거야. 그런데 난곡에 오면서 생활이 달라진 거야. 할머니 말씀이 이래. &lt;/font&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color=&quot;#ff9900&quot;&gt;&quot;난곡 오니까 힘만 있으면 살겠더라고. 시골서 힘 있게 살았으니. 월세만 2만 원에 보증금도 없다시피 살았는데, 그래도 노동자들이 많으니 따라다니면서 일하면 돈 벌 수 있었어. 벽돌 지고, 시멘트, 모래도 나르고. 남자보다 더 잘 했지. 힘은 들어도 밥은 먹고 살겠더라고.&quot;&lt;/font&gt;&lt;/font&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그렇게 열심히 일해 전세로 옮겨 살았는데 그만 남편이 51세 때 세상을 떠난 거야. 그런데 남편 삼오제 때 큰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 나서 혼수상태가 됐데. &quot;백 없으니 보상도 못 받았다“고 해. 급하게 보름 만에 영세민 신청해서 그나마 영세민 지정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둘째 아들도 마흔 한 살에 차 사고로 죽고 말았어. 남편 잃고 홀로 자식 키우고, 또 자식 잃고. &quot;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quot;는 할머님 말씀을 들으니, 할머니의 반평생이 ‘블랙아웃’되는 것같이 느껴졌어. &lt;/font&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그러니 이런 할머니의 기구했던 인생에 친구가 있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니? 난곡에 살면서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 지금까지 시름을 덜며 의지하며 살아가고 계신 모습을 보니 그저 신비할 뿐이야. &lt;br /&gt;
&lt;BR&gt;
&lt;/font&gt;&lt;/p&gt;&lt;font face=&quot;gulim&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18169/1004924227.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31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신림7동 중앙단지에 마련된 노인의 쉼터. 최난희 할머니(가운데)가 친구들과 간식을 나눠먹고 있다. &lt;/p&gt;&lt;/div&gt;
&lt;/font&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font face=&quot;gulim&quot; size=&quot;3&quot;&gt;최난희 할머니를 만나고, 오랜 세월 친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옛 달동네 원주민들을 만나다보니, '친구'에 대한 생각을 부쩍 더 많이 하게 돼. 난, 친구를 사귀며 살고 있는지. 난, 친구를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지. 난, 친구가 되어주며 살고 있는지. 유난히 아픔이 많았던 2008년 한국. 이제 그 겨울 한복판을 지나며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것은 &quot;어떻게 더불어 함께 즐겁게 일하며 살아갈 것인가&quot;하는 거야. 소중한 친구들이 있으면서도 내 일에만 너무 바빠 있었던 나의 모습이 유난히 클로즈업 되는 요즘이다. 그래서 더욱 '네'가 그리운 요즘이야.&lt;/font&gt;&lt;/p&gt;
&lt;/div&gt;&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1부]어디로 갔을까</category>
			<author>dnjslfkd ('난곡 그후' 취재팀)</author>
			<pubDate>Mon, 22 Dec 2008 05:40:00 GMT</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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