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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nnel>
		<title>이 풍진 세상에</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link>
		<description>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위에 서서</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at, 07 Nov 2009 23:36:47 GMT</pubDate>
		<item>
			<title>간판 구경, '고등어 &amp; 콩나물'</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4427</link>
			<description>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88819472.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고등어'와 '콩나물' 사이에 낀 '&amp;amp;'을 애교로 봐 줄 수 있을까. &lt;/p&gt;&lt;/div&gt;
&lt;BR&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출퇴근을 걸어서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도의 간판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기억력이 왕성할 때야 엔간한 상호쯤은 외워 버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집 앞 가게 이름도 긴가민가할 때가 많다. 어쨌든 나는 길 건너편에 죽 이어진 가게들의 상호나 취급품목 따위를 무심히 읽으면서 걷는 게 어느 새 버릇이 되었다.&lt;BR&gt;
&lt;BR&gt;
그런데 직업의식은 참 무섭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늘 색연필을 들고 가게 이름, 거리에 걸린 펼침막, 전봇대에 붙은 광고전단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에 붙인 댓글조차도 교정을 본다는 '편집자'들의 습관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뜻밖에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가 제법 있다.&lt;BR&gt;
&lt;BR&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e4e4e4&quot;&gt;&lt;font color=&quot;#993366&quot;&gt;· 갈메기살 → 갈매기살&lt;BR&gt;
&lt;/font&gt;- 갈매기살은 돼지의 횡격막과 간 사이에 있는 근육질의 힘살이다. 기름이 없고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을 내기 때문에 귀한 육질로 치는데 ‘안창고기’라고도 한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희노애락 → 희로애락&lt;BR&gt;
&lt;/font&gt;- 희로애락(喜怒哀樂)의 ‘怒(노)’는 원래 소리가 ‘성낼 노’다. 그러나 발음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로’로 읽는다. ‘허낙(許諾)’을 ‘허락’으로 표기하는 것과 같은 ‘활음조 현상’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송이꾸이 → 송이구이&lt;BR&gt;
&lt;/font&gt;- ‘구이’는 ‘굽다’에서 온 명산데 경상도 사람은 대체로 ‘꿉다’로 발음한다. 물론 표준발음은 아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솜 탐니다 → 솜 탑니다&lt;BR&gt;
&lt;/font&gt;- ‘탑니다’의 받침 ‘ㅂ’이 뒤의 ‘ㄴ’ 때문에 자음동화되어 ‘ㅁ’으로 발음되었다. 자음동화는 표준발음이긴 하지만 표기는 형태를 밝혀 적어야 한다.&lt;BR&gt;
&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84905424.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1025&quot; alt=&quot;&quot;/&gt;&lt;/div&gt;1km 남짓한 거리에서 발견한 잘못된 표기가 네 개나 된다. 주인은 자기 가게에 쓰인 글귀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설사 안다고 한들 적잖은 돈을 들여서까지 그걸 바꿀 엄두를 내는 것도 쉽지는 않겠다.&lt;BR&gt;
&lt;BR&gt;
요즘 간판은 꽤 재미있다. 114 상담원을 웃긴 상호로 ‘누렁이도 찰스로’(애견가게), ‘드가장 여관’(숙박업소), ‘회밀리가 떴다’(횟집) 등이 있다고 했다. 출근길의 거리에서 만난 가게이름 가운데 기중 마음에 드는 것은 도로변의 조그만 반찬가게다. &lt;BR&gt;
&lt;BR&gt;
이름 하여 ‘고등어와 콩나물’. 어떤가, 지극히 평범하지만 범상치 않은 격조(!)가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예의 간판에서 ‘&amp;amp;’를 ‘와’로 읽었다. '콩나물과 고등어'로 얻은 정겹고 포근한 격조는 예의 생뚱맞은 영자 탓에 어정쩡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런 걸 ‘옥에 티’라고 하나 보다.&lt;BR&gt;
&lt;BR&gt;
뜻밖에 우리말 속에 이런 형식의 영어 기호나 문자가 심심찮게 쓰이고 있는 듯하다. 둘을 비교하거나 대조할 때 ‘:’ 대신에 쓰는 ‘vs’, ‘기타’를 뜻하는 ‘etc’, ‘예’로 쓰이는 ‘ex’ 등이 그렇다. &lt;BR&gt;
&lt;BR&gt;
보니까 '&amp;amp;'는 주변 간판, '구두수선 &amp;amp; 운동화 세탁', '지 앤 미' 등에서도 쓰였다. 미용실 이름인 '지 앤 미'에서 '지못미'를 떠올리면 꽝이다. 보아하니 이건 '지(智) &amp;amp; 미(美)'인 듯하니 말이다.&lt;BR&gt;
&lt;BR&gt;
요즘 아이들은 편지를 쓸 때, ‘to’나 ‘from’ 따위를 마치 한글 조사처럼 사용한다.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가 한문에다 한글 토씨만 붙인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lt;BR&gt;
&lt;BR&gt;
하긴 우리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땐 대부분의 사진관이 ‘DP &amp;amp; E’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이들 영자는 각각 ‘현상(developing), 인화(printing), 확대(enlarging)’의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 사진관 간판의 뜻을 새길 수 있었던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lt;BR&gt;
&lt;BR&gt;
인근에 있는 실내장식 전문점의 상호는 ‘집과 사람들’이다. 우리말을 쓴데다가 구의 형식으로 쓴 것도 독특하다. 러나 옥에 티는 여기에도 있다. 상호 아래에 일렬로 세운 글자는 모두 외래어다. ‘인테리어, 씽크대, 브라인더’인데, ‘인테리어’는 순화하여 ‘실내장식’으로 쓰고, 나머지는 ‘싱크대’와 ‘블라인드’가 바른 표기다. &lt;BR&gt;
&lt;BR&gt;
영어가 저도 몰래 주인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 나라여서인가. 일상생활은 영자와 그 부스러기 말로 얼룩진다. ‘D/C, PC, A/S, T/O’ 등의 영자가 아무런 저항 없이 자연스레 쓰인다. 심지어는 ‘올리다, 내리다’를 ‘업(up)과 다운(down)’으로 쓰는 게 무슨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lt;BR&gt;
&lt;BR&gt;
시민단체에서 연 집회의 사회자가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분위기가 너무 ‘다운’되어 있네요. 분위기를 ‘업’시키는 의미에서 구호 한번 하죠.&lt;BR&gt;
&lt;/font&gt;&lt;BR&gt;
한때 나는 운동권의 언어관이 다분히 이중적이지 않나 싶었다. ‘오전’, ‘오후’로 써도 될 터인데 굳이 ‘이른’, ‘늦은’이라고 모호한 용어를 쓰면서도 정작 문건에서는 ‘항상성(恒常性)’, ‘형해화(形骸化)’ 따위의 관념어로 칠갑을 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lt;BR&gt;
&lt;BR&gt;
세월이 하 수상해서일 테다. 이제 사람들은 잡탕이 되고 있는 말글살이조차 심상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랜드 바겐’과 ‘원 샷 딜’, ‘에코 프렌즈’, ‘한강 르네상스’, ‘윈드 앤 바이시클 플라자’ 따위가 정부에서 펴는 정책 이름이니 더 무엇을 말하랴.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22881456.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BR&gt;
그나마 이 도시에 살면서 다행스러운 것은, 안동의 지자체 상징 구호(도시 브랜드 슬로건)가 여전히 한글이라는 점이다. ‘굳 앤 디퍼런트 영주’와 ‘파인토피아 봉화’, ‘싱 어 청송’, ‘핫 영양’, ‘러닝 문경’, ‘저스트 상주’ 등의 혀 짧은 구호에서 안동의 그것은 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달리 영자로 표기할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 말이다.&lt;BR&gt;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lt;2009. 11. 6.&amp;gt;&lt;BR&gt;
&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51321548.jpg&quot; width=&quot;70&quot; height=&quot;41&quot; alt=&quot;&quot;/&gt;&lt;/div&gt;&lt;/font&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가겨 찻집</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Fri, 06 Nov 2009 11:24:00 GMT</pubDate>
		</item>
		<item>
			<title>우포(牛浦), 2009년 가을</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4366</link>
			<description>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87040310.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&lt;BR&gt;
지난 10월 말께에 우포를 다녀왔다. 우연한 여행이다. &amp;lt;오마이뉴스&amp;gt; 블로그의 이웃들과 함께였다. 애당초 내가 정한 행선지가 아니었기에 그것은 내게 아주 가볍고 부담 없는 시간이었다. 사진기를 갖고 갈까 말까 하고 망설였지만 나는 줌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맹꽁이 가방에 넣고 동행했다.&lt;BR&gt;
&lt;BR&gt;
1박 2일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같이한 시간은 길지 않다. 심야에 술을 좀 마셨고, 이른 새벽에 서둘러 숙소를 떠나 안개 자욱한 우포늪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빛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되는 대로 셔터를 눌렀다. 늘 그렇듯이 나중에 이미지를 통해 여정을 복기(復碁)하면서 쓸 만한 사진만 고르면 될 터이니까.&lt;BR&gt;
&lt;BR&gt;
동류의 사람들이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유유상종이라 하지 않는가. 비슷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걸 나누는 것은 유쾌한 일인 것이다. 나이와 사는 곳, 하는 일도 제각기 달랐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삶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아주 정겹고 유쾌하게 나누었던 것 같다. &lt;BR&gt;
&lt;BR&gt;
만남은 짧고 작별의 시간은 서둘러 다가온다. 이튿날 오후 늦게, 우리는 악수를 나누고, 뒷날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다른 벗들은 모두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2009년 가을의 우포행을 정리한 듯하다. 이제 내 차례인 것이다. 굳이 차례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다. &lt;BR&gt;
&lt;BR&gt;
몇 장의 사진을 고르고 규격에 맞게 보정한 뒤, 그것을 천천히 한 장 한 장 바라보았다. 그것을 렌즈에 담을 때의 공기, 숨결, 풍경과 느낌 따위를 새롭게 복기하면서. 시간이 흘러도 그것들은 아주 생생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기억될 터이다. &lt;BR&gt;
&lt;BR&gt;
우포 곳곳을 안내한 부지런한 초석님의 넘치는 에너지와 우포가 연출해 내는 모든 풍경을 담으려 했던 해를그리며님의 한결같은 눈길을. 그리고 시종 몸 가볍게 일행을 챙겨준 얄랴셩님의 바지런과 군말 없이 늠름하게 우포를 돌아본 리수와 리준 자매, 그리고 리수 어머니의 너그럽고 푸근한 미소를.&lt;BR&gt;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34770142.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55308934.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lt;/fon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407427972.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83226300.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93577667.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p&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89149519.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p&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53759927.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40668386.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35599031.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45564848.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26242415.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03847676.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98&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70183083.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lt;/p&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68270248.jpg&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598&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국보 제34호)&lt;/p&gt;&lt;/div&gt; &lt;/p&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67201857.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3&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창녕시장의 등겨가루메주(?). 등겨장의 재료다. 우포행 수확 중 하나다. ⓒ해를그리며&lt;/p&gt;&lt;/div&gt; &lt;/p&gt;
&lt;BR&gt;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lt;2009. 11. 5.&amp;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77442834.jpg&quot; width=&quot;70&quot; height=&quot;41&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BR&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4681900&quot;&gt;&lt;/embed&gt;&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풍경</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Thu, 05 Nov 2009 11:22:20 GMT</pubDate>
		</item>
		<item>
			<title>애비가 죽고 없어도 굳게 살아라</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4223</link>
			<description>&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003366&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고 권재혁 선생 40주기' 추모제 기사를 읽고&lt;BR&gt;
&lt;/strong&gt;&lt;/font&gt;&lt;BR&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52311988.jpg&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377&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고 권재혁 40주기 추모제'. ⓒ 한겨레&lt;/p&gt;&lt;/div&gt;
&lt;BR&gt;
오늘 아침 &amp;lt;한겨레&amp;gt;에서 ‘고 권재혁 40주기 추모제’란 기사를 읽었다. 기사의 제목은 &lt;a href=&quot;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5695.html&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간첩 낙인 40년, 아버지 원망 이젠 내려놔”&lt;/font&gt;&lt;/a&gt;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발표한 ‘간첩’과 ‘빨갱이’ 조작 사건이 한둘이 아니어서 좀 심상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워낙 생소한 이름이라 기사를 찾아 읽었는데, 마음이 여간 애잔해지지 않는다.&lt;BR&gt;
&lt;BR&gt;
권재혁은 생소한 이름이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글(&lt;a href=&quot;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85736.html&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권재혁을 아십니까&lt;/font&gt;&lt;/a&gt;)에 따르면 그는 이른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을 당한 진보적 경제학자다. 지난 11월 4일이 그의 40주기였던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권씨는 1955년 미국 오레곤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귀국해 건국대와 육사에서 강사로 있던 장래가 촉망되는 학자였다고 한다. &lt;BR&gt;
&lt;BR&gt;
촉망되는 경제학자를 ‘간첩’으로 만들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은 독재정권의 권력기구가 자행한 무자비한 고문이고, 그것을 추인한 사법부다. 늘 그렇듯이 진실과 정의가 밝혀지는 데는 너무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지난 4월 진실화해위가 “중앙정보부가 1968년 ‘권재혁 등 13명이 반국가단체인 남조선해방전략당을 조직했다’고 발표한 사건은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다”고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린 것(&lt;a href=&quot;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35371&amp;amp;PAGE_CD=N0000&amp;amp;BLCK_NO=3&amp;amp;CMPT_CD=M0009&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관련 기사&lt;/font&gt;&lt;/a&gt;)이다.&lt;BR&gt;
&lt;BR&gt;
고인의 큰아들 권병덕(59)씨 얘기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먹먹해졌다. 가족들은 서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걸 꺼리며 살아왔고, 한 번도 아버지 묘소를 함께 찾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수사기관에 연행된 아버지는 곧 처형되었다. “앞으로 면회 오지 말아라.”가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40년, 유족들에게 과연 '나라'는 무엇일까&lt;BR&gt;
&lt;/strong&gt;&lt;/font&gt;&lt;BR&gt;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는 ‘간첩의 자식’이란 굴레가 더 끔찍했을 것이었다. 1975년 인혁당 사건의 한 희생자의 막내아들은 네 살이었는데, 동네 아이들이 ‘빨갱이 새끼’라고 나무에 묶어놓고 사형을 시키는 놀이를 했다고 하니 간첩으로 낙인찍힌 유족들이 견뎌야 했던 고통은 가히 ‘천형’ 수준이었으리라.&lt;BR&gt;
&lt;BR&gt;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복역하다 대전교도소에서 암으로 숨진 이강복 씨의 아들은 38년 전 아버지의 주검을 찾으러 갔다. 그가 유언이라면서 받은 건 종이 한장. 거기엔 “풀잎도 꽃잎도 애비 없듯이, 애비가 죽고 없어도 굳게 자활해 살아라.”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color=&quot;#993366&quot; size=&quot;2&quot;&gt;&lt;strong&gt;“풀잎도 꽃잎도 애비 없듯이, 애비가 죽고 없어도 굳게 자활해 살아라.”&lt;/strong&gt;&lt;/font&gt;&lt;BR&gt;
&lt;BR&gt;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남길 유언을 쓰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이 땅의 곡절 많은 현대사 곳곳에 얼룩진 것은 이런 죽음과 피눈물이다. ‘간첩’으로 ‘빨갱이’로 지탄 받으며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 40년이 지난 이제야 그게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 한다. 그들이 감내한 그 40년의 세월은, 그 세월의 갈피마다 엉키고 서린 회한과 상처는 어쩌란 말인가.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70755952.jpg&quot; width=&quot;205&quot; height=&quot;388&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69. 5. 28 &amp;lt;조선일보&amp;gt;&lt;/p&gt;&lt;/div&gt;40주기 추모제를 치르며 유족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의 세월을 떠올리고 뒤늦은 국가의 참회와 고백 앞에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을까. 40년이라면 보통사람들의 반평생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 반평생을 숨죽여 살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 국가, 그리고 40년이 지난 뒤 그것이 ‘조작’이었다는 한 장의 결정문으로 내키지 않는 참회를 마감하는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lt;BR&gt;
&lt;BR&gt;
다행히 그런 역사의 굴곡과는 먼, ‘장삼이사’ 아버지를 둔 것을 우리는 행운이라 생각해야 할까. 그 역사의 모진 손길이 나와는 무관하게 지나갔다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까. 그래서 그게 몇몇 사람의 문제였다고, 분단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시대적 특수 상황이라고 눙치고 말 수 있을까.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국가보안법 등으로 사형 당한 이는 모두 180여 명&lt;/strong&gt;&lt;/font&gt;&lt;BR&gt;
&lt;BR&gt;
한홍구 교수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으로 사형을 당한 이는 박정희 정권 때 170여 명, 전두환 정권 때 10명가량이라고 한다. 또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쪽 당국이 적발한 간첩이 1천여 명이고, 그 가운데 진짜 북에서 남파시킨 간첩은 50명이 안 된다고 한다. &lt;BR&gt;
&lt;BR&gt;
그나마 해외 유학을 했거나 나름의 인맥도 있고, 또 민주화 운동이라도 했던 분들의 경우는 언론의 조명을 받고 과거사위의 조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억울한 ‘소시민’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선변호인조차 귀 기울여 주지 않아 혼자서 맞춤법도 맞지 않는 탄원서 한 장 남겨놓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증거도 없었던 사람들…….’(한홍구)이다. &lt;BR&gt;
&lt;BR&gt;
그러나 그나마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 설치된 &quot;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quot;(이하 과거사위)는 오는 2010년 4월 해산된다. 아직 과거사 조상의 대상으로조차 오르지 못한 숱한 억울한 누명과 억울한 죽음은 어쩌란 말인가.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과거사정리위원회는 내년 4월 해산&lt;/strong&gt;&lt;/font&gt;&lt;BR&gt;
&lt;BR&gt;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4년 동안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만족스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집권 여당은 국감 현장에서 &quot;과거는 '역사'에 묻고 이제 정리할 때&quot;, &quot;과거사위 운영은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quot;, &quot;좌파 편향&quot; 등의 발언을 하며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lt;BR&gt;
&lt;BR&gt;
과거사 정리는 말 그대로 ‘진실’과 ‘화해’를 위해서다. 그리고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건 상식이다. 과거사 정리를 ‘국론 분열’ 쯤으로 이해하는 보수세력의 인식은 걱정스러운 이유다. 그렇잖아도 과거 군부 독재시절의 폭압 통치 기구였던 안기부, 보안사 등이 이름을 바꿔 국정원, 기무사 등 새로운 폭압 통치 기구로 바뀌고 있다는 여론이 심상치 않다.&lt;BR&gt;
&lt;BR&gt;
경제학자 권재혁을 비롯한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관련자들이 40년 만에 신원(伸寃)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뒤 늦었지만 이들의 명복을 빈다. 지난 시대의 어두운 역사를 되돌아 보는 뜻은 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함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전히 역사의 신원을 기다리는 우리 시대의 한과 슬픔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amp;nbsp; &lt;BR&gt;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lt;2009. 11. 4.&amp;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36401038.jpg&quot; width=&quot;70&quot; height=&quot;41&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gt;&lt;/font&gt;&lt;BR&gt;
&lt;BR&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4667835&quot;&gt;&lt;/embed&gt;&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길위에서</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Wed, 04 Nov 2009 05:42:27 GMT</pubDate>
		</item>
		<item>
			<title>숱한 백성이 무참히 죽어 원혼이 떠돌던 곳</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4222</link>
			<description>&lt;p&gt;&lt;font color=&quot;#003366&quot;&gt;&lt;font size=&quot;3&quot;&gt;&lt;strong&gt;&lt;font face=&quot;dotum&quot;&gt;[경북 북부지역의 시가기행 ⑧] 안축의 경기체가 &amp;lt;관동별곡&amp;gt;·&amp;lt;죽계별곡&amp;gt;&lt;/font&gt; &lt;br /&gt;
&lt;/strong&gt;&lt;/font&gt;&lt;BR&gt;
09.11.03 12:22 ㅣ최종 업데이트 09.11.03 12:25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장호철 (q9447) &lt;BR&gt;
&lt;BR&gt;
태그 : 안축, 죽계별곡, 관동별곡 &lt;BR&gt;
&lt;/font&gt;&lt;/p&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84251058.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소수서원을 끼고 흐르는 죽계천은 &amp;lt;죽계별곡&amp;gt;의 고향이라 할 만하다. &lt;/p&gt;&lt;/div&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&lt;BR&gt;
가을이 깊었다. 한가위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더니 어느 새 우리는 겨울의 어귀에 서 있다. 곱게 물들며 지는 나뭇잎, 그 조락이 환기하는 것은 시간, 그 세월의 무상이다. 그것은 또 우리 역사 속에 스러져 간 시인들의 삶과 그들의 노래를 덧없이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lt;BR&gt;
&lt;BR&gt;
오늘의 여정은 영주 순흥 쪽이다. 순흥, 소백산 자락으로 한 시인의 노래와 그 자취를 찾아나서는 길이다. 그는 본관을 '순흥'으로 쓰는 고려 말의 문신 근재(謹齋) 안축(安軸,1287~1348)이다. 근재는 경기체가인 &amp;lt;관동별곡&amp;gt;(조선조 중기에 송강 정철이 쓴 가사 &amp;lt;관동별곡&amp;gt;과는 다른 노래다)과 &amp;lt;죽계별곡&amp;gt;을 지은 이다. &lt;BR&gt;
&lt;BR&gt;
후렴에 나오는 '경(景)긔엇더니잇고'라는 구절 때문에 '경기체가'라는 이름이 붙은 이 노래는 경기하여가, 경기하여체가 또는 별곡체 등으로도 불린다. 흔히 경기체가는 고려가요로 널리 알려졌지만, 기실 고려시대의 작품은 &amp;lt;한림별곡&amp;gt;, &amp;lt;관동별곡&amp;gt;, &amp;lt;죽계별곡&amp;gt; 등 세 편에 불과할 뿐이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경기체가, 신흥사대부의 세계관을 반영한 시 양식&lt;BR&gt;
&lt;BR&gt;
&lt;/strong&gt;&lt;/font&gt;경기체가의 첫 작품 &amp;lt;한림별곡&amp;gt;은 교과서를 통해 두루 소개된 노래다. 경기체가의 성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계층은 &amp;lt;한림별곡&amp;gt;을 지은 여러 유학자들, &amp;lt;죽계별곡&amp;gt;·&amp;lt;관동별곡&amp;gt;의 안축 등 고려 후기의 '신흥 사대부'들이다. 고려 후기에 역사의 새로운 주도 세력으로 부상한 이들 계층은 한시 창작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욕구를 경기체가 형식을 이용하여 표출한 것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17268444.jpg&quot; width=&quot;499&quot; height=&quot;394&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안축의 경기체가 &amp;lt;관동별곡&amp;gt;(왼쪽)과 &amp;lt;죽계별곡&amp;g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lt;/p&gt;&lt;/div&gt;
&lt;BR&gt;
경기체가는 무신집권기 문인의 현실 도피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들 신흥 사대부의 '세계관과 미의식'을 반영한 시 양식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경기체가는 이들 신진사류들의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과 득의에 찬 기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lt;BR&gt;
&lt;BR&gt;
&amp;lt;한림별곡&amp;gt;은 &amp;lt;악학궤범&amp;gt;·&amp;lt;악장가사&amp;gt;에 국한문 가사가 전하는 까닭에 교과서에 실려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근재의 문집에 전하는 &amp;lt;죽계별곡&amp;gt;과 &amp;lt;관동별곡&amp;gt;은 한문과 이두로 쓰여 낯설기만 하다. 엄밀히 보면 경기체가가 한글시가라기보다 한문시가로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60640207.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449&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순흥 금성단에 있는 금성대군의 신단비&lt;/p&gt;&lt;/div&gt;안동에서 순흥까지는 중앙고속도로를 타면 금방이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큰 굽이가 없는 밋밋한 길이 재미없는데다가 굳이 유료도로로 가야 할 만큼 바쁜 것은 아니어서 아내와 나는 국도를 탔다. 순흥에 닿는 데 40분쯤이 걸렸다. 중간에 잠깐 길이 헛갈렸던 것이다.
&lt;BR&gt;
&lt;/font&gt;&lt;/p&gt;&lt;BR&gt;
&lt;p&gt;&lt;font color=&quot;#003366&quot;&gt;순흥은 여말 성리학의 비조인 회헌 안향과 그 후손인 안축을 낳은 순흥안씨의 고향이다. 안축과 안보(安輔) 형제는 고려조뿐 아니라, 원나라의 대과에까지 나란히 급제한 재원들이다. 조선조 개국 초 '나라 안 전체의 학문을 다 합쳐도 이들의 학문을 당할 수 없다'는 말을 있을 정도였다. 당대의 석학인 목은 이색은 안보의 비문을 썼고, 그의 아버지 이곡은 안축의 문하생으로서 근재 사후 그의 비문을 썼으니 두 집안의 인연도 만만하지 않다.&lt;br /&gt;
&lt;BR&gt;
순흥은 고려 충렬왕과 충목왕이 태를 봉안하여 순흥부가 되었고, 조선조 태종 때 순흥도호부로 바뀌었다. 그러나 금성대군이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순흥에 유배 와 있다가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다시 거사를 도모하다 실패한 사건은 순흥을 뒤흔들었다. 숱한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순흥부는 폐부되었던 것이다. 순흥이 다시 도호부의 지위를 회복한 것은 숙종 때에 이르러서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순흥 안씨가 세거해 온 고을, 죽계(순흥)&lt;BR&gt;
&lt;/strong&gt;&lt;/font&gt;&lt;BR&gt;
이중환은 &amp;lt;택리지&amp;gt;에서 &quot;영천(榮川) 서북쪽 순흥부에 죽계라는 계곡이 있는데, 죽계는 소백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곳은 들이 넓고 산은 낮으며 물과 들이 맑고 깨끗하다. …… 참으로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이다&quot; 라고 하였다. 순흥은 한 명문가가 세거하기에는 충분한 고을인 셈이다.&lt;/p&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01073386.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순흥면사무소 뒤편에 있는 봉도각(蓬島閣) 공원에도 가을이 깊었다. &lt;/p&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15758069.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봉도각 공원의 경로소(敬老所). 매우 단정한 모양새의 팔작집이다. &lt;/p&gt;&lt;/div&gt;
&lt;BR&gt;
순흥은 행정구역으로는 '면'에 불과하다. 그러나 관내에 소수서원과 선비촌 등 유적지와 관광지를 끼고 있는데다가 부석사로 가는 길목이어서 이맘때쯤이면 이미 한적한 시골이 아니다. 더구나 면사무소가 있는 읍내리는 문화부 지정 '전통문화마을'이다. 영주에서 들어가는 순흥 어귀에 덩실하게 솟은 봉서루나, 면사무소 뒤 봉도각 주변의 고색창연한 연못과 경로소 따위가 연출하는 풍경은 순간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lt;BR&gt;
&lt;BR&gt;
소수서원을 지나 읍내리의 '사현정(四賢井)'에 이른다. 사현정은 말 그대로 '어진 이 네 사람의 우물'이다. '어진 이'는 이 동네에 세거했다는 안축의 아버지 안석과 그의 세 아들 축, 보, 집을 이른다. 안석이 호장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 묻혀 세 아들을 훌륭히 길러낸 우물이란다. &lt;BR&gt;
&lt;BR&gt;
조선조 인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우물의 내력을 알고 '사현정'이라는 비를 세우고 네 사람의 덕을 기리게 하였다. 그 후 인조 때 중건하였고 순조 때 다시 비각을 세웠다. 우물 깊이는 약 4m 정도라는데 석재의 뚜껑이 굳게 닫혀 있다. 지상에는 높이 70cm, 폭 1m의 화강암 각석을 우물 정(井)자형으로 3단 조립하였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67862508.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읍내리의 사현정. 사현(四賢)은 안축의 아버지 안석과 그의 세 아들을 이른다. &lt;/p&gt;&lt;/div&gt;
&lt;BR&gt;
안축은 1287년(충렬왕 13)에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문과에 급제하여 단양부주부 등을 지냈고, 1324년(충숙왕 11) 원나라 과거에도 급제하여, 그곳 관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고려로 돌아와 충혜왕 때 왕명으로 강원도 존무사(충숙왕 때에 임시로 존재했던 지방관)로 파견되었다. 그 후, 상주목사 등을 지내고 충렬·충선·충숙 3조(朝)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순흥 소수서원에 제향되었는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 &amp;lt;근재집(謹齋集)&amp;gt;이 있다.&lt;BR&gt;
&lt;BR&gt;
&amp;lt;관동별곡&amp;gt;은 1330년(충숙왕 17)에 안축이 강원도 존무사로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관동지방의 뛰어난 경치와 유적 및 명산물을 노래한 경기체가다. 이때 근재는 마흔네 살. 250년 뒤인 1580년(선조 13)에 역시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던 마흔다섯의 송강 정철이 가사 &amp;lt;관동별곡&amp;gt;을 지었으니 몇 세기를 넘어 강원도를 노래한 두 시인과 노래의 인연은 남다르다. &lt;BR&gt;
&lt;BR&gt;
&amp;lt;관동별곡&amp;gt;은 전체 9장으로, 위풍당당한 순찰의 정경을 노래한 작품의 서사 1장에 이어, 학성, 총석정, 삼일포, 영랑호, 양양, 임영, 죽서루, 정선을 각각 노래했다. &amp;lt;관동별곡&amp;gt;은 '실재하는 자연을 주관적 흥취로 여과하고 관념화하여 나열하여, 그 미감을 절도 있게 표출함으로써 사대부 특유의 세계관을 작품으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海千重(해천중) 山萬壘(산만첩) 關東別境(관동별경) &lt;BR&gt;
碧油幢(벽유당) 紅蓮幕(홍련막) 兵馬營主(병마영주) &lt;BR&gt;
玉帶傾盖(옥대경개) 黑槊紅旗(흑삭홍기) 鳴沙路(명사로) &lt;BR&gt;
爲(위) 巡察景(순찰경) 幾何如(기하여) &lt;BR&gt;
朔方民物(삭방민물) 慕義趨風(무의추풍) &lt;BR&gt;
爲(위) 王化中興(왕화중흥) 景幾何如(경기하여) &lt;BR&gt;
&lt;BR&gt;
바다 겹겹 산 첩첩인 관동의 절경에서 &lt;BR&gt;
푸른 휘장 붉은 장막에 둘러싸인 병마영주가 &lt;BR&gt;
옥대 매고 일산 받고, 검은 창 붉은 깃발 앞세우며 모래사장으로 &lt;BR&gt;
아, 순찰하는 그 모습 어떠합니까? &lt;BR&gt;
이 지방의 백성들 의를 기리는 풍속을 쫓네. &lt;BR&gt;
아, 임금의 교화 중흥하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lt;BR&gt;
&lt;/font&gt;&amp;nbsp; &lt;BR&gt;
&amp;nbsp; &amp;nbsp; - &amp;lt;관동별곡&amp;gt; 제1장 &lt;BR&gt;
&lt;BR&gt;
이 노래는 형식상 여러 가지 파격을 보인다. 이 같은 정제되지 않은 형식은 경기체가 장르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한다. 실제 노래할 때, 제1장의 4구와 6구는 각각 '위 순찰ㅅ경 긔 엇더니잇고'와 '위 왕화중흥ㅅ경 긔 엇더니잇고'로 불리었을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amp;lt;관동별곡&amp;gt;에는 피폐한 현실이 없다&lt;BR&gt;
&lt;/strong&gt;&lt;/font&gt;&lt;BR&gt;
&amp;lt;관동별곡&amp;gt;은 송강의 가사와 마찬가지로 금강산 일대의 풍치를 찬양하고 그 자연 속을 노니는 즐거움을 노래했다. 이 노래는 &amp;lt;죽계별곡&amp;gt;과 함께 양반들의 한가한 생활 풍경과 현실도피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는 근재의 문집 &amp;lt;관동와주(關東瓦注)&amp;gt;에 실린 한시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lt;BR&gt;
&lt;BR&gt;
당대는 외세의 압박과 외세를 등에 업은 권문세족과 사원세력의 횡포에다 계속되는 왜구의 침입 등이 그치지 않는 내우외환의 시대였다.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유리걸식, 권문의 종이나 소작인으로 전락하여 피폐한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근재는 &amp;lt;관동와주&amp;gt;의 한시에서 존무사로 강원도를 돌면서 목격한 피폐한 백성들의 삶과 구제창생의 의지를 노래한 것이다. &lt;BR&gt;
&lt;BR&gt;
그러나 안축의 &amp;lt;관동별곡&amp;gt;에서는 피폐한 민중의 모습이나 고뇌하는 관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경기체가라는 장르의 제약이라고도 하고, 여말 신흥사대부 문학의 양면성으로도 설명된다. 현실의 부정적 요소들을 드러내어 비판하고 개혁해 나가는 한편, 자신들의 위치나 풍류가 고려후기 권문세족에 못지않음을 과시할 필요도 있었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24619041.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소수서원 경렴정 건너편의 취한대(翠寒臺). 퇴계가 세운 정자다. 정자 앞을 흐르는 시내가 죽계천이다. &lt;/p&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49234002.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죽계구곡에 세워진 &amp;lt;죽계별곡&amp;gt; 시비 &lt;/p&gt;&lt;/div&gt;
&lt;BR&gt;
근재가 &amp;lt;죽계별곡&amp;gt;을 지은 것은 작가가 세상을 떠나던 해인 충목왕 4년(1348)으로 추정한다. 고향인 죽계(순흥)의 경치를 읊었는데, 여말 신흥사대부의 의욕에 넘치는 생활감정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amp;lt;한림별곡&amp;gt;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amp;lt;한림별곡&amp;gt;이 여럿이 놀이를 벌이는 자리에 돌림노래로 지어진 것인데 반해 안축의 &amp;lt;죽계별곡&amp;gt;은 개인이 창작한 노래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lt;BR&gt;
&lt;BR&gt;
&amp;lt;죽계별곡&amp;gt;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죽계의 지역적 위치와 경관, 제2장은 누·대·정자 위에서의 유흥, 제3장은 향교에서 유생들이 봄에는 경서를 외고 여름에는 현을 뜯는 모습을 노래한다. 마지막 제4장과 제5장은 천리 밖에서 그리워하는 모습과 성대(盛代)를 중흥하여 태평을 길이 즐기는 모습을 각각 노래한다. 다음은 우리말로 풀어낸 노래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죽령의 남쪽과 영가의 북쪽 그리고 소백산의 앞에,&lt;BR&gt;
천 년을 두고 고려가 흥하고 신라가 망하는 동안 한결같이 풍류를 지닌 순정성(순흥의 옛 이름) 안에,&lt;BR&gt;
다른 데 없는 취화같이 우뚝 솟은 봉우리에는, 왕의 안태가 되므로,&lt;BR&gt;
아! 이 고을을 중흥하게끔 만들어준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lt;BR&gt;
청백지풍을 지닌 두연(杜衍)처럼 높은 집에 고려와 원나라의 관함을 지니매,&lt;BR&gt;
아! 산 높고 물 맑은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lt;BR&gt;
&lt;/font&gt;&amp;nbsp; &amp;nbsp;&amp;nbsp; &amp;lt;제1장&amp;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숙수사의 누각과 복전사의 누대 그리고 승림사의 정자,&lt;BR&gt;
소백산 안 초암동의 초암사와 욱금계의 비로전 그리고 부석사의 취원루 들에서,&lt;BR&gt;
술에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깨었는데, 붉고 흰 꽃이 핀 산에는 비가 내리는 속에,&lt;BR&gt;
아! 절에서 노니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lt;BR&gt;
습욱의 고양지에 노는 술꾼들처럼 춘신군의 구슬 신발을 신은 삼천 객처럼,&lt;BR&gt;
아! 손잡고 서로 의좋게 지내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lt;BR&gt;
&lt;/font&gt;&amp;nbsp; &amp;nbsp; &amp;lt;제2장&amp;gt;&lt;BR&gt;
&lt;BR&gt;
&amp;lt;죽계별곡&amp;gt;은 죽계지방의 풍경을 노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신흥사대부의 왕성한 의욕과 자기 과시를 드러내면서 유학자들의 태평성대의 향유 의지를 표현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흥사대부의 부상은 결국 뒤에 조선조 개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amp;lt;죽계별곡&amp;gt;, 노래는 남았으나 역사는 덧없어라&lt;BR&gt;
&lt;/strong&gt;&lt;/font&gt;&lt;BR&gt;
근재 안축의 문학은 고려시대 경기체가의 형성과정과 함께 신흥사대부의 진취적 기상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한문과 이두로만 전승된 까닭에 후대의 독자들과는 그리 행복하게 만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문학을 고작 &amp;lt;관동별곡&amp;gt;·&amp;lt;죽계별곡&amp;gt;이라는 제목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경기체가라는 장르의 한계 탓이다. &lt;BR&gt;
&lt;BR&gt;
순흥에 더 이상 안축의 자취는 없는 듯하다. 우리는 인근 내죽리에 있는 소수서원을 찾는다. 동방유학의 비조 안향을 모신 이 서원의 원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다.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이 되는데 안축과 그의 아우 안보를 배향한 것은 1544년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91423182.jpg&quot; width=&quot;294&quot; height=&quot;803&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amp;lt;죽계별곡&amp;gt;을 새긴 서원의 바위들&lt;/p&gt;&lt;/div&gt;서원 입구 소나무 숲 오른편에 보물 제 59호 숙수사지(宿水寺址) 당간지주가 있다. &amp;lt;죽계별곡&amp;gt; 제2장에 나오는 그 숙수사다. 이 절은 통일신라 전기에 창건되어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다 소수서원의 건립으로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적어도 근재가 &amp;lt;죽계별곡&amp;gt;을 노래하던 시절까지는 숙수사는 산문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lt;BR&gt;
&lt;BR&gt;
당간지주 옆 서원을 끼고 흐르는 내는 소백산 국망봉에서 발원하여 초암사와 죽계구곡을 거쳐 온 죽계천(竹溪川)이다. 죽계천은 만만찮은 곡절과 한을 품고 있는 내다. 1457년(세조 3),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는 참화가 이 고을과 내를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lt;BR&gt;
&lt;BR&gt;
순흥에서 일어난 단종복위 운동의 실패로 순흥부는 불타 폐부가 되었고, 숱한 백성들이 무참히 타살되었다. 피가 이 시내를 적시고 흘러, 십 리 아래 '피끝마을(안정면 동촌동)'까지 이어졌다 하니 이 조그만 고을을 덮친 참화의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lt;BR&gt;
&lt;BR&gt;
서원 입구의 정자, 경렴정 맞은편의 '경(敬)자 바위'에는 '백운동(白雲洞)' 석 자 아래 '경자'가 새겨져 있다. 정축지변 후, 희생당한 부민들의 시신이 죽계천에 수장되면서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주세붕 선생이 원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경(敬)자를 파고 그 위에 붉은 칠을 하고 위혼제를 지냈더니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lt;BR&gt;
&lt;BR&gt;
소수서원 경내를 지나 선비촌으로 가는 길은 죽계천을 따라 나 있다. 그 길가에 군데군데 앉힌 커다란 바위에 안축의 &amp;lt;죽계별곡&amp;gt;이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바위를 흘낏 일별하고는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여전히 그의 노래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lt;BR&gt;
&lt;BR&gt;
그의 시를 새긴 돌비의 행진이 끝나는 길 저편, 느티나무 고목 주변에 단풍이 짙어져가고 있다. 거기 막힌 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이 계절을 환기해 본다. 시나브로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다. 700여 년 전, 근재가 읊은 &amp;lt;죽계별곡&amp;gt;은 태평성대의 사계를 노래하면서 맺는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붉은 살구꽃이 어지러이 날리고 향긋한 풀은 푸른데, 술동이 앞에서 긴 봄날 하루놀이와, &lt;BR&gt;
푸른 나무가 우거진 속에 단청 올린 다락은 깊고도 그윽한데, 거문고 타는 위로 불어오는 여름의 훈풍, &lt;BR&gt;
노란 국화와 빨간 단풍이 청산을 비단처럼 수놓을 제, 말간 가을 밤 하늘 위로 기러기 날아간 뒤라, &lt;BR&gt;
아! 눈 위로 휘영청 달빛이 어리비치는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lt;BR&gt;
중흥하는 성스러운 시대에, 길이 대평을 즐기느니,&lt;BR&gt;
아! 사철을 즐거이 놉시다그려. &lt;BR&gt;
&lt;/font&gt;&amp;lt;제5장&amp;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64024892.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잇길. 가을이 쓸쓸하게 저물어가고 있다. &lt;/p&gt;&lt;/div&gt;
&lt;BR&gt;
'붉은 살구꽃'의 봄, '여름의 훈풍', 가을의 '기러기', 겨울의 '눈'을 그리면서 시인은 중흥의 성대를 노래하고, 그 사계를 즐기자고 권유한다. 그러나 반세기를 지나지 않아 고려 왕조는 그 명운을 다했으니 도도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한갓진 노래의 울림은 참으로 덧없이 새겨질 뿐이다. &lt;BR&gt;
&lt;BR&gt;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컬처라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lt;BR&gt;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허용하고 &amp;nbsp;있습니다&lt;/p&gt;&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48621&amp;amp;PAGE_CD=N0000&amp;amp;BLCK_CD=N0000&amp;amp;CMPT_CD=M0011&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출처 : 숱한 백성이 무참히 죽어 원혼이 떠돌던 곳 - 오마이뉴스&lt;/font&gt;&lt;/a&gt;&lt;/font&gt;&lt;/p&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안동 이야기</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Tue, 03 Nov 2009 08:55:36 GMT</pubDate>
		</item>
		<item>
			<title>안개, 기형도, 시</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4070</link>
			<description>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00051136.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52581144.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12168084.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&lt;BR&gt;
짙은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졌다. 안동에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야산 사이에 옴팍 낀 이 도시의 안개는 지대가 높아질수록 짙고 자욱하다. 물론 전적으로 도시 주변에 세워진 두 개의 댐(안동·임하) 탓이다. 덕분에 이 도시의 시민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호흡기 질환에 훨씬 많이 노출되어 있다. &lt;BR&gt;
&lt;BR&gt;
‘도시와 안개’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은 ‘무진(霧津)’이다. 작가 김승옥이 일찌감치 창조한 그 도시는 ‘안개로 포위된 도시’였다. 그 안개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힘입어 그의 단편 &amp;lt;무진기행&amp;gt;은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lt;BR&gt;
&lt;BR&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e4e4e4&quot;&gt;&lt;font color=&quot;#993366&quot;&gt;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女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lt;BR&gt;
&lt;BR&gt;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lt;BR&gt;
&lt;/font&gt;&lt;BR&gt;
&amp;nbsp; - 김승옥 &amp;lt;무진기행&amp;gt; 중에서&lt;BR&gt;
&lt;/div&gt;&lt;BR&gt;
&lt;p&gt;출근하면, 산기슭에 자리 잡은 학교는 짙은 안개에 덮여 있다. 주위를 둘러싼 안개 덕분에 새로 단장한 교사는 낯설어 뵌다. 그래서일까, 문득 자신이 아주 먼 곳으로부터 막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그 안개 속에 텅 빈 운동장을 타박타박 걸어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파문처럼 이는 연민을 가누지 못한다…….&lt;br /&gt;
&lt;BR&gt;
자욱한 안개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기형도(1960 ~1989)의 시 &amp;lt;안개&amp;gt;를 떠올린다. 고작 스물아홉에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이 시인은 그 드라마틱한 생애만큼이나 개성적인 시를 남겼다. 유고시집 &amp;lt;입 속의 검은 잎&amp;gt; 한 권만으로도 시인이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인 시’들이 주는 울림 때문일 터이다. &lt;BR&gt;
&lt;BR&gt;
그의 시 &amp;lt;안개&amp;gt;는 1985년도 신춘문예 등단작이다. 또 다른 무진일까. 강을 끼고 있는 그 '읍'에는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낀다. 사람들은 그 안개를 겪어야 하고 거기 익숙해진다. 안개는 때로 '성역'을 이루기도 하고 안개 속에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 무심하다. ‘공장의 검은 굴뚝’과 ‘폐수’로 삶의 터전을 잃지만 사람들은 다시 공장으로 간다…….&lt;/p&gt;&lt;BR&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57816686.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1436&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 /&gt;
&lt;BR&gt;
&amp;lt;안개&amp;gt;는 신춘문예 당선작으로는 뜻밖에 문명 비판적이고 고발적인 시다. 단정적 반어에 담긴 메시지는 강하고 날카롭다. 시 전편의 내레이션은 도발적이어서 익숙한 시 문법을 뒤집고 있다. 화자가 주목하는 것은 물론 ‘근대화와 개발’의 미명 아래 스러져가는 환경과 농촌의 변화다.&lt;/p&gt;&lt;BR&gt;
&lt;p&gt;무진에서 몽환적 소재였던 안개는 이 시에선 공장의 매연으로 산업화의 상징으로 쓰였다. 서정적 소재를 뒤엎어버림으로서 시는 산업화의 부정적 양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거기 희생되고 있는 이들은 ‘쓸쓸한 가축’으로 비유된다.&lt;br /&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99943600.jpg&quot; width=&quot;290&quot; height=&quot;209&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기형도(1960 ~1989)와 시집&lt;/p&gt;&lt;/div&gt;산업화로 인한 희생은 ‘갇혀 있음’으로, 매연으로 망가진 사물들은 제각기 ‘두꺼운 공중의 종이장’, ‘노랗고 딱딱한 태양’, ‘검고 무뚝뚝한 나무’로 표현된다. 그것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니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lt;BR&gt;
&lt;BR&gt;
산업화의 중심 지역은 ‘안개의 성역’이 되고, 안개는 ‘공기’와 ‘식물’, ‘공장’을 빨아들이고, ‘사내의 반쪽’을 잘라버린다. 산업화가 초래한 공동체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은 그런 비유를 통해 그 면목을 드러낸다. &lt;BR&gt;
&lt;BR&gt;
‘겁탈’ 당한 ‘여직공’과 ‘취객’의 동사는 ‘사소한 사건’이다. 그것은 ‘개인적 불행’일 뿐, 안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는 비정한 현대사회에 대한 반어적 고발이다. &lt;BR&gt;
&lt;BR&gt;
‘하늘을 향해/젖은 총신을 겨’누는 것은 자연에 반하는 산업화를 가리킨다. 몇몇이 ‘욕설을 해대’었지만 그들은 떠나가고 아무도 읍으로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이 고장은 이미 살 만한 곳이 못 되기 때문이다. 작품을 가로지르고 있는 화자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매우 비관적이다.&lt;BR&gt;
&lt;BR&gt;
마지막 연은 한 행으로 된 제1연을 되풀이하고, 거듭되는 반어로 맺는다. 그 읍의 안개는 ‘명물’이고, 매연의 책임은 누구에게나 있음을 화자는 자본주의의 ‘주식’으로 표현한다. 여공들의 햇볕을 보지 못해 창백한 얼굴은 ‘희고 아름답’다고 노래되고, ‘아이들은 자라서’ ‘공장으로 간다’. 이 끔찍하고 안타까운 현실은 여전히 반복될 뿐인 것이다. &lt;BR&gt;
&lt;BR&gt;
시인은 산업화를 자연 훼손과 물신주의의 주범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환경은 오염되고 인간은 그 일련의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병렬적, 점층적 구성과 아이러니 기법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또 '안개'는 이 시에서 서정적 소재가 아닌, ‘매연과 산업화의 부정적 측면’을 환기하는 소재로 쓰임으로서 작품의 비극성을 더해준다. &lt;BR&gt;
&lt;BR&gt;
아무도 쉬 흉내낼 수 없는 기형도의 독특한 시세계는 김현에 의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우울한 유년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을 아우르는 그의 시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새롭게 복기되고 있는 듯하다. &lt;/p&gt;&lt;BR&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e4e4e4&quot;&gt;&lt;font color=&quot;#993366&quot;&gt;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lt;BR&gt;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lt;BR&gt;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lt;BR&gt;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lt;BR&gt;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lt;BR&gt;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color=&quot;#003366&quot;&gt; &amp;nbsp; - &amp;lt;빈 집&amp;gt; 중에서&lt;/font&gt;&lt;/div&gt;&lt;BR&gt;
&lt;p&gt;기형도는 다른 시 &amp;lt;빈 집&amp;gt;에서도 ‘안개’를 노래했다. '겨울 안개'는 사랑을 잃기 전에 화자가 지녔던 '밤'과 '촛불', '종이'와 '눈물', '열망'과 함께 '사랑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준 것들' 중의 하나다. 이 겨울의 어귀에서 내가 만나고 있는 안개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는지…….&lt;br /&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lt;font color=&quot;#003366&quot;&gt;&lt;font color=&quot;#993366&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54432784.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2&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font&gt;&lt;/p&gt;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&lt;BR&gt;
&amp;lt;2009. 11. 1.&amp;gt;&lt;BR&gt;
&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02000488.jpg&quot; width=&quot;70&quot; height=&quot;41&quot; alt=&quot;&quot;/&gt;&lt;/div&gt;&lt;/font&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함께 읽기</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Sun, 01 Nov 2009 05:44:49 GMT</pubDate>
		</item>
		<item>
			<title>외고와 이완용</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3939</link>
			<description>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42434083.jpg&quot; width=&quot;486&quot; height=&quot;587&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다음 아고라에 오른 한 &lt;/font&gt;&lt;a href=&quot;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mp;amp;articleId=104803&amp;amp;RIGHT_DEBATE=R5&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외고생의 글&lt;/font&gt;&lt;/a&gt;&lt;font color=&quot;#003366&quot;&gt;이 화제다. 자신을 한영외고 2학년이라는 이 학생은 ‘외고 폐지에 찬성하며, 외고를 자율고나 자사고, 특성화고로 전환시키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의견을 아고라에 올렸다. 또 이 학생은 외고가 ‘또 다른 이완용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lt;BR&gt;
&lt;BR&gt;
말도 많은 외고, 그 과실을 누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학생이 뜻밖의 주장을 하는 데 대해서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학생의 주장이 나름대로의 경험과 고민의 결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학생은 외국어고등학교에 대해 명쾌하게 다음과 같이 규정해 버린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사실 우리나라에 외국어 고등학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고라는 간판을 걸고, 마치 기업처럼 '외고'라는 이름을 브랜드로 활용하여 만든 입시전문학교는 있을지 몰라도 말입니다. &lt;BR&gt;
&lt;BR&gt;
- '외고'는 현재 한국에서 '입시 명문' 또는 '사회적 성공의 발판', '국영수 문제 풀이 잘하는 애들 집합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lt;BR&gt;
&lt;BR&gt;
- '좋은 학교', 그러니까 국영수 점수 좋은 애들 다니는 학교에 다니게 되면 분명히 그 효과를 통해 개개인의 출세, 학벌의 획득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우리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의 출세와 사회의 발전이 반비례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바보가 되었습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외고가 그 본래 목적을 잃고 명문대에 가기 위한 예비학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나는 학생의 의견 가운데 ‘이완용 양산론’에 흥미로웠다. 그는 역사적으로 1%가 99%를 짓밟은 사례는 많다면서 ‘수월성의 틀에 갇힌 교육’은 또 다른 이완용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넘어갈 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이완용을 기억하십니까? 이완용은 당시 소위 말하는 1%의 인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완용이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과 함께 살던 민족을 팔아먹었습니다. 한국 민중의 이익은 싸그리 짓밟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편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오늘날 강조되는, 수월성의 틀에 갇힌 교육에서는 또 다른 이완용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단 이완용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1%가 99%를 짓밟은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lt;BR&gt;
&lt;/font&gt;&lt;BR&gt;
이완용(李完用, 1858∼1926)은 알다시피 경술국치(1910)의 주역이었던 매국노다. 그는 관계로 진출하여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운 후 미국통의 외교관리가 되었다. 뒤에 아관파천, 러일전쟁 등을 계기로 친러파·친일파로 변신한 후 내각 총리대신이 되어 나라를 팔아먹었다. 그는 그 매국의 상급으로 작위를 얻었고 중추원 고문으로 영화를 누렸다.&lt;BR&gt;
&lt;BR&gt;
학생의 주장대로 이완용은 ‘1%의 인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1882년에 과거에 급제한 후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고, 1887년과 1888년에 각각 외교관으로 미국을 다녀왔고 1895년에 학부대신이 되었다. 관계에 진출한 지 13년 만에 장관이 되었으니 그는 출세가도를 달린 엘리트 관료였던 셈이다.&lt;BR&gt;
&lt;BR&gt;
초임 시절 이래 나는 자주 ‘이완용’을 언급하곤 했다. 교육의 목적이 단순히 지적으로 능력 있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데에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국어 교과서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글이 실려 있던 시절이었다. 내 얘기는 그랬던 것 같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공부? 물론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부는 이완용도 잘 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고작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일이었지 않은가.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관점, 생각을 갖고 사는 일이다.&lt;BR&gt;
&lt;/fon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72736867.jpg&quot; width=&quot;150&quot; height=&quot;20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매국노 이완용&lt;/p&gt;&lt;/div&gt;아이들이 내 얘기에 얼마나 공감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도 입시교육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보충수업과 야간자습으로 날을 새웠다. 그러나 나는 수업 가운데서 드문드문 그런 얘기를 곁들이곤 했는데 아이들도 그런 시간을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lt;BR&gt;
&lt;BR&gt;
요즘은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속뜻을 자주 생각하곤 한다. 이로움 앞에서 의로움을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로움은 가깝고 의로움은 멀기 때문이다. 학력이 최고의 가치처럼 평가되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걸 강조하는 것도 쉽지 않다. &lt;BR&gt;
&lt;BR&gt;
그러나 세상에는 ‘내게 이로운가 해로운가’가 아니라 ‘옳은가 그른가’로 판단해야 할 일이 좀 많은가. 그리고 그걸 잊지 않고 사는 것도 민주시민의 책무이지 않겠는가. 나는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게 ‘점수’고 ‘이해’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찌 그게 아이들만의 문제이겠는가.&lt;BR&gt;
&lt;BR&gt;
아이들이 기를 쓰고 공부하는 것은 거기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적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직업을 갖는 출발점이라는 걸,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기득권층에 편입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 온 게 세상이고, 우리 사회인 것이다.&lt;BR&gt;
&lt;BR&gt;
명문대에 학생을 보낸 학교가 현수막을 걸어 그것을 자랑하고, 얼굴도 모르는 10년 전의 졸업생이 사시나 행시를 통과했다고 현수막을 거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명문대 진학과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합격이 그 개인의 영예와 입신 외에 학교나 지역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31864501.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6&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헌재의 절묘한 판결 이후…. ⓒ 오마이뉴스 유성호&lt;/p&gt;&lt;/div&gt;
&lt;BR&gt;
사회의 엘리트 계급으로 성장한, 자신의 계급과 강대국의 이해를 대변하려 하는 ‘머리 까맣고 한국말을 너무 잘 하는 미국인’ 이 좀 숱한가 말이다. 국민의 건강보다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체의 이해가 더 중요하다며 관련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미국 쇠고기 홍보(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에 우리 축산기금 20여 억 원을 편법 지출한 농수산식품부의 고위 관료들은 정말 한국 정부의 관료가 맞기나 한 걸까.&lt;BR&gt;
&lt;BR&gt;
사회의 1%라니까 생각나는 이들이 또 있다. 대리투표나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긴 건 위법이나 법의 효력은 인정한다는 절묘(?)한 줄타기를 한 헌법재판관, 그들의 머리도 썩 좋다. 그들은 1% 정도가 아니라 0.001%에 해당하는 엘리트답게 관습헌법이란 정체불명의 논리를 끌고 와서 행정수도법 위헌 결정을 한 그 사람들 아닌가.&lt;BR&gt;
&lt;BR&gt;
용산참사의 선고 공판에서 ‘법과 목적의 정당성’ 운운 하면서 철거민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도 우리 사회의 1%에 포함되는 이들이다. ‘검찰이 써 준 원고를 읽는 것 같았다.’는 유족들의 감회 앞에 웃을 수도 없는 이 목마름, 분노와 나락 같은 무력감을 어쩐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 1%가 아니라 99%에 속해 있기 때문만일까.&lt;BR&gt;
&lt;BR&gt;
‘머리 좋은 게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얘기를 떠올리는 까닭은 그래서다. 외고의 수혜자이면서 그 진실을 바라본 위 학생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유도 같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자아 실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업을 갖더라도 적어도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교과서를 편다. &amp;nbsp;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&lt;BR&gt;
&amp;lt;2009. 10. 30.&amp;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55102843.jpg&quot; width=&quot;70&quot; height=&quot;41&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gt;&lt;/font&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4618228&quot;&gt;&lt;/embed&gt;&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길위에서</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Fri, 30 Oct 2009 03:31:18 GMT</pubDate>
		</item>
		<item>
			<title>무제</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3854</link>
			<description>&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67808925.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46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한겨레 그림판(2009. 10. 29) ⓒ 장봉군&lt;/p&gt;&lt;/div&gt;
&lt;BR&gt;
&lt;center&gt;&lt;div id=&quot;jukeBox2538542Div&quot; style=&quot;width:250px; height:27px;&quot;&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writeCode(getEmbedCode('http://blog.ohmynews.com/script/jukebox/flash/main.swf','100%','100%','jukeBox2538542Flash','#FFFFFF',&quot;sounds=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70395247.mp3*!%EC%9D%BC%EC%96%B4%EB%82%98%EB%9D%BC%2C+%EC%97%B4%EC%82%AC%EC%97%AC_*&amp;amp;autoplay=0&amp;amp;visible=1&amp;amp;id=2538542&quot;,&quot;false&quot;),&quot;jukeBox2538542Div&quot;)&lt;/script&gt;&lt;/div&gt;&lt;/cente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333333&quot;&gt;&lt;BR&gt;
&lt;/fon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정태춘 &amp;lt;일어나라 열사여&amp;gt;&lt;BR&gt;
&lt;/font&gt;&lt;/div&gt;&lt;BR&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때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때가 많은 세상이다. 서민대중들은 웅변이 침묵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할 때는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내 분노와 절망의 언사는 고작 주변만 잠깐 밝히다 스러지는 불빛 같은 것…….&lt;BR&gt;
&lt;BR&gt;
주변을 둘러봐도 그 불빛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몇몇 이웃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은 분주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거기 외치는 분노와 절규는 메아리 없이 사라진다. 한 사람의 고통의 다른 사람이 누리고 있는 행복의 한 귀퉁이도 건드리지 못하는 이 완전한 격리와 단절.&lt;BR&gt;
&lt;BR&gt;
용산 참사 최종 선고 이야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는 철거민 9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담당 변호인은 ‘정치적 재판’이라 규정했고, 유족들은 재판부의 판결문을 두고 “검찰이 준 원고를 읽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원망스럽다.”고도 했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93366&quot;&gt;- 정치 재판은 5공과 6공 때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lt;BR&gt;
- 20년 후엔 무죄가 입증되리라 믿는다.&lt;BR&gt;
&lt;/font&gt;&lt;BR&gt;
담당 변호인의 얘기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퇴행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한꺼번에 수십 년을 거슬러 오른 타임머신 속에 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부끄럽다.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방법으로도 나라와 내가 맺은 이 '관계'를 파기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lt;BR&gt;
&lt;BR&gt;
정태춘의 노래를 듣는다. 그들 내외는 노래한 지 서른돌이 되었다고 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었다. 정권도 바뀌고, 민간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스무 해가 가까워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철지난 '90년대의 절규'는 왜 이렇게 마음을 격동케 하는가. &lt;BR&gt;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lt;2009. 10. 29.&amp;gt;&lt;BR&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09204276.jpg&quot; width=&quot;70&quot; height=&quot;41&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gt;&lt;/font&gt;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&lt;BR&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4606861&quot;&gt;&lt;/embed&gt;&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길위에서</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Thu, 29 Oct 2009 03:35:10 GMT</pubDate>
		</item>
		<item>
			<title>여기 알아? 동네 사람들이 벽 속에 있어</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3639</link>
			<description>&lt;p&gt;&lt;font color=&quot;#003366&quot;&gt;&lt;strong&gt;&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 안동 신세동 길섶 미술로(路)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lt;br /&gt;
&lt;/font&gt;&lt;/strong&gt;&lt;BR&gt;
09.10.25 11:19 ㅣ최종 업데이트 09.10.25 11:19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장호철 (q9447) &lt;/font&gt;&lt;/p&gt;&lt;BR&gt;
&lt;p&gt;&lt;font color=&quot;#003366&quot;&gt;&lt;br /&gt;
흔히들 '가난'은 불편한 것일 뿐 부끄러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책임으로 물을 수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 등 구조에서 비롯된 게 가난이니 이 명제에 잘못은 없다. 그러나 사실 가난이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lt;BR&gt;
&lt;BR&gt;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진다'[인빈지단(人貧智短)]'고 한 까닭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삶이 고단하면 지켜야 할 예의범절도, 사람 노릇도 쉽지 않아진다. 궁핍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한 가정의 삶을 옥죄는 질곡인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 size=&quot;3&quot;&gt;&lt;strong&gt;&lt;font face=&quot;dotum&quot;&gt;가난하다고 아름다움을 모르겠는가&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17690392.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산기슭에 축대 위에 수놓아진 꽃과 반딧불 &lt;/p&gt;&lt;/div&gt;
&lt;/strong&gt;&lt;/font&gt;&lt;BR&gt;
가난한 이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넉넉한 이들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식구들끼리의 단란한 외식은 물론이고, 집안의 대소사 참석도 쉽지 않다. 여유 가운데서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도 멀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문화를 누릴 안목이나 능력이 뒤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lt;BR&gt;
&lt;BR&gt;
아름다움과 기쁨, 진리와 정의를 이해하고 인식하는데 빈천은 무관한 것이다. 오히려 가난한 삶을 통해서 터득한 결핍에 대한 깨달음이 어쩌면 아름다움의 본질을 더 쉽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만드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난과 결핍이 대상을 소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다는 건 정녕 역설적이지 않은가.&lt;BR&gt;
&lt;BR&gt;
'가난'과 '그림'의 상관관계를 아주 소박하게 이해하게 해 준 곳은 안동의 달동네 성진골이다. 안동시 신세동 성진골은 안동시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외진 달동네다. 영남산 자락에 성큼 들어선 가톨릭상지대학이 굽어보고 있는 산기슭에 90여 호의 허술한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lt;BR&gt;
&lt;BR&gt;
이 외진 달동네가 '산자락 미술관'으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유월 초순부터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전국 공모('2009 마을 미술 프로젝트')에서 선정된 '연어와 첫비'가 시행한 이 사업은 '안동 신세동 길섶 미술로(路) 꾸미기'다. &lt;BR&gt;
&lt;BR&gt;
이 사업은 신세동 성진골 일대와 동부초등학교 담장 등, 350m의 골목길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동부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성진골로 오르는 밋밋한 골목길 주변은 마을과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벽화 15점, 입체부조 8점, 기타소품 10점 등이 설치된 아름다운 '골목길 미술관'으로 바뀐 것이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다닥다닥 붙은 허술한 단독주택들, 옷을 입다&lt;BR&gt;
&lt;/strong&gt;&lt;/font&gt;&lt;BR&gt;
소문이 아직 많이 나지 않은 모양인지 따로 이 골목길을 찾아온 이는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지역 사람들은 이런 류의 소식에 무심할 수도 있겠다. 시골사람들이고, 그들의 호기심은 쉬 불이 붙지 않으니까 말이다. 동부초등학교 앞에 차를 대는데 앞 건물의 옆면에서 할머니 한 분과 아이 둘이 정겹게 웃으며 방문객을 맞는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58748630.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성진골 들머리의 벽화 주인공은 '복덩이 할머니'와 그이의 손자와 친구다. &lt;/p&gt;&lt;/div&gt;
&lt;BR&gt;
마을 사람들로부터 '복덩이 할머니'라고 불린다는 이 벽화의 주인공은 김화순씨. 활짝 웃고 있는 남녀 어린이는 그이의 손자인 상현이와 그의 친구 민서다. 옥탑방을 둔 이 삼층 건물의 벽면에 실린 이들 세 사람의 미소는 보는 것만으로 정겹다. 그것은 마치 낯선 방문객을 꼼짝없이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무슨 비밀 병기 같다.&lt;BR&gt;
&lt;BR&gt;
이 건물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나타나는 밋밋한 오르막길이 바로 '성진길'이다. 골목 어귀 오른쪽에 선 4층 건물의 전면에는 국보 제16호 안동 신세동 7층 전탑의 모습이 마치 실루엣처럼 떠 있고, 그 옆 지붕 낮은 집의 벽면에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lt;BR&gt;
&lt;BR&gt;
일상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풍경인데도 낮은 지붕이 어깨를 부딪고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의 거친 벽면에 그려진 그림이 주는 울림은 꽤 묘하다. 진달래가 화려하게 그려진 양옥집 벽면이나 해바라기 꽃잎이 커다랗게 그려놓은 콘크리트 담벼락은 평등해 보인다. 거기에 빈부의 격차 따위가 낄 여지는 없는 것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41578174.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동부초등 담벼락은 교사와 아이들 작품이다. &lt;/p&gt;&lt;/div&gt;
&lt;BR&gt;
이어서 나타나는 그림은 동부초등학교 담장에 그려진 벽화다. 대충 30여m에 이르는 벽돌담에다 그림을 그린 건 이 학교 교사와 학생 등 70여 명이다. 아주 단순한 빛깔과 도형으로 이루어진 이 벽화는 골목을 찾는 방문객의 마지막 경계심마저 허물어 버린다.&lt;BR&gt;
&lt;BR&gt;
오케스트라 앞의 관람객의 실루엣이 있는 담벼락 건너편 언덕 위에는 연주자들의 실루엣이 희미하다. 포도나무가 서 있는 지붕 낮은 집의 담장에는 까맣게 익은 포도송이가 그려졌고, 높다란 담장 위에는 '줄 타는 고양이'가 위태롭게 달렸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06793688.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멋쟁이 아저씨'의 집 담벼락에 그의 얼굴이 걸리었다. &lt;/p&gt;&lt;/div&gt;
&lt;BR&gt;
마을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이가 사는 집 담벽에는 미소 띤 이 '멋쟁이 아저씨'의 모습이 커다랗게 그려졌다. 언덕 아래 쓰레기 통 주변 벽에는 정교한 나비 그림이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축대 위에는 한쪽 다리를 든 '오줌 누는 개' 조형물이 재미있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75954525.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축대 위 담벼락에 피어난 자작나무 숲 &lt;/p&gt;&lt;/div&gt;
&lt;BR&gt;
골목 끝에 가까운 산기슭의 축대 위 블록담에 그려진 자작나무가 가장 마음에 든다. 옅은 중간색의 질감이 부드러웠고, 마치 진짜 숲처럼 푸근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길 건너편의 블록으로 쌓아올린 화장실인 듯한 구조물에도 자작나무는 싱싱했다. 오른편 언덕 위의 엉성한 블록담에 칠한 빨강, 노랑, 초록의 페인트 색감도 산뜻했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여러 번 오르내려도 전혀 지겹지 않은 길&lt;BR&gt;
&lt;/strong&gt;&lt;/font&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04875709.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축대 위 허술한 블록담장도 화려한 페인트칠로 살아났다. &lt;/p&gt;&lt;/div&gt;
&lt;BR&gt;
&lt;BR&gt;
사진기를 든 방문객 몇이 미소 지으며 골목을 오르내렸다. 오후 4시가 넘으면서 햇빛이 좀 불투명해졌다. 나는 여러 번 골목을 오르내렸지만 지겹지 않았고, 오르내릴 때마다 만나는 풍경도 새로웠다. 조금 전에 눈에 띄지 않던 풍경들이 오롯이 눈에 들어올 때의 느낌은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lt;BR&gt;
&lt;BR&gt;
구부정한 골목길을 오르면서 만나는 그림과 조형물은 아주 친근하게 이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삶에 아주 녹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림을 그린 벽면마다 칠을 새로 해 깨끗해 뵌다. 그러나 벽 너머나 담장 너머의 집과 벽은 허술하고 오래된 것들이다. &lt;BR&gt;
&lt;BR&gt;
옹색하고 초라한 동네 풍경과 화사한 원색의 페인트가 주는 질감과 조화는 생뚱맞을 듯하다. 그러나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도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간간이 오가는 마을사람들의 정겨운 얼굴 탓일까. 사진기를 들고 동네를 기웃거리는 방문객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lt;BR&gt;
&lt;BR&gt;
그들은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는 방문객의 질문에 아주 친절히 화답했으며 드러내 놓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꿈자리가 사납다며 벽화를 거부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주민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lt;BR&gt;
&lt;BR&gt;
결국 이 산자락 미술관은 '미술로 가꾸기' 사업에 참여한 전문작가, 안동대 미대생과 대학원생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고민한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었다. 마을사람들의 자부심과 긍지는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주인의식이라 하여도 좋을 터였다.&lt;BR&gt;
&lt;BR&gt;
&lt;font face=&quot;dotum&quot; size=&quot;3&quot;&gt;&lt;strong&gt;문화 소외지역에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신세동 미술로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94588041.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448&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개 조형물이 안동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lt;/p&gt;&lt;/div&gt;&lt;/strong&gt;&lt;/font&gt;
&lt;BR&gt;
나는 골목 오른쪽 언덕 위에 높다란 축대 위에서 마을사람들 몇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곁에는 하얀 개 한 마리가 안동 시가를 굽어보고 있었다. 곳곳에 도기로 만든 조형물 중의 하나였다. &lt;BR&gt;
&lt;BR&gt;
그들은 앞 다투어 지난 몇 달 간의 작업을 추억하면서 자신들의 마을이 방문객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궁금해 하였다. 나는 '마을이 정말 멋있다, 여기서 당분간 살아 봤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lt;BR&gt;
&lt;BR&gt;
어느 덧 해가 한 뼘이나 짧아졌다. 금세 어둠이 내릴 것 같은 골목길을 천천히 빠져 나오는데, 막 하교하는 듯한 중고생들을 만났다. &lt;BR&gt;
&lt;BR&gt;
사진기를 든 방문객을 바라보는 소년들의 얼굴에도 자부심이 묻어나는 듯했다. 나는 이 마을에서 지난 몇 달 간 베풀어진 사업이 단순한 환경 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lt;BR&gt;
&lt;BR&gt;
그것은 '풍요 속의 소외지역'인 마을을 '자연스러운 소통의 공간'으로 가꾸고자 한 사업 목적이 이 마을에서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뜻일 터이다. '먹기 살기 바빠서' 주변의 풍경에 무심했던 마을 사람들이 이 사업을 함께 하면서 얻은 것은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였고, 아름다움과 삶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아니었을까.&lt;BR&gt;
&lt;BR&gt;
성진길을 걸어나와 차에 오르자 맨 처음 나를 반겨주었던 벽화 속의 인물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막 떨어지기 시작한 해를 마주보고 그림 속의 마을사람들의 미소는 훨씬 더 친근하고 그윽해 보였다. 벽화 속 주인공들은 오래 그 벽화 속의 시간을 기억하면서 늙어가고 또 자랄 거였다. 시간과 세월의 순환 속에 보태질 이 마을의 역사를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승용차의 시동을 걸었다.&lt;BR&gt;
&lt;BR&gt;
&lt;div id=&quot;Gallery2536398&quot;&gt;&lt;/div&gt;&lt;script type=&quot;text/javascript&quot;&gt;var Gallery2536398 = new TTGallery(&quot;Gallery2536398&quot;);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05668025.jpg&quot;, &quot;&quot;, 500, 334);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19672504.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59809138.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64675269.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15931411.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92082270.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28889605.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409876790.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31022430.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268681897.jpg&quot;, &quot;&quot;, 500, 335);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009566028.jpg&quot;, &quot;&quot;, 267, 400);Gallery2536398.appendImage(&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56516627.jpg&quot;, &quot;&quot;, 267, 400);Gallery2536398.show();&lt;/script&gt;
&lt;BR&gt;
&lt;/fon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a href=&quot;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44609&amp;amp;PAGE_CD=N0000&amp;amp;BLCK_NO=3&amp;amp;CMPT_CD=M0009&quot;&gt;기사로 보기&lt;/a&gt;&lt;/font&gt;&lt;/p&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안동 이야기</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Sun, 25 Oct 2009 23:50:30 GMT</pubDate>
		</item>
		<item>
			<title>아닌 건 아닌 거다</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3518</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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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gt;
&lt;BR&gt;
&lt;/div&gt;&lt;BR&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한나라당 미디어법 반대 광고’가 방송협회의 심의에서 보류된 가운데, 언론노조는 &amp;lt;미디어법 TV 광고&amp;gt;를 동영상 파일로 전 국민에게 전격 공개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광고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든 것으로 공개된 영상은 애초 언론노조가 방송협회에 제출한 파일 중 하나라고 한다.&lt;BR&gt;
&lt;BR&gt;
구태여 설명을 붙이는 건 사족이다. 대통령은 ‘장악할 수도, 의도도 없다’고 했지만 방송은 바야흐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무한 독주를 시작하고 있는 모양새다. 바보가 된 TV를 안 볼 자유만큼 소중한 것은 보아야 할 거는 제대로 챙겨보는 일이다.&lt;BR&gt;
&lt;BR&gt;
&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lt;2009. 10. 23.&amp;gt; &lt;BR&gt;
&lt;/div&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00990711.jpg&quot; width=&quot;70&quot; height=&quot;41&quot; alt=&quot;&quot;/&gt;&lt;/div&gt;&lt;BR&gt;
&lt;/font&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함께 읽기</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Fri, 23 Oct 2009 03:49:04 GMT</pubDate>
		</item>
		<item>
			<title>야자 없는 일주일, 아이들은 즐겁지만 않다</title>
			<link>http://blog.ohmynews.com/q9447/253412</link>
			<description>&lt;p&gt;&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03842358.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작년 우리 반 아이들. 이제 수능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lt;/p&gt;&lt;/div&gt;
&lt;BR&gt;
&lt;font color=&quot;#003366&quot;&gt;아이들은 요즘 뭔가 허전한 모양이다. 야간자습을 쉰 지 벌써 나흘째다. 이는 순전히, 찬바람이 돌면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신종 플루’ 덕분이다. 2학년에서 유독 환자가 속출하면서 마땅히 방법을 찾지 못한 학교는 지난 주 금요일부터 당분간 야자를 쉬기로 결정한 것이다. &lt;BR&gt;
&lt;BR&gt;
처음 앞 반에서 시작된 ‘발열’은 중앙통로를 건너 우리 반까지 왔다. 우리 반은 현재 세 명이 확진, 1명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들은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을 마치는 오후 6시면 하교한다. 저녁도 학교 급식소에서 먹고 7시부터 10시까지 진행하던 야간 자율학습 대신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귀가하는 것이다.&lt;BR&gt;
&lt;BR&gt;
아이들은 최소 일주일 간 야자를 쉰다는 발표에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 얼굴이 모처럼 활짝 피었다. 교실을 빠져 나가면서도 아이들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좀 요령부득의 표정이 되어간다. 다소 과장해 말하면 일종의 정신적 '공황' 상태다. &lt;BR&gt;
&lt;BR&gt;
아이들은 갑자기 주어진 시간 앞에 좀 당황스러워 보인다. 수업을 마치고 초저녁에 집에 가는 일도 익숙하지 않고, 저녁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게 어쩐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은 느낌이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느슨해져서인가,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도 전보다 늘었다. &lt;BR&gt;
&lt;BR&gt;
하기야 지난해 3월 입학식을 치르고 이틀째인가 사흘째부터 시작한 야자다. 한 학기에 두 번 있는 정기 시험과 모의고사를 치를 때만 야자 없이 귀가할 뿐이니 아이들이 집에 가면서 집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한다는 건 우스개만은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치지 않는 야자는 겨울방학을 앞두고서야 간신히 끝나니 아이들에게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건 엄연한 '일상'인 것이다.&lt;BR&gt;
&lt;BR&gt;
야자를 하지 않으니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보면 요 꾀가 말짱한 아이들은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처음 발표를 들었을 때와 같이 화끈한 반응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좋아요, 그저 그래요……. 아이들 대답은 정말 뜨뜻미지근하다. 우리 반에 백지 몇 장을 건네주었더니 아이들은 거기다 자기 생각을 드문드문 써 놓았다.&lt;BR&gt;
&lt;BR&gt;
&lt;/p&gt;&lt;BR&gt;
&lt;center&gt;&lt;div class='box_entry' style='clear:both;width:500px;'&gt;&lt;div class='box_entrytitle'&gt;&lt;strong&gt;야자 없는 일주일, 이야기하기&lt;/strong&gt;&lt;/div&gt;&lt;div class='box_entrycontent'&gt;-일찍 집에 가니까 너무 편하다.&lt;BR&gt;
 아침에도 덜 피곤하고~~&lt;BR&gt;
&lt;BR&gt;
-피곤하지도 않고&lt;BR&gt;
 집에 빨리 갈 수 있으니까&lt;BR&gt;
 수업 듣는 것도 힘겹지 않다.&lt;BR&gt;
 하지만 집에 가면 비교적&lt;BR&gt;
 공부를 덜 하게 된다.&lt;BR&gt;
 일주일에 4번만 야자 했으면 좋겠다.&lt;BR&gt;
&lt;BR&gt;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거 같다.&lt;BR&gt;
 덜 피곤하다는 점에선 좋고,&lt;BR&gt;
 야자를 할 때보다 풀어지는 것 같아서&lt;BR&gt;
 그 점은 안 좋은 거 같다.&lt;BR&gt;
 그치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건&lt;BR&gt;
 자기 몫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lt;BR&gt;
 상관없는 거 같다.&lt;BR&gt;
 그래도 매일보단 일주일에 몇 변 정도로 하면&lt;BR&gt;
 몸도 덜 피곤하고 적당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lt;BR&gt;
&lt;BR&gt;
-공부가 안 된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지금은&lt;BR&gt;
 적응이 안 돼서 그런 거다. &lt;BR&gt;
 나중에 적응되면 자기 스스로 시간 조절해서 &lt;BR&gt;
 공부를 더욱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lt;BR&gt;
 지금 좋아용 ~ ♡&lt;BR&gt;
&lt;BR&gt;
-좋지만 아무래도 야자를 하는 게 더 편하다.&lt;BR&gt;
 하다가 안 하니까 이상하고, 공부를 덜 한다.&lt;BR&gt;
 야자를 하는 게 좋다.&lt;BR&gt;
&lt;BR&gt;
-내 생각에 야자는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것 같다.&lt;BR&gt;
 야자를 할 때는 집에 가고 싶었는데&lt;BR&gt;
 야자를 안 하니까 오히려 학교에 있고 싶어진다.&lt;BR&gt;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어서&lt;BR&gt;
 좋았지만 공부는 안 하는 것 같다.&lt;BR&gt;
 /&lt;/div&gt;&lt;/div&gt;&lt;/center&gt;&lt;BR&gt;
&lt;BR&gt;
‘편하고 좋다’에서 ‘하는 게 좋다’는 의견까지 여럿이지만, 이구동성으로 합창하는 것은 ‘편한 대신 공부를 덜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편함’을 마냥 즐길 수 없는 ‘불안’이 희미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어쩐지 이 주어진 자유가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lt;BR&gt;
&lt;BR&gt;
아이들은 정답을 알고 있다. 그걸 ‘적응’의 문제로 바라보거나, ‘자기 스스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리라’고 예측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건 자기 몫’이라는 야무진 생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느닷없이 주어진 이 넘치는 시간 앞에서 자신을 새삼스레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lt;BR&gt;
&lt;BR&gt;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전히 긴가민가한 표정이다. 공부해야 한다는 당위는 인식하고 있지만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들은 이 ‘반강제의 면학’에 길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 놓인 아이들은 노는 걸 즐기기보다는 뭔지 모를 불안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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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반강제의 야자에 참여하지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야자를 제대로 하지 않고 분위기를 해치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벌은 ‘자습에서 제외하고 집에 보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한다. 학습 효율 따위와는 상관없이 친구들과 함께 책상 앞을 떠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안심한다. 아니, 안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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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은 학부모도 마찬가진 것 같다.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를 떠나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학부모들은 안심한다. 이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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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305201220.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 빈 교실. 그러나 별로 정돈되지 않았다. 몇 시간 후면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까닭이다.&lt;/p&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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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이들은 연민 없이 바라볼 수 없다. 단지 매일 심야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비평준화 지역의 선발집단인 아이들은 자기 통제를 잘 하는 편이다.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공부하느냐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너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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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다. 기를 쓰고 책에다 코를 박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 마음이 아픈 것은.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까르르 넘어간다는 여고생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보충수업과 야간자습에 지쳐서 귀가하고, 쉬는 시간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책상 위에 엎드려 쪽잠을 빠지곤 하는 것이다.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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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에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의 주체적 의지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야자에 자신을 우겨넣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그것을 자기 시간을 만들 것을 주문했지만, 정작 내 조언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나는 내 목소리를 좀 공허하게 들었던 것 같다.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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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서둘러 빠져 나간 빈 교실을 둘러보면서 나는 수능시험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착잡해지는 것은 3학년만이 아니다. 2학년들도 서둘러 수험생이 되어 버린 듯한 초조와 불안감에 시달리는 10월인 것이다. 이 피 끓는 젊음이 빠져나갈 터널은 여전히 깊고 멀기만 하다.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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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lt;2009. 10. 21.&amp;gt;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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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537/1184745410.jpg&quot; width=&quot;70&quot; height=&quot;41&quot; alt=&quot;&quot;/&gt;&lt;/div&gt;&lt;/div&gt;&lt;/font&gt;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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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4535796&quot;&gt;&lt;/embed&gt;&lt;/div&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길위에서</category>
			<author>q9447 (낮달)</author>
			<pubDate>Wed, 21 Oct 2009 13:04:0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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