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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의 사랑 나의 신부</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link>
		<description>'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이명세 감독이 연출한 영화제목입니다. 제가 10번 이상 본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누리꾼 여러분들이 바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21 May 2009 06:55:50 GMT</pubDate>
		<item>
			<title>반도체 클린룸은 진짜 클린(clean)할까?</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79528</link>
			<description>&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lt;strong&gt;반도체 클린룸은 진짜 클린(clean)할까?&lt;/strong&gt;&lt;/font&gt; &lt;BR&gt;
&lt;strong&gt;[삼성과 싸우는 '다윗들'(4)] 백혈병 12명 확인... 반도체노동자 건강권 이슈화&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405694313.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53&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지난해 11월 20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정문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가 출범했다. 대책위는 처음으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문제를 제기했다. &lt;/p&gt;&lt;/div&gt;
&lt;BR&gt;
지난해 11월 20일 수원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정문에서는 한 의미있는 단체의 출범식이 열렸다. 건강한 노동세상과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경기본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이 주축이 돼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가 출범한 것. &lt;BR&gt;
&lt;BR&gt;
대책위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문제를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대책위는 &quot;그동안 '세계화시대의 첨단산업', '국가경제의 일등공신' 등으로 미화되어온 반도체산업의 그늘 아래에는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는 유해물질의 세계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quot;고 밝혔다. &lt;BR&gt;
&lt;BR&gt;
최첨단 반도체산업의 상징인 '클린룸'(clean room, 먼지나 세균이 전혀 없는 방)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깨끗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lt;BR&gt;
&lt;BR&gt;
&lt;strong&gt;백혈병 피해자 12명 중 7명 사망... 반도체 노동자 건강에 '빨간불' &lt;BR&gt;
&lt;/strong&gt;&lt;BR&gt;
대책위 출범의 뒤에는 한 삼성반도체 여성노동자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했던 황유미씨(사망 당시 23세)가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가 지난해 3월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 &lt;BR&gt;
&lt;BR&gt;
특히 황씨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중 같은 공장에서 근무했던 황민웅씨(2005년 8월)와 이숙영씨(2006년 6월)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 '백혈병 집단 발병' 양상까지 보였다. &lt;BR&gt;
&lt;BR&gt;
황유미·황민웅·이숙영 등을 포함해 대책위가 출범할 당시에 확인된 백혈병 피해자만 6명에 이르렀다. 이들 피해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황유미(2003년 10월 입사)씨와 이숙영(2003년 10월 입사)씨는 기흥공장 3라인 디퓨전(diffusion) 공정에서 함께 근무했다. 또한 황민웅씨와 이상훈씨는 기흥공장의 설비엔지니어였다. 이상훈씨는 97년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lt;BR&gt;
&lt;BR&gt;
이 밖에도 회사측에서 사무관리직 노동자라고 얘기하는 2명이 더 있다. 한명은 완치되어 복귀해 현재 근무하고 있고, 다른 한명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lt;BR&gt;
&lt;BR&gt;
하지만 피해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책위가 출범하고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추가 피해자들이 속속 드러났다. 대책위는 출범 이후 6명을 더 확인함으로써 백혈병 피해자수도 총 12명으로 늘어났다. 12명 중 7명은 사망했고, 나머지는 투병중이다. &lt;BR&gt;
&lt;BR&gt;
추가로 확인된 피해자들 중 4명은 기흥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던 여성노동자들이다. 이 중 3명은 각각 95년, 2004년, 2005년 사망했다. 특히 주교철씨는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근무했던 기흥공장 디퓨전 공정을 관리했던 부장출신이다. 83년에 입사한 그는 지난 2006년 3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현재 투병중이다. 천안공장 검수공정에서 일했던 박지연씨도 2007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현재 투병중이다. &lt;BR&gt;
&lt;BR&gt;
백혈병 피해자만 있는 게 아니다. 피부암, 흑생종, 유산, 불임, 생리불순, 빈혈, 탈모, 혈액이상 등을 호소하는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60165495.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4&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지난해 3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와 그의 부친 황상기씨. 황유미씨는 삼성반도체 입사 1년 8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lt;/p&gt;&lt;/div&gt;
&lt;strong&gt;&lt;BR&gt;
백혈병의 원인, 화학물질일까? 방사선일까?&lt;/strong&gt;&lt;BR&gt;
&lt;BR&gt;
하지만 현재까지 백혈병이 반도체산업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공개된 적이 없다. 기업들이 '기밀사항'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환경부에서 지난 200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산업에 모두 97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유독성 물질로 알려진 것은 20종에 이른다. 또 산업자원부의 2003년 조사자료에는 유독성 물질이 40종 이상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lt;BR&gt;
&lt;BR&gt;
세계적인 기업인 IBM에서 근무한 노동자들 중 수백명이 암과 백혈병에 걸린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질병들은 현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차드 클랩 박사(미 보스턴대)가 IBM 사망자료를 분석한 결과, IBM의 암 발생률이 전국 평균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뇌암은 4배, 다발성 골수종은 6배, 유방암은 2배나 높다.&lt;BR&gt;
&lt;BR&gt;
황유미씨 유족은 지난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당시 제출된 황씨 재해경위서에는 &quot;황씨는 적절한 보호장구 없이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다&quot;고 적혀 있다. &lt;BR&gt;
&lt;BR&gt;
&quot;황유미씨와 이숙영씨는 6인치 웨이퍼를 수동으로 유해물질에 넣었다 뺐다 하는 작업을 했다. 방독기능이 없는 천 마스크를 착용했을 뿐이며, 전면형 고글은 턱쪽이 들리는 형태의 것으로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lt;BR&gt;
&lt;BR&gt;
또한 황유미씨 작업하던 공정의 국소배기장치는 작업자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황씨가 작업을 하기 위해 팔과 얼굴이 유해물질과 국소배기방치 가운데 위치하게 된다. 즉 국소배기장치의 흡기능력이 오히려 유해물질의 노출정도를 배가시킨 것이며, 그에 따라 노출수준이 굉장히 높았을 것이다.&quot;&lt;BR&gt;
&lt;BR&gt;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quot;백혈병에는 만성, 급성, 유전성 등이 있는데 급성 백혈병의 경우 환경적 요인이 크다&quot;며 &quot;백혈병의 대표적 원인으로 거론되는 벤젠 사용여부가 밝혀지면 산재 인정이 가능하겠지만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quot;고 말했다. &lt;BR&gt;
&lt;BR&gt;
벤젠 등 화학물질뿐만 아니라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도 백혈병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다. 방사선은 세포나 유전자를 파괴하거나 변형시킨다. 실제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는 고용량의 방사선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지바현의 반도체회사인 '다이헤이전자'에서는 노동자 3명이 방사능에 노출돼 수일간 입원하기도 했다.&lt;BR&gt;
&lt;BR&gt;
황유미씨의 부친은 &quot;유미가 방사선에 의해 백혈병에 걸린 게 확실한 것 같다&quot;고 말했다. 다만 그 근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quot;말 못할 사정이 있다&quot;며 자세한 답변을 피해 여운을 남겼다. &lt;BR&gt;
&lt;BR&gt;
이와 관련, 기흥공장에서 근무했던 한 엔지니어는 대책위에 &quot;방사선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이지가 휜다&quot;고 증언해 주목된다. &lt;BR&gt;
&lt;BR&gt;
&lt;strong&gt;노동부, 제대로 조사할까?... 삼성측 반도체 공정 개보수에 쏠리는 의혹의 시선&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210264672.jpg&quot; width=&quot;180&quot; height=&quot;236&quot; alt=&quot;&quot;/&gt;&lt;/div&gt;하지만 6명의 백혈병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삼성측은 &quot;개인의 질병일 뿐&quot;이라며 반도체산업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산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lt;BR&gt;
&lt;BR&gt;
산업안전공단은 지난해 9월 기흥공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고 현재 결과를 분석하고 있다. 또 노동부는 지난 1월 전국 13개 반도체 제조업체 노동자 건강실태 일제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주요 화학물질 현황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 현황 ▲백혈병 발생 현황 ▲건강진단 및 작업환경 측정 실시 현황 등이 포함된 일제조사는 현재 진행중이다.&lt;BR&gt;
&lt;BR&gt;
대책위는 노동부의 조사가 들어가기 전부터 &quot;퇴직자 및 이직자, 협력사원, 비정규직 등 전 사원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백혈병을 유발시킨 물질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전 공정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quot;고 촉구했다.&lt;BR&gt;
&lt;BR&gt;
하지만 대책위는 부실조사를 우려하고 있다. 대책위는 &quot;이번 조사를 위한 자료수집 방법이나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전무하다&quot;며 &quot;해당 노동청 감독관이 삼성직원에게 조사자료를 작성토록 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셈&quot;이라고 지적했다.&lt;BR&gt;
&lt;BR&gt;
결국 노동부가 회사측에서 제공한 자료에만 의존해 결국 삼성에 면죄부를 주는 조사가 될 수 있다는 것. 노동부가 대책위와의 면담을 거부하면서 &quot;우리나라 산업의 핵심산업인 반도체 회사의 입장과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quot;고 밝힌 점도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lt;BR&gt;
&lt;BR&gt;
이종란 노무사는 &quot;어떤 기법으로 조사를 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quot;며 &quot;회사측 자료에만 의존한다면 결국 회사측 주장을 입증해주는 조사가 될 것&quot;이라고 지적했다. &lt;BR&gt;
&lt;BR&gt;
그런 가운데 지난 14일 삼성전자가 반도체 라인공정 업그레이드에 1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반도체 라인을 개보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lt;BR&gt;
&lt;BR&gt;
이와 관련, 대책위측은 &quot;이번 반도체 라인 설비투자로 현재 '백혈병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기흥 등의 반도체 공장의 환경이 변해버릴 수 있다&quot;고 우려했다. &lt;BR&gt;
&lt;BR&gt;
&quot;삼성전자가 반도체 라인공정에 보완투자를 진행하면 가장 노후된 기흥공장의 라인에도 설비투자로 개보수가 진행될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됐던 '3라인'이 개보수로 변하게 되면 향후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quot;&lt;BR&gt;
&lt;BR&gt;
이종란 노무사는 &quot;그동안 삼성이 기존라인을 그대로 두고 신규라인을 구축해왔다는 점에서 이번에 발표된 개보수 공사는 매우 이례적&quot;이라며 &quot;백혈병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quot;이라고 말했다.&lt;BR&gt;
&lt;BR&gt;
*이 글은 지난해 3월에 작성한 것이라 최근 노동부 등에서 발표한 조사 결과는 반영하지 못했음.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88189333.jpg&quot; width=&quot;580&quot; height=&quot;386&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88189333.jpg')&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은 최첨단 반도체산업의 그늘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lt;/p&gt;&lt;/div&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삼성과 싸우는 다윗들</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Thu, 21 May 2009 06:37:13 GMT</pubDate>
		</item>
		<item>
			<title>&quot;강한 진보정당 있어야 북유럽형 모델 가능&quot;</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8557</link>
			<description>&lt;strong&gt;&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quot;강한 진보정당 있어야 북유럽형 모델 가능&quot;&lt;/font&gt;&lt;BR&gt;
'이명박 정부 1년'-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발제② &lt;/strong&gt;&lt;BR&gt;
&lt;BR&gt;
경제문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이며, 특히 위기의 한국경제와 세계경제 상황에서 시대적 화두로서 경제문제가 급부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2009년 오늘 우리는 사회와 정치가 시장권력에 의해 좌우될 때, 어떤 재앙이 어떻게 찾아오는가를 지켜보는 목격자이자 고통의 아낌없는 수혜자가 되고 말았다. &lt;BR&gt;
&lt;BR&gt;
공장들이 문을 닫고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생산된 물건을 팔리지 않고 있다. 펀드에 투자했던 재산은 깡통이 되었고, 내집 마련을 위해 대출받았던 돈 때문에 집이 차압을 당하고 있다.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를 구했다 해도 60%는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낮은 임금과 불안한 비정규직 고용뿐이다.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창업 1년만에 문을 닫는 곳이 무려 90%가 넘는다고 한다. &lt;BR&gt;
&lt;BR&gt;
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형마트와 편의점 때문에 지난 5년 사이 동네 구멍가게가 하루 평균 6개꼴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를 운영한 결과, 잃어버린 것은 ‘희망’이고 얻은 것은 ‘빈곤과 절망’뿐이며, 그것이 바로 현 경제위기의 본질이다. &lt;BR&gt;
&lt;BR&gt;
&lt;strong&gt;민주화 이후: 정치의 후퇴와 자본지배의 강화&lt;/strong&gt;&lt;BR&gt;
&lt;BR&gt;
이처럼 먹고 사는 경제문제가 한국정치의 중심적인 사회균열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관측은 한국의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경제위기의 장기화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lt;BR&gt;
&lt;BR&gt;
한국 사회와 같은 낮은 수준의 사회복지체제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서민들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좋은 교육, 직장, 주거, 공적인 의료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제는 서민들을 이등시민, 삼등시민으로 만들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고 사회공동체의 지속적 안정성과 건강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lt;BR&gt;
&lt;BR&gt;
건국 60년 만에 한국사회가 해체와 파탄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정말로 심각하다. 특히 사태가 진전되면서 사회 중하층의 삶은 훨씬 가혹한 파국적 상태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경제의 정치화가 필요한 핵심 이유인 것이다. 즉 사회 중하층 구성원들에게 냉혹할 정도로 잔인한 경제체제에 관한 문제가 정치의 중심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또 대중들이 주목할 만한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대안의 구체화가 없다면―일종의 습관적 안티주의나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하는 말의 반복적 성찬은 아무런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한다―한국정치에서 개혁이든 진보든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lt;BR&gt;
&lt;BR&gt;
과거 박정희 체제가 1인 독재 하에서 자본과 노동을 총동원했던 총체적 억압체제였다면, 민주화 이후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정치의 후퇴와 자본 지배의 강화로 요약된다. 즉 지금까지의 민주정부들은 점진적으로 자본에게 권력을 넘겨준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표현했던 것은 정치권력의 자본에 대한 굴복과 무력감의 표현이었다. &lt;BR&gt;
&lt;BR&gt;
이제 이러한 과정의 역전이 필요하고, 정치가 복원될 필요가 있다. 정치복원의 요체는 민주화된 권력의 자본에 대한 통제이다. 지금 요구되는 정치의 역할은 노동자의 권리와 고용, 복지와 결합되지 않은 자본 중심의 성장체제와 그 물신화된 이데올로기들을 타파하고 대중의 삶과 결합한 지속가능한 성장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것에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의 첫 출발은 사회 중하층 구성원들의 삶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문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대안의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lt;strong&gt;MB의 녹색뉴딜은 땅값 부양책일 뿐... 낡은 모델의 강화&lt;/strong&gt;&lt;BR&gt;
&lt;BR&gt;
경제 패러다임과 관련해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경제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 사회경제적 평등이라는 사실이다. &lt;BR&gt;
&lt;BR&gt;
예컨대 이명박 정권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경제성장에 동의했던 것은 현재의 고통을 해결해 줄 방안과 내일의 희망을 열어줄 비전을 단지 ‘과거의 언어’로 표현했을 뿐인 것이다. 또 뉴타운 공약에 혹했던 것은 미흡한 한국의 사회안전망의 현실적 대안이 바로 부동산을 통한 재산의 증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교육에 그렇게 순응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나마 높은 학력을 보유해야 먹고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인 것과 유사하다. &lt;BR&gt;
&lt;BR&gt;
따라서 사회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 사회경제적 평등을 갖고 오지 못하는 경제성장이란 대안의 경제 패러다임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웅변해주고 있는 것은 지난 권위주의 시절 개발독재에 기초한 박정희식 국가주의적 경제성장모델이나, ‘민주’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의 반복이나 변형으로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넘어설 수 없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새로운 희망을 창출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lt;BR&gt;
&lt;BR&gt;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경제의 금융화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세계가 새로운 모색과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 지금, 한국만큼은 여전히 과거의 낡은 모델을 폐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 &lt;BR&gt;
&lt;BR&gt;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 강화, 감세가 아닌 증세를 통한 복지재정 확보, 교육과 의료 등 공적 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한 고용 창출과 내수 중심 성장노선으로의 전환, 임금격차 축소와 보편적 생활임금체계의 구축,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경제운영체계 구축 등 경제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에서 오로지 부유층에 대한 감세와 토목건설 중흥만을 외치며 역주행에 따른 갈등만을 확산시킨 것이 이명박 정부 통치 1년의 실상이다. &lt;BR&gt;
&lt;BR&gt;
고소득·자산가에 대한 감세정책, 자본시장통합법, 공기업 민영화, 한미FTA 등을 여전히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원조인 미국보다 더 미국스러운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lt;BR&gt;
&lt;BR&gt;
50조를 투자하여 96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는 이른바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의 경우, 그 조악한 계산법은 그만두고라도 주요내용이 4개강 정비사업 등 토목·개발 사업이라는 데서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lt;BR&gt;
&lt;BR&gt;
이러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조화 없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은 뉴딜이 아니라, 건설과 토목 사업을 통해 극소수의 땅부자만을 위한 ‘땅값 부양책’일 뿐이며,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사익 추구를 극대화하는 ‘공공의 적’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인 추세와는 거꾸로 가는 이명박 정부의 길은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키고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lt;BR&gt;
&lt;BR&gt;
&lt;strong&gt;자본에 복지-고용의 사회적 책무를 부여해야&lt;/strong&gt;&lt;BR&gt;
&lt;BR&gt;
지금 한국사회 대다수 서민층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에 대한 책임은 바로 이러한 무책임한 자본과 이에 투항한 무능력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통제되지 않은 자본의 자유는 사회적 책임이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무제한의 이윤 추구와 금권정치를 통한 민주주의의 부패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lt;BR&gt;
&lt;BR&gt;
경제 시스템과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지금,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의 복원을 통한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시스템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핵심은 자본으로 하여금 고용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lt;BR&gt;
&lt;BR&gt;
이러한 전제 아래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민주정부 10년-이명박 정부 1년의 길과는 다른 경제운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파탄난 경제모델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 경제모델을 완성된 형태로 제시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실정에 맞는 대안의 경제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 또는 기조를 제시할 수는 있다고 본다. &lt;BR&gt;
&lt;BR&gt;
첫째, 고용 중심-사회적 책임의 순선환을 이룰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GDP 중심의 성장에서 빈부격차와 사회 양극화의 폭을 줄이는 고용 중심의 성장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고용 중심의 성장 노선에서 핵심은 노동의 권리와 함께 하는 일자리의 창출이며, 그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노동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될 수 있으며 또 연쇄 효과를 통해 위기의 경제 상황을 극복해갈 수 있는 열정과 희망의 원천을 새롭게 창출해낼 수 있다.&lt;BR&gt;
&lt;BR&gt;
둘째, 보편적 복지 중심-생태친화적인 원칙 속에서 디자인된 모델로 보편적 복지를 통해 결실에 대한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며, 또 지속가능한 성장이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를 저지하는 흐름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셋째는 경쟁과 갈등의 주체들 간에 합의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의 정착이다. &lt;BR&gt;
&lt;BR&gt;
이러한 세 가지 원칙과 기조가 지켜지는 방향으로의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면 오늘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일궈내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lt;BR&gt;
&lt;BR&gt;
&lt;strong&gt;북유럽형 모델, 한국에서 가능할까?&lt;/strong&gt;&lt;BR&gt;
&lt;BR&gt;
경제패러다임의 전환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현재 우리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북유럽형 모델의 특징에 대한 사려 깊은 천착이다. 그것의 이념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북유럽형 모델이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삶의 고통을 경감시켜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적 풍토가 다르고 역사적 경험이 다르다는 점에서 직접 적용하기에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은 물론 당연하다. (북유럽형 모델의 구체적인 작동 시스템은 아마도 각론 경제분야에서 이야기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lt;BR&gt;
&lt;BR&gt;
한국과 북유럽형 모델의 전형적인 나라인 스웨덴은 숙련노동에 기반한 제조업-수출 중심 개방경제라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삶의 질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경제시스템 전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국정 철학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lt;BR&gt;
&lt;BR&gt;
또한 이러한 북유럽형 모델 모델은 ‘강한 산업-많은 고용-좋은 복지’를 근간으로 하며, 큰 혼란이나 고통 없이 경제위기 사태를 이겨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경제와 사회의 운용 시스템에 대해 주목해봄직하다. &lt;BR&gt;
&lt;BR&gt;
사실 내가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지점은 이러한 북유럽형 모델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북유럽형 모델에 대한 대부분의 논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무엇보다도 운동의 정치, 즉 민주적 통제를 통해 자본에게 사회적 책무를 부과할 능력을 갖춘강한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결국 북유럽형 모델은 사회적 합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에 필요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역시 사회에 뿌리를 둔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으로 상징되는 위력적인 운동의 힘이 없다면 작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정치는 우리의 미래</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Fri, 23 Jan 2009 02:40:34 GMT</pubDate>
		</item>
		<item>
			<title>MB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8207</link>
			<description>*다음은 지난 20일 '노회찬마들연구소'에서 주최한 '이명박 정부 평가와 대한민국 위기극복 심포지움'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기조발제한 글이다. 기조발제문이 좀 길어서 서너 차례 나누어서 싣고자 한다. 또 다른 발제자들의 글도 실어서 이명박 정부의 1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블로거주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lt;strong&gt;&quot;좋은 정당을 만들지 못한 운동의 실패&quot;&lt;/strong&gt;&lt;/font&gt;&lt;BR&gt;
&lt;strong&gt;'이명박 정부 1년'-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발제①&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26066976.jpg&quot; width=&quot;280&quot; height=&quot;406&quot; alt=&quot;&quot;/&gt;&lt;/div&gt;가장 거짓말을 잘 하는 직종으로서, 그리고 가장 부패한 직업으로서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정치인 집단….&lt;BR&gt;
&lt;BR&gt;
오늘 기조 발표문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진 첫 번째 고민의 지점은 ‘오늘의 사태를 어떤 언어로 어떻게 규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정치’와 민심의 끊임없는 불일치야말로 정치에 대한 불신의 원천이며, 그 한 축에 혼탁해진 말들의 향연이 민주화 20년의 정치를 구성해옴으로써 정치 일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을 가중시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나는 정치인의 언어는 단순명쾌해야 하고 사태를 직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때 힘을 지닌다고 본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 특히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기울이며 책임 있는 정치적 실천을 통해 그것에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lt;BR&gt;
&lt;BR&gt;
&lt;strong&gt;촛불,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 정치의 지체를 방증&lt;/strong&gt;&lt;BR&gt;
&lt;BR&gt;
위기, 실망과 절망, 분노, 재앙. 2009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자화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로 내가 선택한 단어의 목록이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은 서민들의 사회경제적 고통의 누적과 그로 인한 총체적인 삶의 질의 악화,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대안의 부재로 모아진다. &lt;BR&gt;
&lt;BR&gt;
경제 파탄과 빈곤의 일상화, 사회적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심화, 가정의 해체와 사회공동체의 파괴 속에서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은 고단한 삶이 지속되는 ‘탈출구 없는 고통의 감옥살이’를 강요받고 있다. 2009년 울산의 한 굴뚝 위에서 아무런 정치적, 사회적 반향이 없는 가운데 수십일째 지속되고 진행되고 있는 두 노동자의 농성과 외침은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lt;BR&gt;
&lt;BR&gt;
정치에 대한 분노와 실망, 신뢰의 철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탈정치․반정치화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과 염증과 무관심이 증폭. 보수 양당의 지지율을 다 합쳐 봐도 1/3밖에 되지 않고 무당파층이 60%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2008년 촛불이라는 성난 민심의 폭발현상은 사회와의 소통을 단절한 또는 거부한 정치의 지체를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lt;BR&gt;
&lt;BR&gt;
한편 사회경제적 삶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생존에의 공포와 퇴락의 두려움이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상식이 해체된 시대 상황에서 진보적 사회운동과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중의 참여가 깊고 넓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lt;BR&gt;
&lt;BR&gt;
과거처럼 민주주의, 진보, 변혁, 사회정의와 연대, 양심 등의 언어를 통해 거짓과 불의에 대한 도전과 가라앉은 민중적 반란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힘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여 민주주의 발전의 사회적 기반이자 주체라고 인정되어 온 노동을 비롯한 민중 부문의 발언권이나 영향력은 오히려 생산과 사회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영역에서도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lt;BR&gt;
&lt;BR&gt;
그렇다면 왜 이런 사태가 초래되었을까? 민주화 20년, ‘민주’정부 10년, 이명박 정부 1년에 대해 찬찬히,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퇴행과 위기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게 전적으로 묻거나, 또는 세계경제의 위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엄중한 사태를 너무 한가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lt;BR&gt;
&lt;BR&gt;
그 이전에 일차적으로는 민중적 기초로부터 멀어지는 정치경제체제를 발전시킨 민주화 20년의 역대 정부와 그것에 편승한 기성 정당에게서, 부차적으로는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 운동의 약화, 특히 민중적 요소의 급격한 축소에 따른 제도권 밖 정치적 다이나믹스의 사회적 원천 소진 등 주체의 문제에서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lt;BR&gt;
&lt;BR&gt;
&lt;strong&gt;민주당에 지지를 보내지 않는 진짜 이유... 그리고 운동의 실패&lt;/strong&gt;&lt;BR&gt;
&lt;BR&gt;
오늘의 사회경제적 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에 앞서 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예고된 고삐풀린 시장의 폭군화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국가의 실패, ‘민주’정부 10년의 실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이야말로 이명박 정부라는 ‘괴물’의 출현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 5년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가장 좋은 조건을 지닌 정부였지만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오히려 가장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정부였다. &lt;BR&gt;
&lt;BR&gt;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2005년 5월 대기업 총수들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폭군적인 경제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포기선언이자 시장에 대한 항복선언이었다. 아니,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자발적으로 권력을 자본과 시장에게 넘겨줬다는 점에서 그것은 이른바 ‘민주’정부에 의해 행해진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과 거부의 선언이었다.&lt;BR&gt;
&lt;BR&gt;
이처럼 민주주의 이름으로 너무 쉽게 민주주의를 배반한, 노무현 정부가 묶어 놓은 이 실타래를 풀지 못하면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실현은 요원하다고 할 것이다. 많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진보와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은 보수로 전향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표를 던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진보와 개혁 세력에 대한 ‘응징과 심판’의 의미에서 표를 던진 것이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컸기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의 철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을 비롯한 여타의 정당들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lt;BR&gt;
&lt;BR&gt;
이러한 점에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준엄한 책임과 자성이 필요했는데, 문제는 이명박 정부 1년이 이를 잠재워버렸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오히려 과거와 유사한 ‘반MB 민주대연합’의 낡은 틀이 또 다시 강요되면서, 새로운 희망을 건설할 대안적 힘의 조직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과 같은 희망 부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 결과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한 퇴락의 시대로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있다. &lt;BR&gt;
&lt;BR&gt;
다른 한편으로 오늘의 사회경제적 위기와 사회 중하층 구성원들의 삶의 파탄은 운동의 책임이기도 하다. 오늘에 기초하여 더 나은 미래와 새로운 세상을 설계해 온 진보정당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 각종 운동들은 대중의 열정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설득력 있는 대안과 실천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운동의 침체와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특히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지적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정치제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무엇보다 ‘폭군적인’ 경제권력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불평등과 차별을 필연적으로 산출하는 1원 1표의 자본주의적 시장 원리와, 평등을 핵심 가치로 지향하는 1인 1표의 민주주의적 정치 원리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다. &lt;BR&gt;
&lt;BR&gt;
다른 하나의 지적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좋은) 정당 없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좋은 정당정치야말로 자본과 시장의 경제적 횡포에 맞서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삶을 지켜주는 제도적․실천적 기제라고 할 때, 오늘의 사태는 어떤 면에서 좋은 정당을 만들어내지 못한 운동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 &lt;BR&gt;
&lt;BR&gt;
&lt;strong&gt;총체적 패러다임의 전환 있어야&lt;/strong&gt;&lt;BR&gt;
&lt;BR&gt;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정치가 바뀌어야 경제가 살아나고, 또 민생이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 평안해질 수 있다.”는 말로 압축된다. 즉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절체절명의 숙제는 정치를 바로 세우는 문제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희망을 재건하는 실마리는 정치의 재발견과 재구축에서 찾아져야 한다. 다시 말해 지금과 같은 질 나쁜 3류 정치가 지속된다면, 정치의 문제가 사회운동의 핵심 문제로 터잡지 못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부활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돌이켜볼 때, 2008년 거리를 뜨겁게 달군 촛불의 물결은 기성 질서에 대한 경고와 거부와 심판을 의미한다. 그 핵심 메시지는 ‘변화 없이 기회 없다’(No Change, No Chance), ‘변화 없이 희망 없다’(No Change, No Dream)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기성의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즉 총체적인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lt;BR&gt;
&lt;BR&gt;
이처럼 변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열망이 여전히 있음에도, 특정한 계기가 있다면 긍정적인 정치의 힘으로 전화될 수 있음에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그것에 책임 있게 응답할 정치집단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촛불 그 자체의 힘만으로는 언 손도 녹이지 못한다”는 사실과, 촛불의 목소리를 정치를 바꿔내는 동력으로 작동시킬 수 있을 때 그 의미는 비로소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 인식 아래 나는 경제와 정치라는 두 측면에서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정치는 우리의 미래</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Thu, 22 Jan 2009 01:55:45 GMT</pubDate>
		</item>
		<item>
			<title>&quot;무노조경영이 삼성반도체를 백혈병 공장으로 만들었다&quot;</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7648</link>
			<description>&lt;strong&gt;&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quot;죽으면 '네 병'이고, 돈 벌면 '내 돈'이냐&quot;&lt;/font&gt;&lt;/strong&gt;&lt;BR&gt;
&lt;strong&gt;[기획연재-삼성과 싸우는 '다윗들'(3)]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 황유미 부친 황상기씨&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121475835.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81&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병해 지난해 3월 사망한 황유미씨의 부친 황상기씨&lt;/p&gt;&lt;/div&gt;
&lt;BR&gt;
2003년 10월 5일.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10여명의 여학생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수원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해 2월 속초상고 졸업을 앞둔 여고생들이었다.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삼성반도체에 취직했던 터라 그들의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다. &lt;BR&gt;
&lt;BR&gt;
속초에서 30여년 택시를 운전해온 황상기씨는 직접 배웅을 나와 둘째 딸 유미씨에게 수원행 버스표를 끊어주었다. 객지로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야 짠했지만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취직한 걸 생각하면 딸이 대견해 보였다. &lt;BR&gt;
&lt;BR&gt;
수원으로 떠나기 전 유미씨는 아버지 황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lt;BR&gt;
&lt;BR&gt;
&quot;아빠, 수원 가서 일 잘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동생은 대학까지 보낼 거야.&quot; &lt;BR&gt;
&lt;BR&gt;
&lt;strong&gt;꽃다운 21살에 찾아온 백혈병... 21개월 투병 끝에 숨을 거두다&lt;BR&gt;
&lt;/strong&gt;&lt;BR&gt;
학창시절 황유미씨는 그룹 '신화'를 좋아해 팬클럽 회원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아버지는 &quot;공부는 잘 하지 못했지만 온순한 아이었다&quot;고 회고했다. &lt;BR&gt;
&lt;BR&gt;
&quot;친구들하고 잘 어울려 인기가 좋았다. 말썽 피우는 일도 거의 없었다. 집에 오면 청소도 잘하고, 남동생도 잘 데리고 놀았다. 삼성반도체에 취직한 이후에도 한달에 한두 번씩 집에 왔다. 집에 오면 친구들 만나서 놀기도 하고, 엄마랑 시장도 가고 온천도 가고 같이 냉면도 사먹곤 했다. 월급 타서 남동생과 엄마에게 옷도 사주었다.&quot; &lt;BR&gt;
&lt;BR&gt;
그런데 유미씨는 2005년 6월 백혈병('급성 골수염 백혈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입사한 지 2년도 채 안된 때였고, 그의 나이는 고작 21살이었다,&lt;BR&gt;
&lt;BR&gt;
&quot;아마 2005년 5월쯤이었다. 유미가 지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자꾸 토하고 속이 미쓱거린다'고 했다. 유미 엄마는 유미가 체한 걸로 알고 '약을 사 먹거나 손끝을 따보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똑같은 증상이 계속됐다고 한다. 결국 회사 근처에 있던 조그만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간 아주대 병원에서 의사가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quot; &lt;BR&gt;
&lt;BR&gt;
황씨 부부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백혈병이라면 고칠 수 없는 병 아닌가? 열흘이 지나도록 밥도 안먹히고 눈물만 났다. 황씨는 &quot;회사 사람들이 얘기하려고 찾아오는데 내가 말을 못해 돌아가곤 했다&quot;고 말했다. 가족 모두에게 힘겨운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lt;BR&gt;
&lt;BR&gt;
&quot;날마다 따뜻한 곳에서 목욕시켰다. 대중목욕탕에 갈 수 없어서 온천장을 하나 빌려 날마다 목욕시켰다. 우울증도 걸릴 수 있으니까 꽃구경도 시켜주고, 바람도 쐐줘야 했다. 방도 깨끗해야 유지해야 하고 유미가 사용하는 숟가락 등은 날마다 뜨거운 물에 삶아서 소독해야 했다. 골수이식수술을 하고 나서는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하니까 꼼짝할 수 없었다. 속초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 아주대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돌아왔다. 이렇게 유미한테 매달렸기 때문에 택시일은 거의 못했다.&quot; &lt;BR&gt;
&lt;BR&gt;
또 황씨의 모친은 유미씨가 투병하던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떴다. 황씨는 &quot;밥도 안먹고 유미 걱정을 많이 하더니 하루 아침에 돌아가셨다&quot;고 말했다. 그렇게 집안 사정은 설상가상이었다. 게다가 치료비는 택시운전을 하는 황씨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치료비는 무려 8000만원에 달했다. 결국 낡은 집을 새로 짓겠다는 꿈도 포기해야 했다.&lt;BR&gt;
&lt;BR&gt;
그리고 운명의 2007년 3월 6일. 유미씨는 21개월간의 투병생활을 뒤로 하고 아버지의 차안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23살, 정말 꽃다운 나이였다. &lt;BR&gt;
&lt;BR&gt;
&quot;당시 속초와 수원을 오가며 통근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날 아주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천 여주쯤 왔는데 유미가 덥다고 해서 내가 창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그런데 금방 춥다고 해서 창문을 다시 닫았다. 그걸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러다 횡성쯤에 왔는데 애 엄마가 '유미가 이상하다'고 했다.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유미를 보고 있는데 유미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quot; &lt;BR&gt;
&lt;BR&gt;
유미씨가 세상을 떠난 후 황씨의 아내는 밤에 잠을 못자고 우는 등 심한 신경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지금까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lt;BR&gt;
&lt;BR&gt;
&quot;사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죽으니까 그렇게 되더라. 애 엄마는 유미가 아직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고 한다.&quo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315574043.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34&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황유미씨는 그룹 '신화'를 좋아해 팬클럽 활동을 할 정도로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사진은 월간 &amp;lt;말&amp;gt;에서 투병중인 황씨를 찍은 것이다. &lt;/p&gt;&lt;/div&gt;
&lt;BR&gt;
&lt;strong&gt;반도체 백혈병, 개인질병인가 산업재해인가?&lt;/strong&gt;&lt;BR&gt;
&lt;BR&gt;
백혈병은 '혈액암'이라고도 불린다. 그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원폭피해자나 방사선관련 종사자에게 많이 발생하고 있어 '방사선'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도 백혈병의 발병 원인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산업에도 수많은 화약물질이 사용되는데, 그 실체가 제대로 공개된 적은 없다. &lt;BR&gt;
&lt;BR&gt;
아주대 병원측은 &quot;(유미씨의 경우) 선천성 백혈병이었으면 20살까지도 살지 못했을 것&quot;이라며 &quot;방사능조사, 화학물질 등의 노출에 의한 백혈병임을 배제할 수 없다&quot;는 진단을 내놓았다. &quot;우리 가족 중에 피와 관련된 병에 걸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quot;는 황씨는 회사측에 &quot;회사에서 일하다 걸린 병&quot;이라며 산업재해(산재) 인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quot;이것은 개인질병일 뿐&quot;이라며 산재 인정을 거부했다.&lt;BR&gt;
&lt;BR&gt;
하지만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는 법.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유미씨 말고도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lt;BR&gt;
&lt;BR&gt;
&quot;유미가 아주대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고 있을 때 한 30대 남자(황민웅씨)도 백혈병으로 치료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삼성반도체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쳐 치료받다가 곧 죽었다. 이숙영씨도 백혈병에 걸려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는 유미와 같은 공정(기흥공장 3라인 디퓨전 공정)에서 일했다. 이씨는 유미가 통근치료 받고 있던 2005년 8월 죽었다.&quot;&lt;BR&gt;
&lt;BR&gt;
2007년 11월 출범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대책위, http://cafe.daum.net/samsunglabor)가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총 12명의 삼성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거나 치료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백혈병뿐만 아니라 흑색종, 육아종, 피부암, 불임, 유산, 재생불량성 빈혈 등 호소하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결국 회사측도 6명의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은 인정하기에 이른다. &lt;BR&gt;
&lt;BR&gt;
&quot;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12명뿐인지 더 많은지 알 수 없다. (회사측에서) 전부 감춰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백혈병을 개인질병으로 몰아가는데 이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이다. 정당하지 않는 것을 힘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어떻게 같은 공정에서 일하던 두 사람(황유미·이숙영)이 모두 백혈병에 걸리나? 백혈병이 감기인가? &lt;BR&gt;
&lt;BR&gt;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렸을 것이다. 방사선에 노출되면 100% 피와 관련된 질환이 발병한다고 한다.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백혈병이 천천히 오고, 방사선에 노출되면 백혈병이 금방 온다. 나는 유미가 방사선에 의해 백혈병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게 거의 맞다고 생각한다.&quot;&lt;BR&gt;
&lt;BR&gt;
&lt;strong&gt;&quot;죽으면 '네 병'이고, 돈 벌면 '내 돈'인가?&quot;&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 margin-bottom: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13453633.jpg&quot; width=&quot;280&quot; height=&quot;374&quot; alt=&quot;&quot;/&gt;&lt;/div&gt;황씨는 유미씨의 죽음에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quot;노조가 있었다면 백혈병이 현저히 줄었거나 아예 발병하지 않았을 것&quot;이라며 &quot;무노조 경영이 삼성반도체를 백혈병 공장으로 만들었다&quot;고 단언했다.&lt;BR&gt;
&lt;BR&gt;
&quot;노조가 있었다면 회사 멋대로 방사선을 노출했거나 화학물질을 썼겠나? 백혈병으로 죽은 근로자들은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노조도 당연히 생겨야 한다. 노조가 안전점검을 해서 현장을 안정한 사업장으로 만든 다음에 근로자가 일을 해야 근로자가 안전하다. 만약 삼성에 노조가 생기지 않는다면 근로자들은 계속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lt;BR&gt;
&lt;BR&gt;
근로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한 다음에 성장도 있는 것이지 근로자를 다 죽이고 성장하면 그것을 성장이라고 할 수 있나? 근로자가 건강해야 삼성반도체도 성장하고 나라도 성장할 수 있다. 국민이 만든 삼성이지, 이건희 회장 혼자 만든 삼성이 아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사람은 도둑놈이지 경영자가 아니다.&quot;&lt;BR&gt;
&lt;BR&gt;
황씨는 &quot;근로자가 이렇게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자기 영리만 따진다면 회사도 망치고 나라도 망치는 일&quot;이라며 &quot;백혈병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삼성의 몫이자 정부의 몫이자 사회의 몫&quot;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lt;BR&gt;
&lt;BR&gt;
유미씨 사망으로 떠오른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건'는 첨단 반도체산업의 그늘을 처음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산업안전공단이 백혈병과 반도체산업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한 역학조사에 들어갔고, 노동부도 13개 반도체 소자 제조업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실태 일제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lt;BR&gt;
&lt;BR&gt;
&quot;제대로 조사하는 건지 아니면 조사하는 척 하구선 삼성반도체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거의 모든 기관이 삼성 편인데 노동부에도 로비가 안들어가겠나? 피해자의 처지에서 원칙대로 진상규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quot;&lt;BR&gt;
&lt;BR&gt;
정부 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도 삼성반도체측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직원들이 모금한 돈까지 포함해 약 4000만원을 황씨 가족에게 전달한 것이 전부다. 산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관리의 삼성'은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lt;BR&gt;
&lt;BR&gt;
&quot;힘의 논리 아닌가? 대답이 없는 건 해볼테면 해봐라는 뜻 아닌가?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으면 이겨 봐라' 이런 것이다. 우리 유미야 이미 죽었으니까 어찌 할 수 없다고 하자. 하지만 거기서 일하다가 백혈병 걸린 근로자와 가족들은 챙겨줘야 하지 않나? &quot; &lt;BR&gt;
&lt;BR&gt;
황씨는 기자에게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던 시절 사용하던 유미씨의 은행통장을 내밀었다. 유미씨가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은 110만원 정도. 고수익을 창출하는 반도체산업 노동자가 받는 임금치곤 상당히 초라했다. &lt;BR&gt;
&lt;BR&gt;
&quot;어린 애를 데려다가 죽을 병 걸리도록 일 시키고 100여만원만 준다. 하지만 이사 등 임원들은 애들이 벌어놓은 돈을 몇백억씩 타간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가져가는 격이다. 죽으면 '네 병'이고, 돈 벌면 '내 돈'이다, 이런 논리다.&quo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76936709.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49&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황유미씨가 다녔던 속초상고. 유미씨는 2003년 10월 삼성반도체에 취직했다 2005년 6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lt;/p&gt;&lt;/div&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삼성과 싸우는 다윗들</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Tue, 20 Jan 2009 08:43:20 GMT</pubDate>
		</item>
		<item>
			<title>&lt;조선&gt;도 의심하는 '이구택 포스코 회장 조기사퇴'</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6435</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ize: 13pt&quot;&gt;&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lt;strong&gt;&quot;기업친화적 MB정부도 과거 정부와 다르지 않아&quot;&lt;br /&gt;
&lt;/strong&gt;&lt;/font&gt;&lt;/span&gt;&lt;/p&gt;&lt;BR&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아직도 포스코가 공기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포스코는 외국인과 외국기업의 지분이 총 50%를 넘어선 민간기업이다. &lt;br /&gt;
&lt;BR&gt;
외국인이 43.3%이고, 뉴욕멜런은행이 16.2%, 신일본제철이 5.04%, 워런 버핏이 4%(추정)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과거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은 이젠 0%다. 다만 국민연금관리공단이 4.3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lt;/span&gt;&lt;/p&gt;&lt;BR&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그런 포스코가 정치바람을 타고 있다. 이구택 회장은 임기 1년을 앞둔 15일 2008년 실적 결산 이사회에서 사퇴의사를 말할 것으로 알려졌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ize: 13pt&quot;&gt;&amp;lt;한겨레&amp;gt;는 15일 &quot;이명박 정권 이후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정치적 압력으로 낙마하기는 케이티, 케이티에프에 이어 포스코가 세 번째&quot;라고 전했다. &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그런데 이 회장이 조기사퇴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 물론 검찰이 포스코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혹을 조사하면서 시중에서는 '사퇴설'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특히 현 정권이 이 회장을 '노무현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고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이 회장의 조기사퇴와 관련, '정치적 압력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심지어 이 회장의 후임으로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전 대통령 경제특보)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거론되고 있는 판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하지만 청와대는 '정치적 압력 의혹' 질문에 '쌩뚱맞다'는 반응을 보였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이동관 대변인은 14일 오후 브리핑에서 한 기자로부터 관련질문을 받고 &quot;민간기업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걸 왜 청와대가 코멘트 해야 하느냐&quot;고 대꾸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그런 와중에 15일자 &amp;lt;조선&amp;gt;의 사설이 유독 눈에 띈다. '민간기업 포스코를 아직도 공기업 취급하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사설이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먼저 &amp;lt;조선&amp;gt;은 포스코 내부에서 &quot;새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고 조직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 조기사퇴 의사를 밝힌 것&quot;이라는 설명이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 이렇게 꼬집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ize: 13pt&quot;&gt;&quot;포스코는 외국인 지분이 43%에 이르는 민간기업이다. 정부는 단 한 주(株)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민간기업의 대표가 물러나는 것이 왜 정부 부담을 덜고 조직을 안정시키는 일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quo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사설은 포스코 주주들이 경영 책임을 물어 이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면 그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는 일&quot;이라며 &quot;그러나 포스코 주주들로부터는 아직까지 이 회장의 경영 책임을 묻는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quot;고 전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이어 사설은 '조기사퇴'에 권력의 입김이 작동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ize: 13pt&quot;&gt;&quot;오히려 포스코의 경영이 나빠지기 훨씬 전부터 시중에선 이 회장의 거취와 관련한 소문이 무성했다. 새 정부가 공기업 CEO 물갈이를 추진하면서 포스코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이 회장 사퇴가 그 소문을 뒷받침해준 셈이다.&quo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t&quot;&gt;사설은 &quot;정부 관계자들은 포스코를 가리켜 흔히 '민영화된 공기업'이라고 한다&quot;며 &quot;그래서 회장 인사를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quot;고 꼬집었다.&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ize: 13pt&quot;&gt;&quot;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정부 지분이 남아 있어 주주로서 경영책임을 묻는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부터는 그것도 아니다. 더욱이 이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도 하는 일은 과거 정부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quot;&lt;/span&gt;&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&lt;br /&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lang=&quot;EN-US&quot; style=&quot;font-size: 13pt&quot;&gt;&amp;lt;조선&amp;gt;이 이런 사설을 영향력있는 광고주인 포스코를 의식해서 쓴 것인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소신에서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내용만은 이명박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lt;/span&gt;&lt;/p&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369875&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정치는 우리의 미래</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Thu, 15 Jan 2009 01:32:26 GMT</pubDate>
		</item>
		<item>
			<title>삼성 커플, '삼성과 싸우는 부부'가 되다</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5496</link>
			<description>&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lt;strong&gt;&quot;제 아이디가 왜 '아웃삼성'인지 아세요?&quot;&lt;/strong&gt;&lt;/font&gt; &lt;BR&gt;
&lt;strong&gt;[기획연재-삼성과 싸우는 '다윗들'(2)] 삼성SDI 해고노동자 송수근의 아내 박미경씨&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141626077.jpg&quot; width=&quot;280&quot; height=&quot;375&quot; alt=&quot;&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quot;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141626077.jpg')&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삼성SDI 해고노동자 송수근씨의 아내 박미경씨.&lt;/p&gt;&lt;/div&gt;삼성SDI 해고노동자 송수근씨의 아내 박미경(40)씨는 지난 2007년 펴낸 &amp;lt;들꽃은 꺾이지 않는다&amp;gt;(삶이 보이는 창)에서 이렇게 썼다.
&lt;BR&gt;
&lt;BR&gt;
&quot;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지독했던 가난과 너무도 깊은 상처를 안겨준 삼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난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통을 견디는 힘을 길러준 밑거름이 되었다면, 삼성은 땅을 치고 통곡할 만큼의 억울함과 분노를 안겨주었고, 세상을 몰랐던 제게 인생을 알게 해주었습니다.&quot;&lt;BR&gt;
&lt;BR&gt;
박씨는 남편의 부당해고와 두 차례의 구속 등을 겪으면서 '삼성에 한이 맺힌 여자'가 됐다. 인터넷 사이트에 등록한 아이디와 이메일이 모두 '아웃삼성(outsamsung)'일 정도다.&lt;BR&gt;
&lt;BR&gt;
&lt;strong&gt;&quot;이러니 삼성에 한이 안맺히게 생겼나?&quot;&lt;/strong&gt;&lt;BR&gt;
&lt;BR&gt;
박씨는 88년부터 5년간 삼성SDI 부산공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송씨를 만나 지난 94년 4월 결혼식을 올렸다. '삼성커플'이 태어난 셈이다. &lt;BR&gt;
&lt;BR&gt;
하지만 남편은 98년 삼성SDI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다 결국 해고됐다. 게다가 해고된 뒤 각종 집회에서 해고의 부당함을 주장했다가 회사측으로부터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를 당했고 두 차례나 구속됐다. 게다가 해고무효소송에서도 패소했다. &lt;BR&gt;
&lt;BR&gt;
&quot;이러니 삼성에 한이 안맺히게 생겼나? 해고 사유도 억울한데 업무방해 등으로 구속되니까 더 억울하더라. 악이 받쳤다. 상식이 안통하는 세상이다. (해고무효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우리가 이길 줄 알았는데 졌다.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는지 의심이 든다.&quot;&lt;BR&gt;
&lt;BR&gt;
이후 박씨는 남편이 만든 홈페이지(www.antisdi.com) 등을 비롯해 인터넷에 삼성을 고발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올린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 &amp;lt;들꽃은 꺾이지 않는다&amp;gt;다. &lt;BR&gt;
&lt;BR&gt;
문학평론가 정문순씨는 &quot;불같은 결의를 다지는 80년대 노동전사의 목소리를 해고 노동자 아내의 글에서 읽어야 하는 현실은 기이하고도 서슬프다&quot;고 평했다.&lt;BR&gt;
&lt;BR&gt;
박씨는 남편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quot;복직투쟁이 이렇게 길게 갈지 몰랐다&quot;며 &quot;남편이 너무 불쌍하다&quot;고 말했다. &lt;BR&gt;
&lt;BR&gt;
&quot;원래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회사 다닐 때 건강검진을 했는데 건강 나이가 10대였을 정도였다. 병원 한번 간 적 없었다. 하지만 감옥에 갔다 와서 목디스크로 수술을 했다. 장애 등급 5급이다.&quot; &lt;BR&gt;
&lt;BR&gt;
결국 '삼성커플'은 '삼성과 싸우는 부부'가 됐다. 박씨는 자신의 책에다 이렇게 썼다.&lt;BR&gt;
&lt;BR&gt;
&quot;삼성과의 악연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주위에 억울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우리 가족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앞만 보며 질주하듯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삼성이 상상도 안갈 만큼 비인간적이고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의 행복을 짓밟은 탓에 우리 가족은 정신적으로 강해졌습니다.&quot;(&amp;lt;들꽃은 꺾이지 않는다&amp;gt;, 98쪽)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95198758.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5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박미경씨가 삼성SDI 부산공장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lt;/p&gt;&lt;/div&gt;
&lt;BR&gt;
&lt;strong&gt;'삼성에 한이 맺힌 여자'에서 '세상을 바꾸자'로 블로그명 바꿔&lt;/strong&gt;&lt;BR&gt;
&lt;BR&gt;
그런데 박씨는 최근 '삼성에 한이 맺힌 여자'라는 이름을 버리기로 작정했다. 블로그명도 '삼성에 한이 맺힌 여자'에서 '세상을 바꾸자'로 바꾸었다.&lt;BR&gt;
&lt;BR&gt;
&quot;'삼성에 한이 맺힌 여자'란 아이디를 쓰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한이 더 맺히는 것 같다. 그래서 바꿨다. 물론 삼성과의 싸움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제가 남편한테 '당신이 복직되고 다른 해고자들도 복직돼야 제 한이 풀리는 거다'라고 말했다.&quo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삼성과 싸우는 다윗들</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Mon, 12 Jan 2009 02:54:34 GMT</pubDate>
		</item>
		<item>
			<title>김규항 &quot;두명의 이명박과 싸워야 한다&quot;</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4681</link>
			<description>&lt;strong&gt;&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quot;우리는 MB교육정책과 다르게 살고 있나?&quot;&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오랜 만에 그의 칼럼을 보았다. 참 반가웠다. 나는 이전에 &amp;lt;한겨레21&amp;gt;이나 &amp;lt;씨네21&amp;gt;에 실린 그의 칼럼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A급좌파'임을 자처하거나 그렇게 분류되는 사람들에게 그의 칼럼은 훌륭한 성찰의 도구였다. &lt;BR&gt;
&lt;BR&gt;
스스로 'B급 좌파'라 부르는 김규항씨는 &amp;lt;고래가 그랬어&amp;gt;(지난해 창간 5주년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는 아주 괜찮은 어린이 교육잡지를 내면서 교육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8일자 &amp;lt;한겨레&amp;gt;에 실린 그의 칼럼도 교육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시각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lt;BR&gt;
&lt;BR&gt;
&quot;그런데 이명박씨에게 진저리를 치는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는 다른 사람일까?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quot;&lt;BR&gt;
&lt;BR&gt;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되살아나거나 새롭게 실시되는 0교시, 우열반, 보충학습, 일제고사 등은 &quot;오래전부터 암묵적으로 혹은 공공연하게 해온 것들&quot;이라고 김규항씨는 주장한다. 학부모들의 '동의'(암묵적이든 공공연하든)가 없었다면 &quot;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quot;는 그런 것들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lt;BR&gt;
&lt;BR&gt;
이어 김규항은 이런 의문을 던진다.&lt;BR&gt;
&lt;BR&gt;
&quot;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 가운데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스스로 오랫동안 용인해온 일을 이명박씨가 하려고 하자 그리 정색을 하고 들고일어난 걸까?&quot;&lt;BR&gt;
&lt;BR&gt;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명박식 교육정책과는 다르게 살고 있는 걸까? 이에 김규항은 &quot;이명박의 교육정책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제 아이의 실제 교육에서 이명박의 교육과 차이를 보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quot;고 답한다. &lt;BR&gt;
&lt;BR&gt;
여기에서 김규항씨는 '두 이명박과의 싸움'을 제안한다. 한명은 '내 밖의 이명박'이고, 다른 한명은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이명박'이다. &lt;BR&gt;
&lt;BR&gt;
전자의 이명박하고만 싸우는 것만으로 온전할 수 없다. 전자의 이명박뿐만 아니라 후자의 이명박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quot;진정한 변화&quot;를 이루어내기 어렵다는 것이 김규항의 주장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lt;BR&gt;
&lt;BR&gt;
&quot;내 안의 이명박이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명박씨를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한다고 해도, 결국 수많은 내 안의 이명박들이 모든 걸 되돌려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quot;&lt;BR&gt;
&lt;BR&gt;
다음은 &amp;lt;한겨레&amp;gt; 8일자에 실린 김규항씨 칼럼 전문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야!한국사회] 사람의 일이란 / 김규항 &lt;BR&gt;
&lt;BR&gt;
2009년 오늘 한국에서 이명박씨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범주는 꽤 넓다. ‘자본주의 이후’를 소망하는 좌파에서부터 ‘상식의 회복’을 말하는 자유주의자들까지, 최소한의 양식을 가졌다 자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만 봐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에게 ‘이명박’이라는 이미지는 ‘악’이라기보다는 ‘추’에 가까운 듯하다. 그런데 이명박씨에게 진저리를 치는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는 다른 사람들일까?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lt;BR&gt;
&lt;BR&gt;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거창한 이야기 말고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고 0교시, 우열반, 보충학습 따위를 실시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고 들고일어났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암묵적으로 혹은 공공연하게 해온 것들이다. 고등학교 아이들은 8시 이전에 등교하지만 1교시는 8시40분에 시작한다. 그 40~50분이 0교시다. 영어·수학은 ‘수준별 수업’ 따위 이름으로 우열반이 공식 운영되며, ‘방과 후 특기적성’이라 포장한 보충수업은 상위권 반이 따로 있다. 일 년에 네 번 보는 교육청 모의고사는 바로 일제고사다.&lt;BR&gt;
&lt;BR&gt;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 가운데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스스로 오랫동안 용인해온 일을 이명박씨가 하려 하자 그리 정색을 하고 들고일어난 걸까? 그러나 사실 이건 우리가 ‘교육문제’라 하는 일 전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명박의 교육정책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제 아이의 실제 교육에서 이명박의 교육과 차이를 보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차이라면, 그들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이명박 쪽은 흔쾌한 얼굴을 한다는 정도인데,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그건 차이가 아니다.&lt;BR&gt;
&lt;BR&gt;
사람이란 참 약한 존재라서 어떤 사회체제 속에서 살아갈 때 그 체제에 조금씩 감염되는 속성이 있다. 그 체제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비판적인 사람도 완전히 그 체제를 거부하지 않는 한 다르지 않다. 민주화 이후, 혹은 김대중 정권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가져온 여러 사회변화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건 거의 모든 한국인이 자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정직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온 행복의 기준과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파괴되었다. 아이들이 사람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키워지는 풍경이나 이명박씨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으로 뽑힌 건 그 자연스런 결과들이다.&lt;BR&gt;
&lt;BR&gt;
결국 오늘 이명박과의 싸움은 두 이명박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내 밖의 이명박과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이명박. 두 이명박과 동시에 싸우지 않는 한, 아무리 뜨겁고 거대한 싸움을 벌인다 해도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내 안의 이명박이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명박씨를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한다고 해도, 결국 수많은 내 안의 이명박들이 모든 걸 되돌려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반이명박 전선에 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적이 한가하게, 혹은 맞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과의 싸움이 너무나 긴박하기 때문이다. 그 긴박함을 당연히,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 긴박함이 내 안의 이명박과의 싸움을 생략해도 좋을 만큼, 그래서 이 소중한 싸움을 헛수고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당연히, 함께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일이란, 참 간단치가 않다.&lt;BR&gt;
&lt;BR&gt;
&lt;strong&gt;김규항 &amp;lt;고래가 그랬어&amp;gt; 발행인&lt;/strong&gt;&lt;/font&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기본 폴더</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Fri, 09 Jan 2009 04:44:17 GMT</pubDate>
		</item>
		<item>
			<title>&quot;삼성의 힘은 엄청난 돈에서 나온다&quot;</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3980</link>
			<description>&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lt;strong&gt;10여년째 복직투쟁 벌이는 삼성SDI 해고자 송수근씨&lt;/strong&gt;&lt;/font&gt;&lt;BR&gt;
&lt;strong&gt;[기획연재] 삼성과 싸우는 다윗들(1)&lt;/strong&gt;&lt;BR&gt;
&lt;BR&gt;
&lt;BR&gt;
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5일, 경남 울주군 언양읍 터미널. 서울에서 출발한 지 5시간여 만에야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라곤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비디오가게로 기자를 안내했다. 20평 규모의 제법 큰 가게로 살림집까지 딸려 있었다. 그가 '지옥의 한 철'을 견디며 최근까지 생계를 유지해온 곳이다. &lt;BR&gt;
&lt;BR&gt;
&quot;15년 동안 운영해온 가게인데 현재 처분하고 있는 중이다. 내 해고 생활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보냈다.&quot;&lt;BR&gt;
&lt;BR&gt;
삼성SDI에 근무하면서 해고를 대비해 마련해놓은 것이 바로 이 비디오가게였다. 텅 빈 가게를 둘러보는 그의 얼굴엔 분노와 아쉬움 등 복잡한 감정이 묻어났다. &lt;BR&gt;
&lt;BR&gt;
&quot;비디오가게가 오랫동안 잘 안됐다. 노조가 있어서 나를 지원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돈을 까먹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10여년 회사 다니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삼성과 긴 싸움을 하면서 그걸 다 날렸다.&quot; &lt;BR&gt;
&lt;BR&gt;
&lt;strong&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87년 9월 29일]&lt;/font&gt; 무노조 삼성 선택... &quot;사내커플 손잡고 다녀도 징계&quot;&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10860034.jpg&quot; width=&quot;280&quot; height=&quot;374&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10년째 복직투쟁을 해온 삼성SDI 해고노동자 송수근씨. &lt;/p&gt;&lt;/div&gt;해고노동자 송수근(45)씨. 그는 이곳 언양(彦陽)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녔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고, '복둥이' 딸까지 낳았다. 그런데 그는 고향에 세워진 삼성SDI 부산공장(경남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 818번지)에서 11년간 근무하다 해고돼 10년째 복직투쟁을 해오고 있다. 
&lt;BR&gt;
87년 9월 29일과 98년 9월 24일. 이 두 개의 날짜는 그에게 화인(火印)처럼 기억되고 있다. 전자는 삼성에 입사한 날짜이고, 후자는 삼성으로부터 해고를 통보받은 날짜이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그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정점에 다다랐던 시기에 삼성SDI에 입사했다. 제대한 직후 들어간 첫 직장이었다. 그가 '명문 대기업' 삼성에 취직한 것은 '집안의 경사'였다. &lt;BR&gt;
&lt;BR&gt;
&quot;현대자동차에도 합격했는데 출퇴근하기 편리하고, 부모님 농사짓는 것도 도와줘야 해서 결국 삼성SDI를 선택했다. 그때 칼라 브라운관을 처음 만들 때였는데, 2주단위로 150명씩 모집했다. 브라운관이 없어서 못팔아 먹던 때였다. 오직했으면 거래업체에서 불량판정을 받은 브라운관이라도 달라고 했겠나?&quot;&lt;BR&gt;
&lt;BR&gt;
그가 '무노조 신화'의 삼성이 아니라 87년 '민주노조'를 출범시킨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더라면 그의 인생은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노사문화에서 두 회사는 확연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quot;현대는 현장의 권리를 인정해준 반면 삼성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입사했을 때 총무부장이 정문에 서서 머리카락이 귀를 덮은 경우 바로 현장에서 바리깡으로 밀어버렸다. 사내 커플이 사내에서 손잡고 다녀도 징계대상이고, 신발을 구겨 신어도 경위서를 써야 했다. 입문교육을 받을 때는 쉬는 시간이라도 담배를 피우면 입사가 취소됐다. 현대차에 다니는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까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현장통제가 심했다.&quot;&lt;BR&gt;
&lt;BR&gt;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이러한 현장통제가 인권을 침해할 정도로 심하니까 현장 노동자들이 노조가 없는 상태에서 16일간 파업을 벌인 것이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임금인상이나 민주노조 인정 등이 아니라, &quot;인권을 침해하지 마라&quot;였다. 결국 회사는 '임금 22% 인상'을 앞세워 파업을 중단시켰다. &lt;BR&gt;
&lt;BR&gt;
당시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quot;너희들이 돈 벌러 왔지 노조 만들려고 온 게 아니지 않느냐&quot;며 파업중단을 설득했다고 한다. 삼성이 '노조'에 얼마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lt;BR&gt;
&lt;BR&gt;
&quot;회사측은 당시 파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사람들을 10년 동안 차례차례 잘라냈다. 감시하면서 차곡차곡 쌓아놓은 징계사유를 들이밀며 '위로금 받고 나갈래, 그냥 해고당할래' 하며 위협했다. 결국 사직서를 쓰고 나갈 수밖에 없다. 삼성과 싸우는 것은 바위에 계란치기다.&quo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115326840.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58&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삼성커플'에서 '삼성과 싸우는 부부'가 된 송수근씨와 그의 아내 박미경씨.&lt;/p&gt;&lt;/div&gt;
&lt;BR&gt;
&lt;strong&gt;&lt;font color=&quot;#ff9900&quot;&gt;[98년 9월 24일]&lt;/font&gt; 노사협의회 활동... &quot;본사 항의방문이 해고사유&quot;&lt;/strong&gt;&lt;BR&gt;
&lt;BR&gt;
송씨는 그의 부인(박미경씨)이 &amp;lt;들꽃은 꺾이지 않는다&amp;gt;(삶이 보이는 창)에서 평한 대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직장상사에게도 바른 말을 하는' 노동자였다. 96년부터 노사협의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그는 '문제사원'(삼성에서는 이를 'MJ사원'이라고 표현한다)으로 찍혔다. 즉 회사측으로부터 '특별관리'를 받게 된 것이다. &lt;BR&gt;
&lt;BR&gt;
&quot;IMF 때도 1700억원인가 흑자를 냈는데도 회사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사내기업(분사)을 추진했다. 그렇게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2500여명의 사원들이 56개사 사내기업으로 갔다. 노사협의회 위원이었던 나는 사내기업제도에 반대했다.&quot;&lt;BR&gt;
&lt;BR&gt;
회사측은 &quot;지금은 흑자를 내고 있지만 앞으로 전망이 어둡다&quot;며 구조조정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브라운관으로 잘 나가던 때 뽑아놓은 '고참 노동자들'의 과도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회사측이 IMF를 악용한 것이다. &lt;BR&gt;
&lt;BR&gt;
당시 회사와의 협상에 참가하는 '총괄위원'이었던 그는 사내기업 추진 등을 노사협의 안건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이를 거부했다. &lt;BR&gt;
&lt;BR&gt;
&quot;회사측은 사내기업 추진 등은 경영권이기 때문에 노사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노사협의회가 열리면 대표 이사가 아니라 공장장이 사측 대표로 나왔다. 그래서 대표 이사에게 구조조정은 경영권이어서 노사협의 사항이 아닌지 확인해보기 위해 저를 포함 9명의 위원들이 본사에 항의방문하러 갔다.&quot;&lt;BR&gt;
&lt;BR&gt;
이러한 활동은 고스란히 '해고사유'가 됐다. 회사측은 사내기업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3회 외출한 것과 본사를 항의방문한 것 등을 이유로 98년 9월 24일 그를 해고했다. 무단외출·무단결근에다 본사 항의방문으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사유가 추가됐다. &lt;BR&gt;
&lt;BR&gt;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해고는 부당했다. '표적 해고'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내기업 조사를 위한 3회 외출에는 15명,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본사 항의방문에는 9명의 위원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은 회사측으로부터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lt;BR&gt;
&lt;BR&gt;
&quot;다른 위원들은 처음에야 사내기업 추진 등에 반대했지만 나중에 회사로부터 설득을 당했다. 나만 설득이 안됐다. 해고시키기 직전 공장장이 그랬다. '그동안 구조조정에 반대해왔으니까 당신한테 욕할 사람 없다, 좋은 자리 줄 테니까 도와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노사협의회 공개석상에서 '구조조정이 노사협의 사항이 아니라고 한다면 현대차처럼 노조를 만들어 오겠다'고 말했다. 결국 회사가 나를 설득하다가 포기했다.&quot;&lt;BR&gt;
&lt;BR&gt;
사실 노사협의회는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삼성의 경우 현장 분위기에 따라 '한마음협의회' '노사협의회' '노동자협의회' 등 이름만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lt;BR&gt;
&lt;BR&gt;
&quot;나중에 다른 위원들은 대부분 노사협의회 위원장을 했다. 노사협의회는 간접선거로 구성된다. 그런데 관리쪽은 80명당 1명, 현장은 460명당 1명의 위원이 배당되는 식이었다. 이러니 회사가 맘만 먹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위원장을 뽑을 수 있었다. 회사 공천을 안받으면 위원장에 절대 당선될 수 없다는 얘기가 공공하게 나돌 정도다. 우리는 이걸 '티켓'이라고 불렀다.&quot;&lt;BR&gt;
&lt;BR&gt;
&lt;strong&gt;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 &quot;세상의 양심을 믿었는데 삼성의 힘은 대단&quot;&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076968181.jpg&quot; width=&quot;280&quot; height=&quot;363&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송수근씨가 해고를 대비해 생계수단으로 마련했던 비디오가게.&lt;/p&gt;&lt;/div&gt;삼성을 상대로 복직투쟁을 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처지에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다. '관리의 삼성'이 복직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해고자들은 삼성의 회유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싸움을 포기했다. 
&lt;BR&gt;
회사측은 해고 직후 시위에 나선 송씨에게도 회유작업을 벌였다. 한 임원은 그를 만나 &quot;복직말고 원하는 거 없냐?&quot;고 물었다. 이에 그가 &quot;다른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복직해서 명예회복하겠다&quot;고 답하자, 그 임원은 &quot;대화할 준비가 안돼 있다&quot;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이후 그는 회사측에 납치돼 경주 등지로 끌려 다녔다. &lt;BR&gt;
&lt;BR&gt;
&quot;언양에서 납치돼 경주로 갔다. 거기서 회사 선배하고 소주를 한두 잔 먹었는데 바로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깨서 보니 회사와 거래하는 H콘도에 여자랑 누워 있었다. 몇 년이 지나 나를 납치했던 사람들이 대구교도소에 면회와서 '술에 약을 탔다'고 양심고백했다. 심지어 테러까지 계획했다고 하더라.&quot;&lt;BR&gt;
&lt;BR&gt;
삼성이 잘 쓰는 수법 중 하나가 돈으로 회유하는 것이다. 회사측은 &quot;한달에 400∼500만원 떨어지는 납품건을 주겠다&quot;고 그를 유혹했다. &lt;BR&gt;
&lt;BR&gt;
&quot;심지어 관리이사는 '민주노총도 보상해줄 수 있는 방안 등 수백개의 합의안을 만들어놨으니 회사하고 합의하자'고도 했다. 액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사내에서는 '회사는 10억을 제시했는데 송수근이 20억을 달라고 해서 합의를 못봤다'는 소문이 났다. 또 내가 구속됐을 때도 회사측은 언양을 떠난다는 조건 등을 달아서 대여금 형식의 합의금을 백지로 제시했다. 특히 삼성은 나랑 합의하기 위해 특별접근을 7번이나 했다. 특별접근은 한번 하기도 힘든데 삼성의 힘이 대단하더라.&quot; &lt;BR&gt;
&lt;BR&gt;
그는 '복직을 통한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회유를 거부했다. '거부했다'기보다 '견뎠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결국 회사측은 1인시위를 하던 그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그는 두 차례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lt;BR&gt;
&lt;BR&gt;
설상가상으로 그는 2002년 11월 삼성을 상대로 한 '해고무효 소송' 최종심에서조차 패소했다. 무단외출과 본사 항의 방문이 해고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lt;BR&gt;
&lt;BR&gt;
&quot;나는 처음부터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다. 양심바르게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일했을 뿐이다. 나하고 똑같이 외출하고 항의방문했던 사람은 정상근무로 처리했기 때문에 소송에서 이길 거라 생각했다. 대한민국 법만은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결국 소송에서 지면서 법과 사법부를 보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 세상의 양심을 믿었는데 삼성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만 느껴야 했다.&quot; &lt;BR&gt;
&lt;BR&gt;
&quot;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quot;는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lt;BR&gt;
&lt;BR&gt;
&quot;난 법이 정말 만인한테 평등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꿈이 깨졌다. 삼성이 하면 불법도 합법으로 만들어 주더라. 결국 돈의 힘이라고 본다.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뿌렸나? 돈이 없다면 삼성도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삼성의 힘은 돈의 힘이고, 무노조 경영도 돈의 힘이다.&quot; &lt;BR&gt;
&lt;BR&gt;
그는 &quot;법정 싸움에서는 내가 졌지만 삼성이 나를 도덕적으로 이기지는 못했다&quot;고 자신의 싸움에 의미를 부여했다.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238369242.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72&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송수근씨의 '애마'인 트럭. '해고자를 정든 일터로'라는 글귀가 선명하다.&lt;/p&gt;&lt;/div&gt;
&lt;BR&gt;
&lt;strong&gt;&quot;복직하면 소 한 마리 잡겠다&quot;&lt;/strong&gt;&lt;BR&gt;
&lt;BR&gt;
삼성의 일방적 구조조정과 임원 위주의 조직문화에 반기를 들었던 삼역모('삼성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가 최근 해체됐다. 삼역모의 해체가 회사측과의 합의 아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역시 관리의 삼성이다'라는 냉소적인 평가가 나왔다. 송씨에게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lt;BR&gt;
&lt;BR&gt;
&quot;자기에게 불이익이 오면 '노조를 만들겠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걸 '노사빈대족'이라 부른다. 노사빈대족은 개기면 더 많은 이득이 온다는 걸 안다. 결국 구조조정으로 인한 명예퇴직자들은 현장에서 묵묵하게 일했던 노동자들이다.&quot;&lt;BR&gt;
&lt;BR&gt;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quot;현장이 옛날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quot;고 말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몇 차례의 구조조정이 현장 노동자들의 의식을 바꾸고 있다는 것. &lt;BR&gt;
&lt;BR&gt;
&quot;옛날에는 삼성의 좋은 모습만 보려고 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몇차례 당하면서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안된다'는 의식이 현장 속에 퍼져 있다.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진정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제 돈 몇푼에 넘어가지 않는다.&quot;&lt;BR&gt;
&lt;BR&gt;
그렇다면 그는 과연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 기자가 &quot;삼성이 복직시켜줄 것 같지 않다&quot;고 하자, 그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lt;BR&gt;
&lt;BR&gt;
&quot;언양은 한우 불고기가 유명하다. 내가 복직하면 소 한 마리 잡을 생각이다.&quo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406570953.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45&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언양의 한 술집에 모인 삼성SDI 해고노동자들. 여기에는 사내기업에서 일하다 해고된 노동자들도 포함돼 있다. &lt;/p&gt;&lt;/div&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322082&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삼성과 싸우는 다윗들</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Wed, 07 Jan 2009 01:13:01 GMT</pubDate>
		</item>
		<item>
			<title>[예고] '삼성과 싸우는 다윗들' 연재를 시작하며</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3774</link>
			<description>&lt;strong&gt;&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삼성권력과 맞장 뜬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396355660.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44&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lt;/p&gt;&lt;/div&gt;
&lt;BR&gt;
날씨가 매우 춥던 지난해 마지막날(2008년 12월 31일). 한 사람이 국회로 나를 찾아왔다. &lt;BR&gt;
&lt;BR&gt;
그날 국회는 여야 대치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할 수 없이 그는 10여분을 찬 바람이 쌩쌩 불던 국회 정문 밖에서 나를 기다려야 했다. &lt;BR&gt;
&lt;BR&gt;
삼성 해고노동자 윤병목씨. 윤씨는 15년간 삼성생명을 다니다 98년 5월 사실상 '해고'됐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해고'가 아닌 '희망퇴직'이었다. '희망'하지도 않은 '퇴직'이라니…. &lt;BR&gt;
&lt;BR&gt;
IMF 유령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&lt;BR&gt;
&lt;BR&gt;
이후 윤씨는 2001년부터 '골리앗' 삼성을 상대로 '부당해고 무효'와 '퇴직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삼성자동차의 부실을 덮기 위한 삼성의 구조본의 전략에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lt;BR&gt;
&lt;BR&gt;
안타깝게도 윤씨는 두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새로운 증거를 찾아 다시 재판을 해달라며 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lt;BR&gt;
&lt;BR&gt;
&lt;strong&gt;'공화국 위에 있는 성역'에서 '상식이 통하는 글로벌기업'으로 거듭 나길&lt;/strong&gt;&lt;BR&gt;
&lt;BR&gt;
기업권력에서 사회권력으로 변신한 삼성과 싸우는 일은 종종 '계란에 바위치기'에 비유된다. 실제 삼성의 힘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를 넘어서고 있다. 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왔겠나? 이러한 현실은 지난해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lt;BR&gt;
&lt;BR&gt;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만 '용감한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삼성의 회유와 압력을 견디며 삼성의 부당함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골리앗'을 넘어서는 삼성의 존재감을 헤아렸을 때 이들을 '현대판 다윗들'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lt;BR&gt;
&lt;BR&gt;
지난해 초 내가 몸담고 있는 매체에서 '삼성과 싸우는 다윗들'이라는 기획기사를 준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시의성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중도에 취재는 중단됐고, 이미 취재해 출고해놓은 몇건의 기사들이 실리지 못했다. &lt;BR&gt;
&lt;BR&gt;
이러한 사정과 관련, 먼저 지난해 초 제 취재에 성실하게 응해주셨던 삼성SDI 해고자 송수근씨와 그의 아내 박미경씨,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사건 황유미씨의 부친 황상기씨, 앞서 언급한 윤병목씨 등에게 미안함을 먼저 전한다.&lt;BR&gt;
&lt;BR&gt;
하지만 번듯한 언론매체 지면은 아니지만, 이 블로그 지면을 통해 이 '다윗들'의 목소리들을 전하고자 한다. 일단 지난해 취재해 작성해놓은 기사들부터 소개하고, 원래 계획했던 '다윗들'도 틈틈이 만나 취재해 보도할 것을 약속한다.&lt;BR&gt;
&lt;BR&gt;
마음 속으로는 '평생시리즈'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내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부정기적'이지만 '기획시리즈'의 형식으로 계속해서 이 다윗들의 목소리를 소개할 생각이다. 많은 관심을 바란다. &lt;BR&gt;
&lt;BR&gt;
이 기획시리즈를 통해 '삼성'이 '공화국 위에 있는 성역'에서 '상식이 통하는 글로벌기업'으로 거듭 나길 바란다.&lt;BR&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316459&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삼성과 싸우는 다윗들</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Tue, 06 Jan 2009 03:07:26 GMT</pubDate>
		</item>
		<item>
			<title>국회 활극의 진짜 본질은?</title>
			<link>http://blog.ohmynews.com/ysku/243499</link>
			<description>&lt;font color=&quot;#9b18c1&quot; size=&quot;5&quot;&gt;&lt;strong&gt;김형오의 '핑계정치학'과 역동적 의회주의&lt;/strong&gt;&lt;/font&gt;&lt;BR&gt;
&lt;BR&gt;
&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4445/1363194175.jpg&quot; width=&quot;280&quot; height=&quot;390&quot; alt=&quot;&quot;/&gt;&lt;p class=&quot;cap1&quot; style=&quot;margin-top: 8px&quot;&gt;오마이뉴스 유성호 기자&lt;/p&gt;&lt;/div&gt;아마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쌈질'하는 국회에 신물이 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회의 본질은 '쌈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라는 공간은 각 계급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투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오히려 그런 정당한 쌈질을 안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쌈질의 결과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lt;BR&gt;
&lt;BR&gt;
그런데 그런 형이상학 말고 형이하학의 차원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평소 대화론자를 자처하고 최근에는 '관용의 리더십'을 강조해온 김형오 의장이 왜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새벽 무리하게 '로텐더홀 진압작전'을 펼친 것일까?&lt;BR&gt;
&lt;BR&gt;
한나라당 강경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와 관련 홍기표 &amp;lt;레디앙&amp;gt; 기획위원이 분석한 '핑계정치학'이 흥미롭다. 잠시 그 분석을 따라가보자.&lt;BR&gt;
&lt;BR&gt;
김 의장이 '직권상정'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로텐더홀뿐만 아니라 본회의장에 있는 '의원들'을 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2004년 탄핵사태에 버금가는 활극이 벌어질 것은 불문가지다.&lt;BR&gt;
&lt;BR&gt;
하지만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한나라당 강경파의 압력을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친정인데다가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quot;국회만 도와준다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quot;고 압박해온 터다.&lt;BR&gt;
&lt;BR&gt;
그런 과정에서 '핑계정치학'이 작동했다는 것이 홍기표 기획위원의 분석이다. &lt;BR&gt;
&lt;BR&gt;
즉 김 의장은 '의장이 직권상정을 해도 해결이 안되는 상황'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진압작전, 사실상 '실패할 진압작전'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홍기표 기획위원은 이를 &quot;상황을 한단계 악화시켜서 뭔가 회피할 명분을 얻는 과정&quot;이라고 표현했다. &lt;BR&gt;
&lt;BR&gt;
다음은 홍기표 기획위원의 '국회 난투극 감상기' 전문이다.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strong&gt;1.&lt;/strong&gt; &lt;BR&gt;
&lt;BR&gt;
연초부터 삼국지, 무협지보다 재밌는 국회 활극이 재현되었다. 1월 2일, 국회경위 80명은 국회의장의 지시를 받아 국회본회의장 앞의 민주당 의원, 보좌진, 당직자들을 해산시키기 위한 강제 진압을 실시했다. &lt;BR&gt;
&lt;BR&gt;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민주당의원은 80명이다. 각 의원실에 딸린 공식 보좌진만 500명이 넘는다. 그 외 교섭단체로써 국회 본청 안에 배치할 수 있는 전문위원 등 당직자들을 생각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난다. &lt;BR&gt;
&lt;/font&gt;&lt;strong&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이상한 활극 &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이를 겨우 국회 경위 80명이 해산시킬 수 있을까? 어차피 안되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럼 김형오는 왜? 어차피 안 될 줄 알면서 소위 '진압'을 개시 한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핵심 요체는 '핑계'에 있다. '핑계거리'만 확실하면 여타의 정치적 행동도 별로 부담이 없다. &lt;BR&gt;
&lt;BR&gt;
김형오 의장은 '직권상정'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를 단순히 거부했을 경우 한나라당 당내 강경파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 있었다. 그런데 사실 직권 상정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다한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본회의장을 탈환하지 못하면 결국 법안 통과는 요원해진다. 직권상정 이후에도 여러 가지 난관이 남아있는 것이다. &lt;BR&gt;
&lt;/font&gt;&lt;strong&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핑계정치학의 본질 &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그리고 위에서 간단한 숫자 비교를 해 보았듯이 단순히 질서유지권 수준에서 국회 본회의장 탈환은 불가능하다. 국회 본회의장은 예전식으로 말하면 천혜의 요새(?) 쯤 된다. 국회 본회의장을 물리적으로 탈환 하려면 한나라당 의원 나리들이 직접 몸으로 뛰는, '몸 정치'를 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탈환이 가능할지 의문시되는 상황인 것이다. &lt;BR&gt;
&lt;BR&gt;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김형오는 무척 부담되었을 것이다. &lt;BR&gt;
&lt;BR&gt;
결국 김형오는 '의장이 직권상정을 해도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다.'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어차피 실패할 작전'을 실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거봐라 어차피 안되지 않느냐? 라고 한나라당 강경파를 상대로 핑계를 댈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을 한 단계 악화시켜서 뭔가 회피할 명분을 얻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lt;BR&gt;
&lt;BR&gt;
김형오의 핑계정치학이 이번 국회 활극의 본질이었던 셈이다. &lt;BR&gt;
&lt;BR&gt;
&lt;strong&gt;2.&lt;/strong&gt; &lt;BR&gt;
&lt;BR&gt;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오늘의 국회가 '의회주의의 역동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
국민들은 왜 저 인간들은 저렇게 맨 날 싸우나?라고 욕한다지만 실제로 의원들 행동의 배경에 반드시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있기 때문에 그 정당이 계속 존재하는 것이고, 그 정당이 존재하니까 그 의원이 존재하는 짜임새 속에서 단지 '국회의원들이 싸운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욕하는 것은 무조건 옳은 이야기는 아니다. &lt;BR&gt;
&lt;BR&gt;
&lt;strong&gt;&quot;국회란 원래 싸우는 곳&quot; &lt;/strong&gt;&lt;BR&gt;
&lt;BR&gt;
우리는 오히려 '국회란 원래 싸우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사회의 모든 투쟁을 의회라는 특정 공간(그리고 시간)으로 최종 집결시켜서 거의 모든 사회모순을 의회 내부로 수렴시킨 합리적 제도가 바로 의회주의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바라보고 있는 국회 활극은 그 '의회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lt;BR&gt;
&lt;BR&gt;
만약 국회에서 '실력 대결'이 없고 '표 대결'만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럴 경우 4년 내내 얼마나 심심한 정치판이 되겠는가? 국회에서 토론이고 뭐고 할 필요도 별로 없다. 어차피 다수당이 정해져 있는 것이니 그냥 한나라당 뜻대로 4년간 하면 된다. &lt;BR&gt;
&lt;BR&gt;
과반에 못 미치는 야당의 존재로도 저항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회를 단순히 표대결이나 하는 형식적 공간으로 이해하지 않고 논리전, 심리전, 뿐 아니라 물리전 까지 수행할 수 있는 풍부한 정치투쟁의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lt;BR&gt;
&lt;/font&gt;&lt;strong&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만약 표 대결만 있다면? &lt;/font&gt;&lt;/strong&gt;&lt;BR&gt;
&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우리는, 전기톱의 등장에서부터 대규모 집단 난투극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회 경위 숫자만큼의 의석수를 가진 정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할만한 명분'을 갖게 될 경우 아무리 거대 여당이라도 '맘대로 입법'을 추진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lt;BR&gt;
&lt;BR&gt;
예전에는 코미디언들이 몸 개그를 하면 욕하는 풍토가 있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말 개그를 하건 몸 개그를 하건 웃기기만 하면 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원래 80%를 입으로 하는 것이지만, 가끔 몸 정치를 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lt;BR&gt;
&lt;BR&gt;
의회주의는 국회라는 공간, 회기라는 시간 그리고 법률이라는 문서. 그렇게 3위가 맞아 떨어져야 결과가 나오는 시스템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의회주의의 역동성이 더 현실화된다. 즉 의회란 단순히 '표'의 대결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형식적이고 건조한 공간이 아니다. &lt;BR&gt;
&lt;BR&gt;
물론 공산당 1당 체제에서 매우 형식적인 의회가 있기는 하지만, 세력 간 역학관계를 그대로 반영해 구성된 의회는 역동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 하부의 세력관계가 변함에 따라 실시간으로 그 상부에 구성된 의회 내부의 역학관계도 변하는 것이다. &lt;BR&gt;
&lt;BR&gt;
따라서 나는 어떻게 더 의회주의의 역동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난번 쇠고기 사건 때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2만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하면 임기 6개월짜리 임시직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방법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회를 단지 4년에 1번 구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lt;BR&gt;
&lt;BR&gt;
국회 앞 광장을 일종의 장외 국회로 개방할 필요도 있다. 지금은 철통 경비를 하고 있는 국회 앞의 그 넓은 잔디밭을 민주광장으로 개방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집회할 수 있게 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진정으로 국회는 정치의 전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lt;BR&gt;
&lt;BR&gt;
즉 국회를 단순히 4년에 한번 뽑는 의원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좀 더 실질적인 사회 세력간 투쟁 수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 구성을 좀 더 다양화하고 공간의 의미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lt;BR&gt;
&lt;BR&gt;
때로는 의회를 넘나들고 때로는 법을 넘나드는 이런 현상 일체가 '의회'를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이 역동적 의회주의의 실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lt;/font&gt;&lt;BR&gt;
&lt;embed loop=&quot;true&quot; menu=&quot;false&quot; quality=&quot;high&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8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pluginspage=&quot;http://www.macromedia.com/shockwave/download/index.cgi?P1_Prod_Version=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2309919&quot;&gt;&lt;/embed&gt;&lt;BR&gt;&lt;div style='clear: both;'&gt;&lt;/div&gt;</description>
			<category>뉴스 스크랩</category>
			<author>ysku (ysku)</author>
			<pubDate>Mon, 05 Jan 2009 03:30:23 GMT</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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